
엄지 손가락으로 부드러운 기타 소리를 내는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가 정통 재즈에서 이탈하여 상업적인 성공을 이룬 저변에는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Creed Taylor)가 있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때는 1963년, 웨스가 재정적으로 어려웠던 리버사이드(Riverside)를 떠나 버브(Verve)로 이적하면서다. 크리드 테일러는 남미의 보사노바를 들여와 재즈에 접목하여 붐을 일으킨 명 프로듀서였다. 이때부터 웨스의 모든 앨범은 모두 크리드 테일러의 손을 거쳤으며, 버브(Verve)에서 아홉 장, A&M에서 마지막 세 장까지 모두 열두 장의 앨범에서 프로듀싱을 전담했다. 그가 프로듀서를 맡으면서 웨스의 음반은 정통 재즈에서 벗어나 팝 음악의 색채를 띠기 시작했다. 음반 판매고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올라갔지만, 그에 대한 역풍으로 재즈 팬들의 불만과 비난은 고조된 것은 재즈 음악의 피할 수 없는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상업적인 성공의 달콤한 결과를 누리기도 전에, 웨스 몽고메리는 고향 인디애나폴리스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를 일으켰고 45세의 이른 나이에 생을 마쳤다.
웨스 몽고메리가 버브로 이적하여 크리드 테일러와 처음 낸 앨범 <Movin’ Wes>(1964)는 바로 빌보드 재즈 앨범 17위에 올랐고 음반 판매는 10만 장을 훌쩍 넘겼다. 재즈 기타리스트로서 그의 명성이 높긴 했지만, 리버사이드 시절과 비교하면 이 정도의 상업적인 성공을 이룬 적은 없었다. 버브에서의 두 번째 앨범 <Bumpin’>(1965)은 대단위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녹음하여, 상업적인 척도인 빌보드 200 차트에서 최초로 116위에 올랐다. 협소한 재즈 시장에서 벗어나 대중적인 팝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엿보았던 몽고메리와 테일러가 더욱더 팝 음악으로의 접근을 꾀한 것은 이 무렵이었다. 1965년 어느 날 뉴욕의 재즈 카페 하프 노트(Half Note)에서 윈튼 켈리 트리오와 함께 공연하던 그에게 크리드 테일러가 찾아와 음반 한 장을 주고 갔다. 그 음반은 당시 높은 인기를 누리며 빌보드 핫100차트 6위까지 오른 리틀 앤서니와 임페리얼스의 ‘Goin’ Out of My Head’(1964)였다.
팝 그룹이 아닌 두왑(Doo-wop) 소울 그룹 ‘리틀 앤서니와 임페리얼스’가 멋지게 편곡한 ‘Goin’ Out of My Head’는 빌보드 핫100 차트 6위에 오른 스매시 히트가 되었다. 크리드 테일러가 이 음반을 웨스에게 들려준 배경에는, 어떤 곡이라도 뮤지션에 따라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 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데 있다. 음반을 듣고 상기된 몽고메리는 이 곡을 다음 앨범의 타이틀곡으로 리메이크하여 앨범 <Goin’ Out of My Head>(1965)를 냈다. 이 앨범은 그의 생애 최초로 100만 장이나 팔렸고, 그에게 그래미 재즈 인스트루멘탈 앨범상을 안겼다. 이제 그는 컨템포러리 팝 음악의 리메이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다음 앨범 <California Dreaming>(1966)에서는 ‘California Dreaming’, ‘Sunny’ 등 인기 팝송 레퍼토리를 다시 해석하였고, <Tequila>(1966)에서는 라틴 음악을 자신의 감각으로 리메이크하였다.
크리드 테일러와 웨스 몽고메리는 허브 앨퍼트가 설립한 A&M으로 함께 옮길 정도로 서로의 협업에 만족했다. A&M에서 처음 낸 <A Day in the Life>(1967)은 빌보드 재즈 차트 1위, R&B차트 2위, 빌보드 200에서는 13위에 올랐다. 싱글 ‘Windy’는 핫 100 차트의 44위에 올라 그의 최고 히트곡이 되었다. 그 뒤를 이은 <Down Here on the Ground>(1968), <Road Song>(1968) 역시 빌보드 재즈 차트 1위와 함께 R&B차트와 빌보드 200에 오르는 패턴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마지막 앨범 <Road Song>(1968) 녹음 후 한달 반 만에 가족이 있는 인디애나폴리스로 향하는 비행기 위에서 갑자기 심장마비가 찾아와, 상업적 성공의 결실을 누리기도 전에 45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장례식에는 약 400여 명의 친지들이 성당 내에서 마지막을 지켜보았고, 성당 밖에는 약 2,000여 명의 팬들이 찾아와 대중적인 인기를 증명했다.

웨스 몽고메리가 크리드 테일러와 함께 낸 12장의 음반 중 재즈 시장을 겨냥한 음반은 단 두 장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컨템포러리 팝 시장을 겨냥하였다. 정통 재즈 팬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지만, 그의 생애 마지막에는 대중적인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몽고메리는 곧이곧대로 말하는 성격이며, 뒤에서 불평하지 않는다. 뭔가 지나치거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으면, 그는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을 것이고 나도 그의 생각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당시 상황에 대한 크리드 테일러의 회고다. 몽고메리의 사망 후 테일러는 새로운 재즈 기타리스트 조지 벤슨(George Benson)과 함께 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