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의 세계>

The World of Ifㅣ2014ㅣ20minㅣ감독 임대형ㅣ출연 배유람, 박주희

<만일의 세계> 스틸컷. 배우 박주희와 배유람

몹시 이상적인 남자와 현실적인 여자가 있다. 순수해 보이지만 때론 한없이 낭만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 시인지망생 ‘만일’(배유람)과 어느 때보다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는 취업준비생 ‘주희’(박주희)다. 오래된 연인인 두 사람은 언제부턴가 서먹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모처럼 얘기를 하자며 주희를 찾아온 만일은 자꾸 허무맹랑한 이야기만 늘어놓고, 주희는 그런 만일을 여전히 답답해한다. 마치 이상과 현실이라는 두 단어처럼 동떨어져 보이는 두 사람. 그런 둘은 결국 화해할 수 있을까.

단편영화 <만일의 세계>는 말 그대로 주인공 '만일'의 세계를 가리킨다. 여유롭고 낭만적인 만일의 세계는 선택에 따른 결과가 맞는지 확신할 수 없는 ‘만약’의 세계이기도 하다. 반면, 주희의 세계는 빠르고 확실한 정답만이 인정받는 현실 그 자체다. 그것은 곧 마감 기한까지 자기소개서를 제출해야 하고, 빨리 취업해야만 불안을 떨칠 수 있는 청년 세대의 현실이다. 그러한 현실세계에서 만일의 ‘이상’적이고, ‘이상’한 말과 행동은 ‘쓸데없는’ 것이라는 불문율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영화는 만일과 주희의 달라지는 관계를 현실과 이상의 간극에서 오는 청년 세대의 갈등에 빗대어 씁쓸하게 이야기한다.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출신인 임대형 감독은 평소 좋아하던 이장욱 시인의 시집 <생년월일>에 실린 동명의 시 ‘만일의 세계’를 영화 제목으로 썼다. 시의 서사와 영화의 내용은 다르지만,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는 한 편의 시 같기도 하다. 임대형 감독은 눈에 띄는 작위적인 연출을 통해 비유와 상징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어 재미를 입혔다. 한편, 다양한 독립영화에서 배우로도 출연한 적 있는 그는 이번 작품에서 만일의 학교 선배로 분해 독특한 열연을 펼친다.

<걷기왕> 스틸컷. 배우 박주희

무엇보다 영화의 묘미는 낯익은 배우들의 조합이다. 주희 역을 맡은 배우 박주희는 임대형 감독의 전작 <레몬타임>(2012)에서 배우 안재홍과 함께 먼저 출연한 바 있다. 그는 옴니버스 영화 <어떤 시선>(2012), <시선사이>(2015), 단편영화 <졸업여행>(2012), 임대형 감독과 함께 출연한 단편영화 <서울집>(2013)을 포함, 최근 <걷기왕>(2016)까지 독립영화계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선보인 신예 배우다.

<범죄의 여왕> 스틸컷. 줄무늬 티셔츠를 입은 고시생 역의 배유람

만일 역을 맡은 배유람의 필모그래피 역시 만만치 않다. 유독 배우 안재홍과 함께 출연한 작품이 눈에 띄는데, 단편영화 <구경>(2009), <술술>(2010)을 포함, <범죄의 여왕>(2015)에서는 고시생 카메오로 출연했다. 최근 <장기왕: 가락시장 레볼루션>(2016)에서는 주인공 두수를 놀리며 도망가는 까불이 학생을 맡아 얼굴을 비췄다. 앞으로 찾아올 몇 편의 작품에서 더 다양해질 배유람의 모습을 기대해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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