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나 터너(Tina Turner)는 ‘로큰롤의 여왕’(The Queen of Rock‘n’Roll)으로 불렸던 가수로, 영화배우 겸 댄서로도 유명한 엔터테이너였다. 10대 후반의 어린 시절, 후일 남편이 된 아이크 터너(Ike Turner)의 무대에 매료되었고, 그와 결혼하여 부부 듀오로 196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듀오는 20여 년 동안 빌보드 핫100 차트에 20여 곡을 올려놓았다. 하지만 남편의 학대와 폭력으로부터 무작정 도망쳐 나와, 1970년대 후반부터 솔로 활동에 나섰다. 그의 다섯 번째 솔로 앨범 <Private Dancer>(1984)가 그래미 4관왕에 이어 지금까지 1,200만 장이 팔리는 메가 히트 앨범이 되면서 정상에 우뚝 올라섰다. 그러다 자신의 음악이 미국보다 유럽에서 더 인정을 받는다며 런던으로 이주하였고, 2013년부터는 미국 시민권을 버리고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였다. 근래에는 오랫동안 암, 뇌졸중, 신부전 등으로 투병생활을 하다가, 올해 5월 24일 조용히 83년의 생을 마감하였다. 그의 생과 음악을 되돌아보았다.

그에게 첫 그래미를 안긴 Ike & Tina Turner ‘Proud Mary’(1971)

 

폭력적인 남편과의 이혼

세인트 루이스에 살던 16세 소녀 ‘티나’는 클럽에 갔다가 무대에서 선 로큰롤 스타 아이크 터너에게 반했다. 그를 졸라 그의 밴드 ‘Kings of Rhythm’에서 활동하다가 결국 그와 결혼해 부부 듀오 ‘Ike & Tina Turner’로 활동했다. 1960년대부터 빌보드 핫100차트에 20여 곡을 올리며 정상의 부부 듀오로 등극했지만, 결혼 생활 16년 만에 파경을 맞았다. 이혼 후 10여 년이 지나서야 전 남편에게 폭력과 학대를 당했다는 사실을 언론에 밝히기 시작했다. 듀엣으로 함께 활동했지만 ‘티나’에게 돌아온 수입은 거의 없었고, 뜨거운 커피를 붇거나 옷걸이로 때리기도 했다. 당대 스타였던 그가 뒤늦게 용기를 내서 그동안 숨겨왔던 남편의 폭력을 세상에 밝힌 것은, 당시 미국 사회에 만연한 피학대여성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하지만 2년에 걸친 이혼 재판이 종결되자, 그는 취소된 공연에 대해 배상하느라 빚을 졌고 이를 갚기 위해 홀로 닥치는 대로 무대에 서야 했다.

티나 터너의 솔로 재기를 알리는 곡 ‘Private Dancer’(1984)

 

믹 재거와의 에피소드

‘티나’는 데이비드 보위를 위시한 록 스타들과 친하게 지냈지만, 그 중에서도 롤링 스톤스의 보컬리스트 믹 재거(Mick Jagger)와는 막역한 관계였다. 두 사람은 오래 전부터 함께 공연을 다니면서 무대 위에서 에너지 넘치는 동작을 보여주었는데, 두 사람의 댄스가 너무 비슷해 믹 재거가 티나 터너의 동작을 따라 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1985년에 열렸던 라이브 에이드(Live Aid) 공연에서 믹 재거가 티나 터너의 스커트를 잡아뜯어 팬티가 드러났던 일화는 유명하다. 당시 흥에 겨운 믹 재거가 무언가 사고를 칠 분위기였고, 웃통을 벗은 믹 재거가 “너의 스커트를 벗길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바로 행동에 옮겼다. 한 순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은 ‘티나’는 곧바로 웃는 얼굴로 바꾸어 별탈 없이 마무리를 지었다. 당시 이 장면은 고스란히 영상에 담겨 팬들의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티나 터너는 얼마 전 생애 마지막 인터뷰에서 스타 중에 누구를 가장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롤링 스톤스와 함께 순회 공연하기를 즐겼으며, 언제나 믹 재거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었다”라 밝힌 바 있다. 믹 재거 역시 ‘티나’의 부고 소식에 대해 인스타그램을 통해 깊은 상실감을 토로하였다.

라이브 에이드 공연의 티나 터너와 믹 재거

 

로큰롤 여왕의 힘든 여정

그는 폭력적인 남편과 헤어진 후 우울증을 극복하며 홀로 삶을 헤쳐 나가야 했으며, 1985년 독일의 음반 프로듀서인 현재 남편 에르빈 바흐(Erwin Bach)을 만나면서 점점 안정감을 찾았다. 미국을 떠나 런던에서 한동안 거주하다가 1994년부터는 최종적으로 스위스에 정착하였다. 2008년에는 데뷔 50주년을 기념하는 공연 <Tina!: 50th Anniversary Tour>을 벌여 37차례 좌석이 매진되었고, 오랫동안 동거했던 에르빈 바흐와 정식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암 판정을 받고 힘겨운 투병 생활이 시작되었고, 이듬 해에는 신장에 문제가 생기자 남편에게 신장 이식을 받아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그후 뇌졸중까지 겹치며 스위스에서 허용된 안락사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첫 남편으로부터 양육권을 인정받은 두 아들을 먼저 보내면서 극도의 상실감을 맛보았다. 삼남 크렉(Craig)은 2018년에 59년의 생을 스스로 마감하였고, 지난해에는 막내 로니(Ronnie)가 지병으로 62세로 생을 마감하였다. 노년에 불교에 심취한 그는 올해 5월 24일 83년을 일기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영화 <매드 맥스 3>(1985)에 출연한 티나 터너의 OST ‘We Don’t Need Another H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