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브를 설립한 노먼 그랜츠는 당대 최고 보컬리스트 엘라 피츠제럴드와 루이 암스트롱을 어렵게 스튜디오로 불러들였고, 두 사람이 대화하듯 부른 주옥 같은 노래들은 세 장의 앨범에 담겼다.
리버사이드에서 재즈 기타리스트로서 명성을 얻은 그는, 버브로 이적하여 프로듀서 크리드 테일러를 만난다. 테일러와 함께 낸 앨범들은 팝 스타일을 접목함으로써 몽고메리에게 상업적인 성공을 안겨주었다.
24세의 나이에 캔자스시티에 정착하면서 카운트 베이시 악단에서 힙스터의 아이돌로 명성을 얻었고, 1938년과 1944년 두 차례에 걸쳐 전성기 시절을 대표하는 녹음을 남겼다.
프로듀서 노먼 그랜츠는 1953년부터 아트 테이텀의 피아노 연주를 다양한 형식으로 담아냈다. 오랜 세월이 지나 ‘파블로’를 설립한 그는 옛 마스터를 다시 찾아내 기념비적인 시리즈를 구성했다.
그는 피아노로 시작했지만 곧 하몬드 오르간에 푹 빠졌다. 음악은 재즈와 소울, 그리고 팝의 경계선을 넘나들었고, 자신은 아티스트가 아니라 쇼비즈니스의 엔터테이너라고 여겼다.
올해 80주년을 맞은 블루노트의 1960년대 전성기에는 조 헨더슨과 같은 하우스 색소포니스트가 있었다. 하지만 그가 수상한 4회의 그래미상은 모두 50대 후반에 들어 버브와의 계약으로 출반한 음반에서 나왔다.
그는 악보를 보거나 악기를 다룰 줄 모름에도 오늘날 재즈를 있게 한 진정한 프로듀서였다. 그리고 흑인 재즈뮤지션에게 헌신한 인권운동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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