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리퍼 히트’(Sleeper Hit)란 시장에 출시한 초반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서서히 진가를 인정받아 기대 이상의 반응을 보이며 흥행에 성공한 상품을 말한다. 흥행을 꿈꾸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상품의 속성 상 창작자들의 애를 태우는 슬리퍼 작품들이 많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대중음악의 경우, 반드시 히트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시장의 반응이 저조하면 새로 리메이크하여 여러 번 시장의 문을 다시 두드려 결국 히트작의 반열에 올리기도 한다. 몇 년의 잠복기간을 거친 끝에 어렵게 슬리퍼 히트곡의 반열에 오른 레전드 다섯을 뽑아 보았다.

 

Ralph McTell ‘Streets of London’(1968)

영국 포크 싱어송라이터의 전설이 된 랄프 맥텔(Ralph McTell)이 대학 졸업 후 유럽 전역을 버스킹과 히치하이킹으로 돌아다니던 시절에 만든 노래다. 영국의 노숙자나 노인 같은, 소외된 사람들의 공통적인 문제들을 가사로 옮겼다. 1960년대 후반부터 음반을 내기 시작하여 자신의 두 번째 앨범 <Spiral Staircase>(1969)에 수록했으나, ‘너무 우울한 곡’이라는 이유로 묻혀 있다가 5년 만인 1974년에서야 싱글로 발매되어 그해 영국 차트 2위에 올랐다. 이 곡은 사회적 약자들을 대변하는 곡으로 추앙되어 무려 200여 명의 가수들이 레퍼토리에 담아 리바이벌하였다.

 

Derek & The Dominos ‘Layla’(1970)

앨범 <Layla and Other Love Songs>(1970)은 이 3인조 슈퍼밴드의 유일한 앨범이자 에릭 클랩튼이 조지 해리슨의 부인이었던 모델 패티 보이드(Pattie Boyd)에게 구애한 곡들로 유명하다. 1970년 12월 발매 당시에는 앨범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싱글 ‘Layla’ 역시 3분 길이의 짧은 버전으로 발매되어 50위권에 그쳤다. 하지만 1972년 에릭 클랩튼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컴필레이션 앨범 <The History of Eric Clapton>에 수록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1972년에 7분 길이의 원래 버전으로 다시 싱글 발매하여 영국 7위, 미국 10위에 올랐고, 앨범은 영국과 미국 차트에 수시로 등장하는 레전드가 되었다.

 

Aerosmith ‘Dream On’(1973)

이 곡은 현재 에어로스미스(Aerosmith)와 장르 전체를 대표하는 록 발라드지만, 동명의 데뷔 음반 발매 당시에는 밴드 멤버들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이들은 무대 위에서 발라드 곡을 부르기 주저하여 제대로 청중에게 알리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1973년 싱글 발매 당시 차트 56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에어로스미스의 본거지였던 보스턴의 라디오 방송을 통해 입소문을 타고 뒤늦게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결국 3년 후인 1976년 풀 버전으로 다시 한번 싱글을 냈는데, 이번에는 차트에서 6위로 올라섰다. 24년 후에는 에미넴(Eminem)이 리메이크하여 미국에서 14위, 영국에서 6위로 올라서며 불멸의 인기곡임을 재확인했다.

 

Whitesnake ‘Here I Go Again’(1982)

영국의 메탈 밴드 화이트스네이크(Whitesnake)의 보컬리스트 데이비드 커버데일의 첫 결혼의 파경을 그린 발라드 곡으로 싱글 발매 직후 다섯 번째 앨범 <Saints ‘N’ Sinners>(1982)에 수록했으나, 차트에서 30위권 밖에서 머무르며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5년이 지난 후 1,500만 장 이상 판매하여 상업적으로 성공한 일곱 번째 앨범 <Whitesnake>(1987)에 리메이크 곡을 다시 수록했는데, 새로 제작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Here I Go Again ‘87’이라는 제목으로 싱글 발매되어 미국에서 1위, 영국에서 9위에 올랐다. 1980년대 글램 메탈(Glam Metal) 신을 대표하는 명곡의 자리를 덤으로 차지했다.

 

Baby D ‘Let Me Be Your Fantasy’(1992)

1990년대 런던의 빅비트(Big Beat) 하우스 뮤직 그룹의 대표주자였던 3인조 댄스 그룹 Baby D의 대표곡이다. 1992년 10월에 발매했으나 영국 차트 77위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였다. 하지만 이 곡이 런던 언더그라운드의 댄스 신에서 빠질 수 없는 곡으로 부상하면서 차트에서 무려 2년 동안 떨어지지도 않고 더 오르지도 않은 채 유령처럼 머물렀다. 결국 2년 후인 1994년 11월에 싱글로 재발매하여 차트의 맨 위에 올랐고 2주동안 톱에 머물렀다. 이 곡은 1990년대 런던의 레이브(Rave) 신을 대표하는 곡으로 추앙되며, 수많은 크리에이터들이 자신의 독창적 버전으로 리메이크하고 있다.

 

메인 이미지 Derek & The Dominos ‘Lyla’ 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