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25년 만에 돌아온 북산고 농구부의 전국대회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잘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그 이상이다. 1990년대, 대학 농구와 한국 프로농구 출범을 기억하는 X세대에겐 청춘을 대한 향수를 선사하고, 만화 팬으로 유입된 1020에겐 스포츠의 전율을 간접 경험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농구가 다시 대중과 가까워질 조짐은 1~2년 전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는 NBA의 전설이자 브랜드가 된 마이클 조던을 재조명하며 남녀노소 모두의 사랑을 받았고, <라스트 찬스 대학: 바스켓볼>은 미식축구의 스핀오프로 시작해 시즌 2까지 제작되었다. 농구의 시대, 2020년대에 다시 열리는 걸까?

 

북산고 6번째 선수가 된 360만 관객, <더 퍼스트 슬램덩크>

원작자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참여로 골수 팬들의 기대를 받은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흥행을 넘어 신드롬이 되었다. 주목받지 못한 팀 내 최단신 송태섭이 이루어낸 돌파처럼 애니메이션 영화에 대한 대중의 편견을 깨고 새로운 기록을 세우고 있다. 관람객 한정 굿즈부터 더현대에서 열린 팝업 스토어까지 그 열기를 이어간다. 사람들이 124분짜리 영상 속 세계에 이토록 빠져든 이유는 무엇일까?

<더 퍼스트 슬램덩크> 런칭 예고편

극의 소재가 되는 농구는 대중적인 스포츠다. 우선 규칙이 매우 직관적인 편이다. 5명의 팀원이 코트 내에서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골대에 공을 넣어 점수를 얻어낸다. 빠르게 전환되는 공수만큼 현란한 드리블 기술이 등장하고, 격한 몸싸움과 높은 골대에 유리한 압도적인 신체 조건이 주목받는다. 잘 모르는 입문자도 금세 몰입할 수 있다. 무엇보다 ‘길거리 운동’으로 통하는 농구에는 언더독 스토리가 잘 어울린다. 아버지와 형을 잃은 후 농구에 전념하는 송태섭, 생전 처음 싸움 외 재능을 인정받은 강백호, 덩치만 큰 주니어에서 팀의 주장으로 거듭난 채치수 등 부정적인 상황을 이겨낸 캐릭터의 성장은 가슴속에 무언가 끓어오르게 한다. 재능에 맞는 역할을 부여하는 안 감독 같은 스승은 약자들의 반란을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다.

한 경기 안에서 무명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북산고 선수 라인업 © 에스엠지홀딩스㈜

여기에 더해 오리지널을 살린 작화, 박진감 넘치는 모션, 2D와 3D를 넘나드는 공간감은 시각적으로 영화를 풍성하게 만든다. 강약 조절이 절묘한 음향과 강렬한 비트의 사운드트랙은 영화관을 찾는 즐거움을 상기시켜준다. 2차, 3차 관람을 가능케 하는 중요한 요소들이다. 농구라는 스포츠의 특징과 경기를 뛰는 캐릭터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연출로 역대급 기록을 남긴 영화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첫 번째 슬램덩크 이전에 조던의 마지막 춤이 있었다!,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

잘 만들어진 레트로 농구 콘텐츠. 그 시작은 <마이클 조던 : 더 라스트 댄스>다. NBA 전성기를 이끈 농구 전설 마이클 조던을 다룬 다큐멘터리는 그의 선수 시절 전반을 조명한다. 조던이 농구를 하나의 스포츠에서 패션으로, 브랜드로, 콘텐츠로 계속 확장해나가는 과정은 가히 ‘농구 황제’라 칭할 만하다. 조던은 극빈층 가정에서 태어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신인 드래프트 때부터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재능에 노력을 더해 마침내 독보적인 선수로 올라섰을 때, 아이러니하게도 팀은 우승을 번번이 놓치기도 하였다. 필 잭슨의 독창적 전략, 피펜과 로드맨 같이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동료를 만났을 때 비로소 간절한 우승컵은 시카고 불스의 품에 들어온다. 농구 전설의 업적이 녹아있는 이 시리즈는 조던의 선수 시절의 타임라인을 오가며 경기 영상과 인터뷰 장면을 교차하고 점점 몰입도를 높인다.

