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캣(polycat)은 2011년 치앙마이에서 결성된 태국 인디밴드다. 당시 사용하던 신시사이저 브랜드 'poly'와 멤버 모두 고양이를 좋아하는 공통점을 결합하여 'polycat'이라는 밴드명을 지었다.

태국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별칭인 ‘츠렌’(ชื่อเล่น)을 쓰는데, 각각 ‘나’(Na, 본명 Rattana Chanprasit)로 불리는 리드보컬, 베이스의 ‘퓨어’(Pure, 본명 Pure Watanabe), 키보드의 ‘통’(Tong, 본명 Plakorn Kanchina)이 현재 폴리캣의 멤버다. 5명으로 출발했지만, 현재 이 3명이 남아 최고의 균형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 <행오버 2>(2011)에 치앙마이 밴드 역할로 출연하게 되면서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된 폴리캣은 2집 <80 Kisses>(2016)가 크게 히트하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팀이 되었다. 각자 메인 포지션이 있지만 나(Na)는 보컬 외에 기타, 통(Tong)은 트럼펫을 연주하고, 셋 모두 신시사이저를 연주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파이기도 하다. 이 같은 실력을 바탕으로 고전적인 방식만을 고집하지 않고 R&B, 블루스, 가스펠, 네오 소울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해 1980년대 감성에 대한 일반적인 접근 방식을 아름답고 영리하게 변주하고 있다.

폴리캣 <Chapter 2 เวลาเธอยิ้ม> ‘you had me at hello’ 뮤직비디오

태국에서 레트로 신스팝 장르를 대표하는 밴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80 Kisses>는 1집 <05:57>(2012) 발매 이후 5년 만에 나온 앨범이었다. 그룹으로서 음악색이 비교적 뚜렷하지 않았던 1집 이후, 멤버들은 향수를 자극하는 1980년대 음악들을 제대로 만들어 보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았다.

<Chapter 시리즈>는 <80 Kisses>의 수록곡 중 각각 3곡씩 엮어서 제작한 세 편의 뮤직비디오로 실제 1989년에 개봉했던 태국의 인기 영화를 정식 차용하여 제작했다. 때문에 이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와 뉴트로를 이제 막 즐기기 시작한 세대까지 많은 이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주목을 받았다. 특히 ‘당신이 웃을 때’라는 의미의 곡 ‘เวลาเธอยิ้ม’ (웰라트어임)은 폴리캣의 공연 셋 리스트에 자주 등장하며 전주부터 관객의 환호성이 가장 큰 무대 중 하나인 만큼, 이 앨범이 여전히 사랑받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폴리캣 ‘ซิ่ง’ 뮤직비디오

과속, 경주, 레이싱을 의미하는 ‘ซิ่ง’ (칭) 또한 <80 Kisses>에 수록되어 있는 곡으로 레트로의 정수를 정면으로 보여준 뮤직비디오였다. 과장된 액션과 빠른 화면 전환, 소품과 의상, 색감 등 화면비율을 제외하면 1980년대 미학의 공식을 완벽하게 따른 작품으로서 앨범이 가진 방향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였다.

뉴트로 붐이 일면서 일련의 양식을 따른 작품들은 많았지만 음악과 영상, 앨범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견인해 나갈 만큼의 작곡 실력까지 모든 영역의 균형을 고루 갖춘 그룹은 드물었다. 그렇기에 <80 Kisses>는 여전히 폴리캣의 정체성에 가장 가까운 앨범으로 꼽히며 폴리캣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을 견고하게 확장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폴리켓 ‘เพื่อน’ 커버, 뮤직비디오 영상 (c) BEFORE FRIEND ZONE

폴리캣의 매력은 자작곡 외에 번안곡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밴드 ‘พองพอ’ (퐁퐁)의 곡 ‘프안’(เพื่อน, 친구)은 1999년 태국 방송국 채널3 드라마의 OST로 쓰인 이후 여러 버전의 공식 커버가 나올 정도로 태국의 많은 이들이 추억을 갖고 있는 곡이다. 친구를 짝사랑하는 마음을 담은 내용인 원곡의 느낌을 이어받아 2019년에 폴리캣이 ‘프안’을 리메이크하게 되었다.

‘프안’의 노래를 배경으로 나오는 <비포 프렌드 존>은 태국의 인기 로맨틱 코미디 영화 <프렌드 존>(2019)의 스핀오프 격으로 제작된 단편 뮤직비디오다. 동성 친구 ‘패’를 짝사랑하는 주인공 ‘쑤암’은 패의 고장 난 외장하드를 고쳐 주기로 했고, 외장하드를 복구하면서 여자친구와 함께 찍은 패의 사진 대신 자신과 패의 사진을 넣는다.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로 결심한 뒤 고백을 하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뮤직필름은 엉뚱한 전개와 위트 넘치는 연출, 주인공 쑤암의 식은땀 나는 연기가 압권이다.

원곡에 없는 인트로의 색소폰이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이처럼 같은 커버 곡일지라도 특유의 폴리캣 느낌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이들의 신스팝 프로듀싱 능력은 탁월하다.

폴리캣 ‘Self Love’

더바디샵의 캠페인 싱글로 제작된 ‘Self Love’는 폴리캣의 또다른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곡이다. 보컬 나(na)가 작곡 및 작사를 맡아 산뜻한 멜로디와 가사로 희망적인 에너지를 발산한다. 뮤직비디오에는 폴리캣뿐 아니라 태국에서 오랜 시간 사랑받고 있는 가수 겸 배우 알렉산더 렌델(Alexander Rendell)과 인기 신인 배우 걸프 카나웃(Gulf Kanawut)이 함께 출연해 곡의 밝은 분위기를 완성시켰다.

올해 7월에는 품절이었던 1집과 2집을 복구하는 세컨드 에디션을 발매했다. 폴리캣은 이를 기념하며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남겼다. 1980년대 장르 팝을 밤새도록 들으며 “이 노래가 우리 노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농담을 나누던 시절, “앨범을 만들고 싶다.”라는 말 한마디로 시작된 초창기 폴리캣에 대한 회상이기도 했다.

작업을 마쳤던 시간이 새벽 5시 57분이어서 생애 첫 앨범 명이 <05:57>이 되었고, 첫 자작곡을 관객 앞에서 연주하던 순간이 폴리캣으로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말한다. 교복을 입고 엄마와 함께하던 관객, 쇼핑몰이나 바에서 친구들과 손을 흔들던 관객, 연인과 노래를 부르던 관객들을 떠올리며 단지 이들의 인생에 폴리캣의 음악이 계속 이어지며 함께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히며 들어준 팬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하나의 장르를 대표하면서도 그 장르 안에 갇히지 않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고정된 레퍼토리를 갖고 가는 동시에 신선함을 보여준다는 것은 묘기에 가까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폴리캣은 그저 꾸준히 곡을 쓰고, 라이브를 통해 관객과 호흡하며 강렬하고 짙은 잔향을 남긴다. 지나간 시대를 동경했던 밴드가 또 하나의 시대와 만나 자신만의 발자국을 남기며 전진하고 있다.

 

폴리캣 페이스북

 

Writer

그림으로 숨 쉬고 맛있는 음악을 찾아 먹는 디자이너입니다. 작품보다 액자, 메인보다 B컷, 본편보다는 메이킹 필름에 열광합니다. 환호 섞인 풍경을 좋아해 항상 공연장 마지막 열에 서며, 동경하는 것들에게서 받는 주체 못 할 무언가를 환기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