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를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량들 간에는 때로 긴장 관계가 형성되어 수많은 사건이나 사고가 일어나게 되며, 즐거워야 할 자동차 여행은 어느 순간 악몽으로 변하기도 한다. 북미 지역이나 호주처럼 횡단하는데 며칠이 걸리는 광활한 대륙의 경우, 로드 무비와 함께 그 서브 장르인 로드 스릴러(Road Thriller)가 발전했다. 여기에는 이상한 사건에 휘말리는 선량한 사람들이 있고, 괴물처럼 질주하는 육중한 대형 트레일러 트럭이 빌런이 되기도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고속도로나 휴게소, 자동차 여행자들이 일시적으로 묵는 도로변 모텔이 괴이한 사건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자동차와 운전자들이 도로 위에서 빚어내는 대표적인 로드 스릴러 다섯 편을 소개한다.

 

<결투>(Duel, 1971)

당시 20대 중반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장편영화 데뷔작으로, 당초 ABC의 방송용 영화로 제작되었다가 평이 좋아 확장판으로 극장에서 재상영한 영화다. 극작가 리처드 매드슨이 집으로 돌아가다가 대형 트럭에게 쫓겼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쓴 단편소설을 각색하였다. 주인공(데니스 위버)을 위협하며 무서운 속도로 뒤를 쫓는 트레일러 트럭의 운전사는 한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미지의 존재가 더욱 무섭다고 생각한 감독의 의도된 연출이다. 이 영화는 로드 스릴러 영화를 대표하는 컬트 클래식으로 추앙되었고, 스필버그 감독의 연출력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영화계에서 승승장구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 영화를 시작으로 외딴 도로에서 위협적인 대형 트럭을 빌런 캐릭터로 만나게 되는 아류 로드 스릴러들이 성행하기 시작한다.

 

<크리스틴>(Christine, 1983)

<할로윈>(1978)와 <괴물>(The Thing, 1982)의 대성공으로 호러의 거장으로 떠오른 존 카펜터(John Carpenter) 감독 작품으로, 스테판 킹의 동명 소설을 바탕으로 했다. 전 소유주의 악령이 깃들어 스스로 수리하고 감정을 품고 상대에게 복수하는 크라이슬러 플리머스 ‘Fury’ 1958년식 빨간색 차량이 주인공이며, 영화 촬영을 위해 23대의 같은 모델의 차량을 동원했다. 촬영이 끝나고 멀쩡하게 남은 차량은 지금도 경매에서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개봉 당시에는 흥행과 평가 측면에서 크게 흥행하지 못했으나,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2-도어, 하드탑 클래식 자동차를 주연으로 설정한 컬트 클래식으로 인정받는 영화다. 현재 소니 영화사와 블룸하우스가 함께 리메이크 영화를 제작 중이다.

 

<브레이크다운>(Breakdown, 1997)

영어의 ‘Breakdown’은 차가 고장나 주저앉았다는 의미로, 새로 뽑은 그랜드 체로키 차를 타고 보스턴에서 샌디에이고로 대륙 횡단여행을 하던 부부에게 일어나는 이야기다. 도로 위에서 낡은 픽업 트럭을 탄 현지인들과 시비가 벌어지면서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누군가 차를 고장내서 사막 한 가운데 차가 주저앉은 사이 다른 차를 얻어 탄 아내의 행방이 묘연해진다. 평범한 영웅의 좌충우돌 액션 연기로 이미지가 굳어진 커트 러셀이 이미지에 맞는 연기를 펼쳐, 경찰도 아닌 일반인이 마치 <다이 하드>의 존 맥클레인 같은 액션을 펼친다는 우스개 소리를 듣기도 했다. 로튼토마토 82%의 준수한 평가를 받았으나, 흥행 성적은 5,000만 달러를 겨우 넘어서는 평범한 성적에 그쳤다.

 

<캔디 케인>(Joy Ride, 2001)

미국에서는 <Joy Ride>, 영국과 일본에서는 <Road Kill>, 우리 나라에서는 <캔디 케인>이라는 다른 제목으로 상영되었고, 엔딩도 여섯 가지로 상이하게 만들어진 다소 독특한 형식의 영화다. 개봉 당시에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컬트 영화로 추앙하는 팔로워가 늘어나자, 대형 트럭을 타고 다니는 연쇄살인마 ‘러스티 네일’을 고정 출연시킨 프랜차이즈 영화 <Joy Ride 2: Dead Ahead>(2008), <Joy Ride 3: Roadkill>(2014)로 연이어 나왔다. 대륙 횡단여행을 하게 된 형제가 무선 통신으로 ‘캔디 케인’이란 가명을 써서 ‘러스티 네일’이란 남자를 놀려주면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같은 해의 영화 <패스트 앤 퓨리어스>(2001)로 자동차와 연관된 캐릭터로 유명해진 폴 워커(Paul Walker)의 또 다른 성공작이다.

 

<데쓰 프루프>(Death Proof, 2007)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이 영화 <킬빌> 흥행 이후 친구인 션 펜으로부터 운전사가 절대 죽지 않는 자동차 이야기를 듣고 착안한 영화다. 스턴트맨 출신의 사이코패스 킬러가 자신이 고안한 머슬카를 이용하여 여성들을 연쇄 살인한다는 내용의 B급 슬래셔 영화인데, 감독 스스로도 최악의 영화라고 평가한 적도 있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Planet Terror>와 함께 두 편의 장편영화를 묶어 <Grindhouse>라는 통합 제목으로 상영했는데, ‘그라인드하우스’(Grindhouse)는 저급한 영화를 여러 편 묶어 상영하던 허름한 재상영관을 의미한다. 두 사람이 유명 감독이 어린 시절 열광했던 ‘그라인드하우스’의 추억을 살려 의기투합하였지만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자동차로 살인을 일삼는 사이코패스(커트 러셀)에 맞서는 여성 배우들 역시 대부분 스턴트 배우라, CG 없이 고난도의 액션 장면을 직접 연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