<마이클 조던: 더 라스트 댄스> 예고편

회차를 거듭할수록 생생하게 묘사되는 조던의 경기력과 행적을 통해 팬이 될 수밖에 없다. 조던 농구화 정도밖에 모르는 문외한도 90년대 광적인 조던 열풍에 심적으로 동참하면 결말을 향해 내달린다. 당시 각본 없는 드라마를 함께 지켜본 사람이라면 기자, 동료 선수, 구단 측의 인터뷰를 통해 더욱 입체적으로 조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로튼 토마토 97%에 빛나는 신선함과 IMDb 9.1점에 빛나는 수작은 방구석 1열에서 N차 관람이 가능하다. 코로나로 나이키 모든 제품이 역성장할 때, 조던 브랜드만큼은 15% 가까이 성장한 것도 ‘조던의 마지막 춤’ 덕분일 것이다.

최고의 플레이 메이트, 스코티 피펜과 마이클 조던 © 넷플릭스

 

절박한 순간 찾아온 농구 인생 전환점, <라스트 찬스 대학: 바스켓볼>

<라스트 찬스 대학> 는 운동만이 희망인 선수들이 대학에 모여 프로 데뷔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을 담았다. 미국 내 최고 인기 종목 미식축구로 시작한 콘텐츠는 농구로 이어져 이스트 LA 컬리지 농구팀 ‘허스키스’를 다룬다. 농구로 커리어를 이어가기 위해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아마추어 학생들이 주인공이다. 그들은 가정에서 지원받지 못하거나, 범죄에 연루된 기록이 있거나, 도태된 경험이 있는 절박한 영혼이다. 열악한 환경과 박봉 포지션에도 코치진은 학생들의 처지와 입장을 누구보다 깊게 이해하고 그들의 손을 놓지 않으려 전방위로 노력한다. 모즐리 감독은 스피닝 강사를 비롯해 여러 일을 수행하면서도 훈련중 에너지를 전부 사용하며 선수들과 마주하고, 코치 롭은 아이들이 학업 때문에 출전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과제나 시험 준비를 돕는다.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학교 역사 이래 최고의 성적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슬램덩크 실사판 같다.

<라스트 찬스 대학: 바스켓볼> 예고편

<라스트 찬스 대학: 바스켓볼>은 최고의 대우를 받고 완성된 실력으로 화려한 경기를 진행하는 프로 경기와 완전히 다른 재미와 감동을 준다. 드숀은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를 잃은 지 얼마 안 되었지만, 농구에 집중하며 팀을 아우르는 리더십을 발휘한다. 반면에, 부상으로 유망주 위치에서 추락한 조는 번번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뛰쳐나가는데, 며칠 뒤 모즐리 감독을 찾아와 어리숙한 해명을 늘어놓는 모습이 풋풋하다. 삶의 울타리가 되는 코치진과 인생이 걸린 농구공이 기댈 수 있는 마지막 희망임을 알고 있는 선수들은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 시즌 1과 2 사이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공백이 발생하며 순탄치 않은 여정이 계속되는데 그럴수록 역경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는 더욱 커진다.

하나의 팀이 되어 새로운 역사를 쓰는 허스키스 © 넷플릭스

생활 체육으로 골프와 테니스 등의 종목이 각광받는 요즘이지만, 튼튼한 신체와 농구공 하나로 써 내려가는 서사는 날 것의 매력이 있다. 격렬한 몸싸움과 욕설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원-팀이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일상에서 느끼기 힘든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장벽이 낮은 농구는 숨겨져 있던 선수들이 다시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나아갈 수 있는 촉매제가 된다. 이런 모습을 담은 농구 콘텐츠는 단지 과거의 영광을 재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각의 이야기를 제안하고 이 시대에 맞는 문법으로 재해석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스타가 발굴되고, 농구 종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호재가 발생하고 있다. 일주일에 한 번 농구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이런 트렌드와 맞물려 더 활기를 띤다. 이토록 즐거운 농구를 모두 함께 즐기는 시대가 오래 이어질 수 있길 바라본다.

 

Writer

넓고 깊게 이야기를 담고 싶은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