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들어서 그래픽 기술이 진일보하여,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한 화면에 결합된 SF영화들이 등장하였다.미국에서는 약 7,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월드 오브 투모로우>(2004)가 첫 테이프를 끊었으나 흥행에서 고전했고, 일본에서는 인기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표현한 <캐산>(Casshern, 2004)이 괜찮은 평가를 받고 흥행에서도 선전했다. 프랑스에서는 영화 프로듀서 샤를르 가쏘(Charles Gassot)가 그래픽노블 작가 엥키 빌랄(Enki Bilal)과 손잡고, 그의 인기 만화 <니코폴>(Nikopol) 3부작을 기반으로 <임모르텔>(Immortal, 2004)을 제작하기도 했다. 이전에도 두 편의 영화를 연출하긴 했지만 본업이 만화가인 엥키 빌랄이, 오랜만에 감독으로 복귀해 의욕적으로 2,2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인 SF영화에 도전한 것이다. 하지만 영화를 본 평론가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양분되었고, 상업적으로도 실패하여 논란과 비운의 영화가 되었다.

영화 <Immortal>(ad vitam) 예고편(Remastered)

만화가 엥키 빌랄이 12년에 걸쳐 집필한 ‘니코폴’ 3부작 <신들의 카니발>(1980), <여인의 함정>(1986), <적도의 추위>(1992)는 신과 인간 그리고 안드로이드, 돌연변이, 외계인, 철학과 종교적 담론이 뒤섞인 복잡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거대한 세계를 창조한 작가가 직접 100분 길이의 영화로 함축하다 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장면과 난해한 대사들로 인해 관객들에게는 친절하지 않고 편하게 볼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더군다나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뒤섞여 있는 화면들이나 완성도가 떨어지는 비주얼이 거슬리기도 했다. 그의 만화를 미리 접했던 열성 팬들은 화려한 실사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환호했지만, 정작 박스오피스에서 벌어들인 수입은 630만 달러에 불과한 실패작으로 끝났다. 결과적으로 제작비 2,200만 달러의 3분의 1도 거두지 못한 비운의 망작이 된 것이다.

영화 <Immortal>(ad vitam) 전편 보기(영어 자막)

영화의 배경은 2095년의 미래이며, 모티프는 고대 이집트신화에서 가져왔다. 미래 도시 뉴욕 상공에 떠있는 피라미드에 사는 이집트신 ‘호루스’가 영원한 삶에 염증을 느껴 불멸을 박탈당하는데, 그 전에 주어진 7일 동안 자신의 아이를 잉태할 여인을 찾아 나선다. 그는 이집트 벽화에 나오는 것처럼 독수리의 얼굴을 가진 사람 형상으로, 인간 세계로 내려와 특별한 능력을 지닌 여인 ‘질 비오스콥’을 유혹하기 위해 인간 ‘니코폴’에게 접근하고, 그의 몸을 빌려 자신의 후손을 남기는 데 성공한다. 푸른색 머리칼과 푸른색 눈물을 가진 휴머노이드 ‘질 비오스콥’ 역은 슈퍼모델 출신의 프랑스 배우 린다 하디(Linda Hardy)가 맡았고, 교도소에서 탈출한 정치범 ‘니코폴’ 역은 독일 배우 토마스 크레치만(Thomas Kretschmann)이 맡았다. 요즘 드라마에서 자주 나오는 영국 배우 샬롯 램플링(Charlottte Rampling)도 볼 수 있다.

엔키 빌랄의 그래픽 노블 <Immortals> 중 일부

원작의 스토리가 궁금하다면 2000년에 국내에서 번역 출간되었던 <니코폴>을 중고서점에서 구해볼 수 있다. 당시 발매한 국내 DVD도 간혹 알라딘 서점에서 구할 수도 있지만, 황당하게도 제목이 <서기 2095년 블레이드 러너>(2007)로 되어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현재 유튜브에 1시간 40분의 영화 전편이 올라와 있어서 영어 자막으로 감상할 수 있다. 20여 년 전의 작품이다 보니 CG 수준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지만, 원작에 바탕을 둔 기묘한 비주얼은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영화 <임모르텔> 메이킹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