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8부작 다큐 시리즈 <고대의 아포칼립스>(Ancient Apocalypse)가 인간의 고대 역사에 관해 열띤 논쟁을 다시 유발했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으로는 드물게 출시되자마자 넷플릭스 드라마 차트의 톱 10에 올라 한동안 머물렀지만, 영국의 가디언(The Guardian)은 “가장 위험한 넷플릭스 쇼” 이자 “음모론자들을 위한 것”이라며 평가절하했다. 시리즈의 주인공 그레이엄 행콕(Graham Hancock)은 세계의 고대 유적을 다니며 기존 주류 과학자들의 가설이 틀렸다고 주장하며, 자신을 유사 과학자라 부르는 주류 학자들을 냉소한다. 그는 자신의 저서 <신의 지문>(1995)나 <신의 거울>(1998)에서 주장했던 가설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집트, 멕시코, 인도네시아, 미국 등의 고대 유적들을 찾아다니며 시청자들의 동의를 구하는데, 그의 저서 만큼이나 시리즈에 대한 의견 또한 크게 갈렸다. <고대의 아포칼립스>는 올해 11월 11일 넷플릭스에 등장하여 오락드라마 사이를 비집고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다큐 시리즈 <고대의 아포칼립스> 예고편

그레이엄 행콕의 명저 <신의 지문>(1995)의 부제는 ‘사라진 문명을 찾아서’였다. 우리가 이제껏 알아왔던 BC 6,000년경의 이집트 문명이나 BC 3,500년경의 메소포타미아 문명, 그리고 기원전 2,000년경의 메소아메리카 문명보다 훨씬 이전인 약 1만 2,000년 전에 지구 상에 고도의 문명이 존재했다는 게 그의 주장의 핵심이다.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인 영거 드라이어스(Younger Dryas) 시대에 혜성으로부터 비롯된 지각변동과 대홍수의 환란이 지구상에 닥치며 고도의 문명은 종지부를 맞았고, 여기서 살아남은 소수의 선각자가 배를 타고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수렵-채집인(Hunter-Gatherer)들에게 사라진 문명의 지식을 전파하여 인류의 4대 문명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턱수염을 기르고 우람한 체격의 선각자는 이집트에서 오시리스(Osiris), 멕시코에서 케찰코아틀(Quetzalcoatl)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며, 각 지역에서 전설과 신화로 떠받드는 신적인 인물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의 가설이 사실이라면 그 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인류 문명보다 훨씬 이전에 사리진 고대 문명이 존재했던 것이다.

그레이엄 행콕의 <신의 지문> 시리즈를 해설한 국내 영상(미스터리튜브)

학계로부터 유사학문 또는 이단으로 배척되는 그레이엄 행콕은 정통 과학자가 아니라 저널리스트 출신이다. 영국의 더럼(Durham) 대학교에서 우등으로 사회학을 전공하고, 저널리스트와 작가의 길을 걸었다. 유력 잡지 <New Internationalist>에서 4년, <The Economist>에서 3년을 일하면서, <The Times>, <The Independent>, <The Guardian> 등에도 기고했다. 처음에는 경제개발 주제에 집중했던 그는 이그네이셔스 도널리(Ignatius Donnelly)의 <Atlantis: The Antediluvian World>(1882)에서 영향을 받아 고대 유적으로 관심을 돌렸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연구 결과와 가설을 정리한 저서를 출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역사학이나 고고학의 정통 학술잡지에 실리지 않았고, 유사 고고학(Pseudoarchaeology) 또는 유사 역사학(Pseudohistory)으로 배척을 받았다. 정통 학자들은 그의 가설이 학문적인 검증을 받지 않았고, 일부 증거를 선별적으로 채택하여 일관성이 결여되었다고 비판한다. 또한 각 지역의 토착 문화의 우수성을 배척하고 우주인이나 백인 우월주의를 뒷받침한다는 주장도 있다.

그레이엄 행콕의 초기 다큐멘터리 <Quest for the Lost Civilization>(1998)

그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6,500만 년 전 소행성의 지구 충돌로 공룡 멸종을 야기한 대재앙(Apocalypse)이 약 1만 2,000년 전 고대 문명을 이루었던 인류에 또 다시 큰 충격을 주었다는 것이다. 이집트의 거대한 피라미드와 비슷한 구조물이 중남미에서도 발견이 되고, 각 지역의 고대 신화에 대홍수 이야기가 등장하며, 약 3~4만 년 전 등장한 인류의 고대사에 의문을 품었다면, 그의 가설에 흥미를 가질 만하다. 약 500만 부를 판매한 그레이엄 행콕의 서적 <신의 지문>이 나온 뒤로, 학계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그의 가설에 영감을 받은 재난 영화가 우후죽순 등장했다. 대표인 영화로는 <2012>(2009),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 2004), <10,000 B.C.>(2008)가 있으며, <프로메테우스>(2012)는 인간의 기원이 외계인의 유전자에서 비롯되었다는 가설에 바탕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