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와 뉴요커(The New Yorker) 두 유력지가 경쟁적으로 할리우드 거물 프로듀서 하비 와인스타인(Harvey Weinstein)의 성범죄 진실을 고발하는 탐사 보도를 냈다. 영화사 미라맥스(Miramax)의 설립자이자 영화 프로듀서인 그는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여배우, 영화 관계자, 고용인 등 수십 명의 여성에게 저지른 추악한 만행으로 기소되어, 현재 23년형에다 추가 16년을 받고 복역 중이다. 당시 두 유력지의 보도는 유사한 성범죄로 인해 고통받던 여성들의 미투(#METOO) 운동을 촉발했으며, 그 공적을 인정받아 이듬해 퓰리처 공공서비스 부문에서 수상했다. 영화 <그녀는 말했다>(She Said, 2022)는 당시 뉴욕 타임즈의 두 기자 조디 캔터(Jodi Kantor)와 메건 투히(Megan Twohey)의 취재 과정을 차분하고 세세하게 따라간 전기 드라마다. 두 기자를 연기한 주연 배우들의 연기에 대한 찬사에 힘입어 로튼토마토 88%의 호평을 받았으나, 아쉽게도 박스오피스에서 제작비 예산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

영화 <그녀는 말했다>(2022) 예고편

 

영화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퓰리처상을 받은 캔터와 투히 두 기자는, 2019년 자신들의 취재 과정을 자세하게 기술한 서적 <She Said>를 출간했다. 이 책은 출간하기 한 해 전 이미 안나푸르나(Annapurna), 플랜비(Plan B)와 옵션 계약을 맺어 놓았다. 영화 배급을 맡은 유니버설 영화사는 투톱 배우로 조 카잔(Zoe Kazan)과 캐리 멀리건(Carey Mulligan)을 캐스팅했고, 2021년 넷플릭스 미니시리즈 <Unorthodox>(2020)로 에미상을 받은 마리아 슈레이더(Maria Schrader)를 감독으로 낙점하였다. 감독은 성범죄의 재현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 동안 침묵을 강요당한 피해자들에게 맞추겠다고 공언하였다. 플랜비의 대표인 배우 브래드 피트의 개입 여부도 관심 대상이었다. 그의 여자친구였던 기네스 팰트로나 전 부인 안젤리나 졸리도 하비 와인스타인의 범행 대상이었으나, 그 후에도 하비 와인스타인과 계속 일했던 전력 때문이었다. 1995년 당시 신인이었던 브래드 피트는 하비 와인스타인을 찾아가 더 이상 그러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한다.

TV쇼에서 하비 와인스타인과 브래드 피트 관련 일화를 밝히는 기네스 팰트로

 

영화의 내용은 사실인가?

영화에 등장하는 사실 대부분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에 바탕을 두었다.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 폭로기사를 준비하는 뉴욕 타임즈의 두 기자 및 보스인 발행인 레베카 코빗(Patricia Clarkson), 상임 편집장 딘 바켓(Andre Braugher)을 포함해, 핵심적인 취재 대상이 되었던 런던 사무실 비서들 모두 실명으로 등장하며, 전체 사건 역시 오롯이 사실에 바탕을 두었다. 피해를 입은 배우 중 하나인 애슐리 주드(Ashley Judd)는 직접 영화 출연을 감행했고 귀네스 팰트로는 목소리 연기로 대신하였다. 영화 중에는 기자들을 미행하고 감시하는 검은 밴이 등장하는데, 실제로 하비 와인스타인은 크롤(Kroll), 블랙큐브(Black Cube) 같은 사설 정보회사들을 고용하여 언론의 동향을 캐고 다녔다고 한다. 영화 모두 사실에 입각하여 탐사 보도의 전형을 보여준다. 하비 와인스타인의 변호인 측은 영화가 상영될 경우 배심원단의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여 재판 일정의 연기를 요청한 바 있다.

New York Times <Harvey Weinstein: Hollywood’s Open Secret>

 

영화는 왜 실패했나?

하지만 영화는 흥행에서 실패했다. 유니버설 영화사가 배급을 맡아 미국 전역 2,000개 이상의 극장에서 개봉했지만, 첫 주말 성적은 220만 달러에 불과했다. 이는 메이저 영화사의 개봉작으로는 역대급으로 저조한 성적이었다. 제작진과 캐스팅 모두 최상급이었고, 할리우드의 거물급 제작자와 톱배우들이 연루된 캐스팅 카우치(Casting Couch)에 관한 사건이라 화제성은 충분했다. ‘캐스팅 카우치’란 여배우들이 배역을 따기 위해 영화 관계자에게 은밀하게 성상납을 하거나 성추행을 당하는 것을 가리키는 은어였다. 2017년에 시작된 하비 와인스타인의 할리우드 스캔들은 5년의 시간이 지나 뜨거운 관심사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재판은 진행 중이기는 했다. 하지만 한 언론에서 지적했듯이 #MeToo 운동이 정서적으로 소모가 컸던 주제였으며, 정신 소모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 조니 뎁과 앰버 허드의 가정폭력 재판이었다. 할리우드의 톱 배우 두 명이 서로 상대방의 학대와 폭력을 주장하며 재판정에서 공방을 벌였으며, 앰버 허드 측에 불리한 결론이 나면서 #MeToo 운동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일시적으로 감소했던 것이다.

뉴욕 타임즈의 조디 캔터, 메건 투히 두 기자의 인터뷰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