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레 고백하자면, 저는 술을 무척 좋아합니다. 미취학 아동이었을 무렵 삼촌들이 장난으로 보리차라며 건네주었던 맥주를 시작으로 세상의 다양한 술을 적당한(!) 시기에 만나가며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제가 술을 사랑하는 만큼 참을 수 없는 것은 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입니다. 술을 변명으로 삼는 사람들, 술을 도피의 방편으로 이용하는 사람들, 심지어 술을 범죄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쓰레...아니 사람들까지. 폭탄주와 삼배주의 이름으로 당신들을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술은 너희들이 그러라고 있는 게 아니에요. 그렇다면 왜 마시냐고요? 그거야 당연히, 맛있으니까요.

 

<술꾼도시처녀들> 1·2

미깡 | 예담 | 2014·2015

얼마 전에 연재를 마친 <술꾼도시처녀들>은 그런 저의 마음을 정확하게 그려낸 만화입니다. 술을 좋아하는 주인공들이 매일같이(하지만 일주일에 두세 번이라고 말하며) 술을 마시며 펼쳐내는 일상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죠. 그들이 술을 마시는 이유는 간단명료합니다. 맛있으니까, 좋으니까. 책에는 심지어 맛집 소개와 안주 레시피도 수록되어 있어요. 하, 역시 술을 ‘제대로’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정이 넘친다니까요.

 

<낮의 목욕탕과 술>

구스미 마사유키 | 지식여행 | 2016

어떤 술을 좋아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술의 종류를 따지진 않습니다만, 어떤 술을 어떤 곳에서 어떤 시기와 시각에 마시느냐에는 약간의 고집이 있는 편이에요. <낮의 목욕탕과 술>은 바로 그 적재적소를 특화한 내용입니다. <고독한 미식가>로 많은 이들의 위장을 울렸던 작가가 도쿄에 있는 목욕탕과 그 근처 술집을 소개하며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캬! 최고! 역시 한낮, 목욕탕에 다녀와 밝은 햇살 아래에서 마시는 맥주는 최고다. 그 첫 한 모금은 그야말로 무적.

낮에, 목욕을 마치고 나와서, 그 상쾌함을 배가시켜주는 맥주! 아무렴요, 무적이죠. 저 또한 언젠가 술집을 열게 된다면 반드시, 목욕탕 옆에 가게를 낼 거에요. 당연히 낮부터 마실 수 있는.

이시카와 사유리(石川さゆり) ‘ウイスキーが、お好きでしょ(위스키, 좋아하잖아요)’ 

위스키 좋아하잖아요
조금만 더 말해봐요
흔한 이야기죠
그걸로 괜찮아요 지금은

물론 빈도수로 따졌을 때 자주 마시는 술이 있긴 합니다. 요즘은 버번과 위스키 하이볼이에요(자주 가는 바에선 ‘세트 1번이요’라는 주문으로 함께 마시곤 합니다). 이 노래는 1990년대 초, 일본의 주류회사 산토리에서 CM송으로 쓰기 위해 기획해 만들었고 최근까지도 리메이크되어 광고에 쓰이고 있어요. 당시의 기획자분께는 노벨 위스키 상이라도 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위스키를 마실 때마다 자연스레 생각나는 노래거든요. 위스키, 좋아하잖아요? 네, 좋아해요!

 

<술 취한 식물학자>

에이미 스튜어트 | 문학동네 | 2016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상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집니다. 술 또한 마찬가지예요. 내 앞에 있는 이 한 잔의 술이 어떤 형태로 태어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어 마침내 나에게로 와주었을까요. <술 취한 식물학자>는 그 경탄의 과정을 세밀하고 다채롭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술이 식물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에서 출발해, 도대체 어떤 변태, 아니 훌륭한 분들이 그 식물들을 재배해서 증류하고 발효시켜가며 마실 것으로 만들어냈는지, 그 변태, 아니 훌륭한 분들이 창조해낸 술들을 어떻게 즐겨야 더욱 맛있는지를 알려줍니다.

톰 웨이츠 ’The piano has been drinking(not me)’ 

앞서 소개한 책들과 노래의 공통점은 역시, 술을 부른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이 분 목소리를 이길 수는 없을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술과 잘 어울리는, 술을 부르는 목소리를 꼽자면 주저 없이 톰 웨이츠(Tom Waits)입니다. 예전에 잠시 바에서 일했을 때, 가게 마감 시간이 다가옴을 알리는 시그널로 이 분의 데뷔 앨범 <Closing Time>(1973)을 튼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저의 실수였죠. 그의 목소리가 술을 부르는 마법의 주문이라는 걸 간과한 큰 실수.

아아, 술과 관련된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이제 한계입니다. 지금 당장 술을 마셔야겠어요. 자, 우리 함께 해요. 우선은 가볍게 맥주로 시작할까요? 축배의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았을 테니 천천히, 즐기며, 건배!

 

Writer

심리학을 공부했으나 사람 마음 모르고, 영상 디자인을 공부했으나 제작보다 소비량이 월등히 많다. 전공과 취미가 뒤섞여 특기가 된 인생을 살고 있다. 글을 쓰고 번역을 하며, 그림을 그리거나 가끔 영상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