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맞아 파스텔 색감의 이야기 그림책을 보는 듯한 단편영화 네 편이 한꺼번에 넷플릭스에 올라왔다. 영화 <판타스틱 미스터 폭스>(2009)가 나온 지 14년 만에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감독의 두 번째 로알드 달(Roald Dahl) 프로젝트로 네 편의 단편영화가 제작된 것이다.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로 대표되는 이 네 편은 넷플릭스 홈에 개별적으로 올라왔으나 썸네일만 봐도 웨스 앤더슨 영화임을 알아챌 정도로 아이덴티티가 뚜렷하다. 올해 9월 1일 베니스영화제에서 처음 상영했고, 북미시장 영화 상영을 짧게 거치고 9월 27일 넷플릭스 서비스를 시작하였다. <마틸다>와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로알드 달 원작에 웨스 앤더슨 감독이 각색과 감독을 맡았고, 로튼토마토 95%의 평점을 받은 기대작이다.

단편영화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2023) 예고편

 

아동문학 작가 로알드 달 원작

원작 <The Wonderful Story of Henry Sugar and Six More>의 다양한 표지

로알드 달은 ‘아동문학계의 윌리엄 셰익스피어’라 불린 작가였지만, 그의 작품에는 블랙 코미디의 요소가 저변에 있으며 간혹 추리소설 같은 성인 대상 작품을 쓰기도 했다. 그의 단편 모음집 <The Wonderful Story of Henry Sugar and Six More>(1977)에는 청소년층 대상으로 쓴 단편소설 7편을 담았으며, 여기에는 작가 본인의 젊은 시절에 직접 경험했거나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들을 담았다. 가령 <A Piece of Cake>은 작가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공군의 파일럿으로 근무하던 당시의 경험을 담았는데, 영화에서는 랄프 파인즈(Ralph Fiennes)가 작가 자신을 연기하였다. 작가는 74세를 일기로 1990년에 사망하였으나, 30여 년이 지난 2021년에 약 5억 달러를 벌어들이며 포브스(Forbes)지의 유명인사 사후수입 부문에서 수위를 차지했다. 이는 넷플릭스가 그 해 작가의 판권을 보유한 ‘로알드 달 스토리 컴퍼니’을 6억 8,600만 달러에 인수하면서 지급된 저작권료 때문이며, 이 작품 역시 그 중 하나다.

 

실존했던 신비의 인물 쿠다 북스

단편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는 실존했던 인물 쿠다 북스(Kuda Bux, 1905~1981)에게 영감을 받았다. 인도 카슈미르 출신인 그는 영화에서 묘사된 대로 13세의 어린 시절에 마법을 배워 마법사가 되었고, 신비로운 요가 수행자로부터 불 위를 걷거나 눈을 가리고도 사물을 보는 비법을 배웠다. 1930년대 영국과 미국 등 서구사회로 건너간 그는 관중들 앞에서 그의 신비한 묘기를 선보였고, 심지어 양 눈에 두꺼운 헝겊을 덮은 채 뉴욕 브로드웨이 일대에서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녀 행인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1950년대에는 TV 쇼 <Kuda Bux, Hindu Mystic>에 출연했던 그는 데어데블(DareDevil) 또는 ‘눈 없이 사물을 보는 사나이’(The Man Who Can See Without His Eyes)라 불리며 유명 인사가 되었다. 1981년 75세의 나이에 자는 도중 생을 마감한 사실 역시 영화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에서 묘사된 내용과 흡사하다.

<A Men Who Can See Without His Eyes>

 

감독의 두 번째 로알드 달 프로젝트

웨스 앤더슨 감독은 원작에 수록된 단편 7편 중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The Wonderful Story of Henry Sugar), <백조>(The Swan), <독>(Poison), <쥐잡이 사내>(The Rat Catcher)을 골랐다. 원래 네 편을 묶어 하나의 장편영화에 담을 계획이었으나, 감독은 계획을 바꿔 각각의 단편영화로 내기로 하였다. 베네딕트 컴버배치, 랄프 파인즈, 데브 파텔, 벤 킹슬리, 리처드 아이오아디, 루퍼트 프랜드 등 캐스팅된 배우들도 한편 이상의 이야기에서 다수의 배역을 맡아, 관객을 향해 작가의 이야기를 전하는 역할에 충실하였다. 화면은 감독의 영화 공식을 그대로 따라 16mm 필름으로 촬영하였다. 마치 그림책이나 연극을 보는 것처럼 배우들이 때때로 내레이터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며 화면 한 구석에서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진풍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화면 뒤의 배경은 마치 연극 무대처럼 상하 좌우로 바뀌기도 하며, 스톱모션 촬영을 위한 디오라마 배경으로 변하기도 한다. 편집 과정에서 입힌 파스텔 톤의 밝고 화려한 색감으로 금방 그의 영화임을 알 수 있다.

영화 <기상천외한 헨리 슈거 이야기> 비하인드-더-신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