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어린 시절 TV에서 보았던 <말광량이 삐삐>를 기억할 것이다. 양 갈래로 땋은 붉은 머리, 주근깨로 가득한 볼, 긴 양말과 큰 구두를 신은 자유분방한 소녀 ‘삐삐’는 온 세계 어린이들의 친구로 안방극장을 누볐다. 1977년 KBS에서 처음 방영한 인기 연속극 <말광량이 삐삐>는 원래 스웨덴의 아동문학 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Astrid Lindgren)의 <Pipi Longstocking> 시리즈를 바탕으로 1969년부터 스웨덴에서 제작한 것이다. 그 외에도 <Emi of Lonneberga>(에밀은 사고뭉치>, <Karlsson-on-the-Loof>(지붕 위의 카알 손) 등 수많은 아동 서적을 써서 영국의 애니드 블라이튼(Enid Blyton), 덴마크의 한스 안데르센(Hans Andersen), 독일의 그림형제(Jakob & Wilhelm Grimm) 다음으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번역 출간된 동화작가다. 그가 판매한 아동서적은 1억 6,700만 부에 이른다.

KBS에서 방영한 연속극 <말광량이 삐삐>의 일부

스웨덴 남부의 나스(Nas) 출신인 ‘아스트리드’는 농사 일을 하는 부모님 밑에서 3녀 1남의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다. 그의 동화 저서는 대부분 전원에서 생활한 그의 어린 시절 추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학교를 마친 후 아스트리드는 지역 신문에서 일을 하면서 편집장의 아이를 갖게 된다. 하지만 외도 사실이 알려질 경우 이혼소송 중이던 그가 곤경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스톡홀름에서 몰래 아이를 낳고 1년 동안 위탁모에게 양육을 맡긴다. 갓 낳은 아이와 떨어져 옆에서 보살피지 못한 가슴 아픈 기억을 안게 되었는데, 최근 스웨덴에서 제작한 영화 <Becoming Astrid>(2018)는 작가로 입문하기 전의 그가 아이 엄마가 되는 시절을 다루고 있다. 2018년에 공개된 이 영화는 시카고 영화제에서 외국어작품상을 받았고, 로튼토마토 96%의 호평을 받았다.

영화 <Becoming Astrid>(2018) 예고편

아스트리드는 영화의 후반부에 새로운 직장 상사 ‘스투레 린드그렌’과 결혼하게 되고, 1934년에는 둘째인 여자아이 ‘카렌’(Karen)을 낳는다. 딸 아이를 키우면서 그에게 해준 베드타임 스토리가 바로 삐삐 롱스타킹이다. 1944년 그가 발목을 삐어 한동안 침대에 누워 지내면서 쓴 책이 대회에서 2등을 하였고, 이듬해 같은 대회에서 <삐삐 롱스타킹>을 출품하여 1등에 오르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전업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삐삐’는 출간하자 마자 그를 세계적인 아동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어른들의 권위를 무너뜨리고 아이들의 반발을 부추기는 ‘삐삐’의 태도에 대해 일부 언론들의 반감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먼저 영화로 제작된 <삐삐 롱스타킹>(1949)

그는 스톡홀름의 자택에 머물며 2002년 94년의 생을 마감할 때까지 동화책 34편, 그림책 41편을 펴냈다. 그의 책은 100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동안 그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많이 제작되었으나 전기 영화로 제작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이번 영화에 관해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번역가로 활동 중인 딸은 “엄마에게 편집장과의 관계나 양육 가정 이야기는 개인사이며 엄마의 삶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유명인들의 전기는 그의 성과에 대해 다루지 않았느냐?”라면서 항변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지금 넷플릭스에서 감상할 수 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생전 영어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