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이리시맨>(2019)을 10개 부문 후보에 올렸지만 아쉽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 고배를 마신 마틴 스콜세지 감독. 실화에 기반한 범죄 영화로 다시 찾아왔다. 지금부터 100여 년 전 오클라호마의 오세이지 인디언 보호구역(Osage Indian Reservation)에서 일어난 연쇄 살인사건을 다루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수사 전문 기구인 FBI가 탄생할 만큼 미국 전역에 크나큰 충격을 안겨준 대형 사건이었다. 나이 여든을 훌쩍 넘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이제까지 여섯 작품을 함께한 근래의 페르소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초기 열 작품을 함께 했던 예전 페르소나 로버트 드 니로를 최초로 동시 캐스팅하여 화제가 되었다. 묵직하고 복잡하게 얽힌 주제를 다룬 만큼 러닝타임은 3시간 20분을 넘어서며, 올해 칸영화제에서 극찬이 이어지면서 로튼토마토 97%의 높은 평점을 기록했다.

영화 <플라워 킬링 문>(2023) 예고편

 

오세이지 인디언 살인사건

실존 인물과 그를 연기한 배우 비교

영화는 데이비드 그랜(David Grann)의 논픽션 베스트셀러 <Killers of the Flower Moon>(2017)을 바탕으로,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 미국 서부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연쇄 살인사건을 그렸다. 1897년 오클라호마의 오세이지(Osage) 인디언 보호구역에 정착했던 원주민들의 땅 밑에서 석유가 발견되자 토지 소유자들은 하루아침에 막대한 부자가 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빈곤했던 백인들이 이 지역으로 몰려들어 원주민과 어울려 살게 되었고, 부와 이권을 둘러싸고 갈등과 원한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결국 1921년부터 수십 명 이상 인디언 원주민들이 연이어 살해되었고, 지역 차원의 부패와 무능이 복합적으로 작용되어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연방 정부에서는 텍사스 레인저 출신의 수사관 톰 화이트(제시 플레몬)를 현지에 파견하여 오랜 수사 끝에 사건의 전모를 밝혔는데, 주범은 기소되어 종신형이 선고되었다. 당시 언론은 살인 사건이 집중되었던 1921년부터 1926년까지를 ‘공포의 시대’(Reign of Terror)라 불렀다.

1930년대 오클라호마의 원주민 실제 영상(Colorized rare film)

 

미국 사회에 끼친 광범위한 영향

광활한 서부 개척 당시, 정부는 부족한 인구와 노동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토지 보상을 시행하였는데 이를 ‘Headright’(*노동력의 머릿수로 균등 배분했다는 의미)이라 불렀다. 미국 원주민에게도 보호구역에 살게 하면서 토지를 배분하였는데, 이 토지의 가치가 급등하면서 연쇄 살인사건의 배경과 동기로 작용한 것이다. 사건 발생 후 의회는 법 개정을 통해 토지에 대한 권리가 원주민에게만 양도되거나 상속될 수 있도록 하여 추가적인 범행을 막았지만, 100여 년이 지난 현재 토지 면적의 20% 이상이 원주민이 아닌 사람이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BBC News <The Murder Investigation That Made the FBI>

사건 당시 법무부 산하의 수사 전문 부서였던 BOI(Bureau of Investigation) 책임자는 20대 후반의 야심만만한 에드가 후버(John Edgar Hoover)였는데, 그는 사건 해결을 위해 텍사스 레인저 출신의 유능한 현장 수사관 톰 화이트를 급파했다. 현장에 내려간 그는 네 명의 현지 인력을 고용하여 광범위한 탐문과 함정 수사를 했고, 비밀 정보원을 고용하여 사건 전모를 밝히는 데 결국 성공해 현대적인 수사기법의 전형을 제시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조직범죄나 여러 주에 걸친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법무부 산하의 소규모 수사국(BOI)이 확대되어 FBI가 창설되었고, 에드가 후버가 사건 해결의 공을 인정받아 초대 국장으로 임명되어 무려 48년 동안 FBI의 수장으로 재직하게 되었다.

 

쉽지 않았던 <플라워 킬링 문> 제작기

데이비드 그랜의 원작은 영화사들의 치열한 입찰 경쟁 끝에 50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일찌감치 마틴 스콜세지 감독과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로버트 드 니로의 진용이 거론되었고, 감독의 <아이리시맨>(2019) 제작이 끝나기를 기다려 2019년 여름에야 프로젝트가 개시될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일정이 1년 더 연기되어, 2020년 여름이 되어서야 촬영이 재개되었다. 제작비는 계속 늘어나 약 2억 달러 수준에 이르자 배급을 맡은 파라마운트사가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고, 뒤늦게 애플TV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어렵게 완성된 영화는 올해 5월 칸영화제에서 첫 상영하여 9분 동안 기립박수를 받았으며 평론가들의 찬사가 이어졌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3시간 반에 가깝지만 영화의 비극적 서사에 가려 무난히 정당화되었고, 특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릴리 글래드스톤의 비극적 부부 연기에 칭찬이 집중되었다. 우리나리에서는 10월 19일 개봉될 예정이며, 내로우 릴리즈를 이미 시작한 북미시장은 10월 20일에 와이드 릴리즈로 확대된다.

칸영화제에서 있었던 프레스 컨퍼런스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