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게르마니아(독일)의 영웅 혹은 해방자로 숭배되는 아르미니우스(Arminius)는 게르만 민족주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인물이다. 하지만 과거 나치 선동에 적극 활용되어 한동안 독일 국내에서 그에 관해 언급하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독일에서 제작한 넷플릭스 드라마 <바바리안>(The Barbarians)에서 그의 영웅담이 다시 조명되었다. 로마 제국이 유럽을 지배하던 서기 9년, 그는 분열되어 있던 게르만 부족을 모아 로마 제국의 3개 군단을 토이토부르크(Teutoburg) 숲에서 습격하였다. 약 2만여 명의 로마 정예병은 3일 동안 계속된 전투에서 괴멸되었고,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충격은 엄청났다. 2020년 10월 넷플릭스에 공개된 <바바리안>(The Barbarians) 6편은 토이토부르크 전투까지의 서사를 담고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바바리안>(2020) 예고편

당시 게르마니아(Germania)는 당시 50여 개가 넘는 부족으로 흩어져 하나의 민족이라는 개념이 희박했다. 그 중 하나인 체루스키(Cherusci) 족장 세기메르(Segimer)의 아들이었던 아르미니우스는 로마 군단에 입대해 전공을 쌓아 로마의 기사 작위를 받은 인물이며, 자신의 고향 게르마니아에 부임했을 때 나이 23세에 불과했다. 그는 게르마니아 총독 바루스(Barus)의 신임을 받았으나, 로마에 충성하는 대신 게르만 민족을 설득하여 함께 반기를 들었다. 토이토부르크 전투(Battle of the Teutoburg Forest)는 그가 주도한 게르마니아 해방 전쟁의 신호탄이었으며, 그는 로마군단의 지휘관에서 게르만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후에도 로마 군대와의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전과를 올렸으나, 부인 투스넬다는 포로로 잡혀 로마로 압송되는 비운을 맛보기도 했다. 그는 서기 21년 게르만 족의 반대파에게 암살되어, 그의 영웅적인 신화는 막을 내렸다.

<임용한의 전쟁사> 중 토이토부르크 숲 전투

독일에서 제작된 <바바리안>(2020)에 대해서 평가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이었다. 로마인을 연기한 배우들은 라틴어 대사를 연기했고, 로마 병사의 복장이나 막사, 특히 독일의 전통 가옥은 고증에 충실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세 명의 반란 주역, ‘아르미니우스’와 ‘투스넬다’, 그리고 ‘폴크빈’을 연기한 배우들에 대해서도 호평 일색이었다. 하지만 역사학자의 자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락적인 재미를 충실히 하기 위해 쓸데없는 나체 연기나 목이 달아나는 잔혹한 장면들을 섞어 ‘칼-방패 서사 영화’(Sword-and-shield film)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날선 비판도 있었다. 2020년 10월 넷플릭스에 올라온 여섯 편의 드라마는 4주 동안 3,700만 명이나 시청하여, 바로 시즌 2로 이어지게 된 성공 드라마가 되었다.

토이토부르크 숲 인근의 대형 아르미니우스 동상

로마 군대의 패전 소식을 들은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수 개월 동안 머리와 수염을 깎지 않았으며, 때로 기둥에 머리를 박으며 “바루스여, 나의 군단을 돌려줘!”라고 울부짖었다고 한다. 로마 군대가 토이토부르크 숲으로 다시 들어가 흩어져 있던 유해를 수습하고 장례를 지내는 데는 6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게르마니아와의 치열한 전투 끝에 당시 잃어버린 군단기 셋 중 두 개를 되찾는 데 성공했다. <바바리안>의 시즌 2는 토이토부르크 전투 이후 로마 제국과 게르마니아 간의 치열했던 복수전이 전개될 것이다. 토이토부르크 전투가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은 1987년에 발견되어 지금도 여전히 유해나 유물이 발견되고 있으며, 인근에는 거대한 아르미니우스의 동상과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히스토리 채널의 <Barbarians Rising: Arminius, the Stolen 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