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엑소시스트>(1973)는 호러 장르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이전에 흥행했던 <사이코>(1960)가 박스오피스에서 5,000만 달러, <로즈메리의 아기>(1968)가 3,000만 달러를 가까스로 넘긴데 비해, 이 영화는 4억 달러를 가볍게 넘어섰고 호러 장르 영화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2개 부문에서 수상했다. 이 영화가 성공한 후 ‘퇴마’(엑소시즘)를 소재로 하여 디테일을 모방한 오컬트 아류작이 우후죽순으로 제작될 정도로 영향력이 컸다. 이제 50년 만에 호러 영화의 명가 블룸하우스(Blumhouse)가 주도해 오리지널 영화를 잇는 리부트 3부작 시리즈를 제작한다. 리부트 시리즈의 첫 출발에는 오리지널 영화에서 주연급으로 출연했던 엘런 버스틴(Ellen Burstyn)이 91세의 나이에 출연하여 이야기를 연결하는 역할을 맡았다. 올해 10월 첫 영화 <엑소시스트: 빌리버> 개봉에 즈음하여,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오리지널 영화 제작을 둘러싼 주요 상황을 조명해 보았다.

영화 <엑소시스트: 빌리버>(2023) 예고편

 

영감을 준 ‘롤랜드 도’ 사건

윌리엄 피터 블래티(William Peter Blatty)의 원작 소설은 1949년 지역 신문에 실렸던 실제 엑소시즘 사례에서 영감을 받았다. 작가가 대학 시절에 읽은 기사에 따르면, 당시 14살의 소년 ‘롤랜드 도’(Roland Doe, 가명)가 악령에 씌어 로마 카톨릭교회 신부들의 구마 의식을 받았다는 것이다. 철저히 베일에 가려진 소년의 신원은, 2020년 그가 85세의 나이에 사망한 후 본명이 ‘Ronald Edwin Hunkeler’로 밝혀졌으며, 평생 NASA의 엔지니어로 살면서 자신의 신원이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당시 신문에 보도되었던 빙의 현상과 구마 의식의 내용, 가령 침대가 흔들리거나 물건이 혼자 움직이며, 신부 두 사람이 함께 성경을 외치면서 십자가를 들이대는 방식 등 소설 <엑소시스트>의 기반이 되었다.

롤랜드 도(실명 Ronald E. Hunkeler)와 윌리엄 S. 보우던 신부

한편 구마 의식에 참여했던 신부의 한 사람인 윌리엄 S. 보우던(William S. Boudern) 신부의 기록을 바탕으로 <Possessed: The True Story of an Exorcism>(1993)을 출간한 작가 토마스 B. 알렌은 엑소시즘의 실체에 의문을 표했다. 당시 보도된 악령 현상이나 구마 의식이 억측이거나 과장되었다는 증인의 진술을 바탕으로, 독실한 신앙 가족과 문제 소년의 비행이 낳은 사건에 불과했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이 사건을 심층 취재했던 작가 마크 옵사스닉(Mark Opsasnick)은 “목격자들은 자신들의 전문분야에 따라서 영향을 받았다. 정신과 의사는 그가 정신 질환을 앓았다고 했고, 성직자는 악마가 빙의한 사례라고 보았다. 작가나 영화 제작자는 대단한 소재거리라고 보았다.”라고 꼬집기도 했다.

‘롤랜드 도’ 사건을 영화화한 <Possessed>(2000). 티모시 달튼이 보우던 신부 역으로 출연했다.

 

<엑소시즘> 제작 현장의 공포

영화 <프렌치 커넥션>(1971)의 오스카 감독상 수상에 힘을 받아 이 영화의 감독까지 맡게 된 윌리엄 프리드킨(William Friedkin)은 ‘뉴 할리우드’(New Hollywood)를 대표하는 젊은 감독 중 한 사람이었지만, 본인이 원하는 장면을 얻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고 영화사의 통제를 받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의 성향은 <엑소시즘> 촬영 현장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공포에 휩싸인 배우의 표정 연기를 끌어내기 위해 빰을 때리기도 했으며, 소품용 총을 가져와 배우들에게 들이대기도 했다. 촬영 세트를 수시로 고치거나 특수효과나 분장에서 재작업을 주문하여 당초 3개월로 계획했던 촬영 기간은 7개월로 연장되었다. 배우와 스태프들은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으며, 그들의 가족이 사망했던 경우도 잦아서 ‘저주받은 영화’라는 소문도 돌았다. 결국 제작비는 예산을 크게 초과하여 현재 기준으로 환산한 제작비는 약 6,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프리드킨은 후일 “나는 원래 오컬트를 믿지 않았지만, <엑소시즘>을 감독하면서 악령을 믿게 되었다. 촬영 초반부터 이상하고 불길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엑소시스트> 메이킹 영상 <Raising Hell: Filming the Exorcist>

 

오컬트 호러 영화의 신기원

워너 브라더스 영화사는 <엑소시스트>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호러 장르인데다 스타급 배우도 출연하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고편을 상영할 때 관객들이 비명을 지르거나 상영관 밖으로 뛰쳐나가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1973년 크리스마스에 맞춰 개봉할 때, 처음에 영화관 24곳에서 시작했지만 관객들이 구름같이 밀려들자 상영관 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에도 영화를 먼저 보려는 관객들이 새벽부터 줄을 서기 시작했다. 평론가들이나 종교계의 반응은 냉담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작비 1,200만 달러의 35배가 넘는 4억 3,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기록적인 성적을 냈다. 영화에 대한 논란과 법적인 소송은 그 후에도 계속되었지만, 엑소시즘을 소재로 하는 오컬트 영화와 드라마 제작이 봇물을 이루었다. 이제 50주년을 맞아 오리지널 영화에 직접 이어지는 후속편 3부작이 기획되어, 올해 10월 첫 영화 <엑소시스트: 빌리버>가 개봉될 예정이다. 원작 소설에 이름이 언급되었고 영화에서 잠깐 모습을 드러내었던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악령 파주주(Pazuzu)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낼 지 기대해 본다.

<Pazuzu: The Demon Behind The Exorc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