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라는 말에 사로잡히기 쉬운 요즘이다. ‘코로나가 없었다면’, ‘예정대로 진행됐다면’ 같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뮤지션들도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한 해 전에 계획해둔 투어 일정을 취소하는 그들의 마음을 상상해본다. 보장된 미래는 없다는 걸 깨닫고 자가격리 기간에 음악 작업에 몰두한 뮤지션들이 있다. 과거를 회고하기도, 또는 격리 중의 감정을 기록하기도 했다. 코로나가 없었더라면 이 보물 같은 앨범들도 존재하지 않았을 거란 사실은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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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가 사라진 세상에서,

테일러 스위프트가 작업한 두 장의 앨범 <Folklore>, <Evermore>

© BETH GARRABRANT

놀라울 따름이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격리해야만 하는’ 이 시간을 앨범을 쓰는 데 사용했다. 올여름, 누구도 예상치도 못했던 <folklore> 발매에 이어, 2020년의 마지막 달에 자매 앨범 격인 <evermore>가 세상에 나왔다. 한 해에만 두 장의 앨범이다. 지난해 <Lover>를 통해 정상의 팝 스타 자리를 유지하는 데 성공한 뒤, 그의 2020년 계획은 투어를 돌며 팬들을 만나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삶은 계획대로 만은 흘러가지 않는다는 걸 깨닫게 되지만 말이다. 하지만 테일러 스위프트는 얼굴을 마주하지 않더라도 팬들과 연결될 방법을 찾았다.

간단하게도 답은 음악이었다. 불확실한 시간 속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야기를 떠올리고, 여기에 음악을 붙여갔다. 과거를 회고한 느낌이 강하게 느껴진다. 이야기는 아련하고 안타까운 기억이나 역사, 실화, 상상에서 출발한다. ‘민화’라고 해석되는 단어를 앨범의 간판으로 걸 만큼,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것들이 개인적인 이야기가 아닌 모두의 이야기로 확장되길 원했다. 확장의 장치로는 시점 전환을 종종 사용한다. <folklore>의 하이틴 삼부작 ‘cardigan’, ‘betty’, ‘agust’에서는 삼각관계에 휘말린 세 남녀의 시점을 번갈아 다루고, 자매작인 <evermore>에서도 꿈을 좇아 고향을 떠난 여성의 노래 ‘’tis the damn season’과 그녀를 사랑한 남성의 노래 ‘dorothea’가 서로 얽혀 있다. 무엇 하나 지배적인 주인공이 없다. 이런 인물도 저런 인물도 품는 복합적인 정서가 두드러진다.

Taylor Swift ‘cardigan’
Taylor Swift ‘‘tis the damn season’

이야기의 배경으로는 숲을 골랐다. 이제 그의 음악은 미국에 안개 낀 숲속을 연상케 한다. 기습 발매도 화제였지만, 음악 스타일의 변화도 많은 이들을 깜짝 놀랍게 했다. 라디오에 최적화된 팝에서 8년 만에 포크로의 회귀고, 얼터너티브를 향한 첫 시도다. 이쯤 되면 그와 작업한 이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인디 록밴드 ‘더 내셔널’의 멤버 아론 데스너가 상당 부분의 작업을 함께 했고, 원조 숲의 남자 본 이베르도 몇 곡의 작곡과 피처링을 맡았다. 이 둘은 자연의 느낌을 록에 넣는 데 있어 장인들로 [evermore]에서도 함께 했다. 차분하고 아름다운 사운드 덕분에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테일러 스위프트 세계관의 등장, 이야기로 만들어낸 숲

이미지 출처 - 테일러 스위프트 트위터

이야기는 힘이 있다. 테일러 스위프트를 좋아했든 혹은 무관심으로 일관했는지는 이제 상관이 없어진다. <folklore>와 <evermore>를 들었다면 알게 모르게 그의 인간적 세계관에 들어온 거다. 이야기에 점차 젖어 드는 줄만 알았더니 어느새 빠져 있다. 포크 테일러, 팝 테일러가 아닌 포스트 팝 테일러에 관심이 생겼다면 조금만 검색해보자. 이번 숲 시리즈가 뿌린 무수한 떡밥에 대한 포스팅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이팝 아이돌이 세계관을 통해 팬들의 입덕을 부르는 방식과 비슷하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제 노래를 통해 누군가를 저격하거나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이야기를 엮어 자신의 숲을 만들고 그 안에 사람들을 초대한다.

 

지금의 혼란과 불안까지도 음악으로 만드는 시도

찰리 XCX <How I’m Feeling Now>

테일러 스위프트는 집 안에서 자신의 세계관을 촘촘히 건설했지만, 찰리 XCX는 현재의 혼란과 불안을 소재로 음악을 만드는 시도를 벌였다. 앨범의 제목은 “지금 내가 느끼는 건”. 찰리 XCX는 팬들과 화상 채팅 중, 오늘부터 작업에 돌입해서 약 6주 뒤에 앨범을 발매하겠다고 알렸다. 그리고 한 주의 작업 과정을 영상으로 기록해 매주 팬들에게 공유했다. 영상으로 남긴 관찰일지를 보면, 찰리 XCX가 자가격리를 함께한 남자친구를 옆방에 두고 그에 관한 곡을 쓰는 모습이나, 기분이 들쑥날쑥한 와중에도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볼 수 있다.

찰리 XCX는 메이저스트림보다는 마이너하고 비주류로 치기엔 상업적인 가능성이 있는 음악을 해왔다. 신스팝, 일렉트로 팝, 팝 펑크, 댄스 팝 등. <How I’m Feeling Now>도 이런 종류의 음악이다. 39일 만에 탄생한 음악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완성도가 탁월하다. 11개의 곡은 하나의 관통하는 분위기로 연결되지만, 낙차의 즐거움 역시 놓치지 않는다. 여기에 캐치한 멜로디까지 겸비한 곡이 ‘forever’, ‘claws’, ‘7 years’, ‘party 4 u’ 등 즐비하다. 음원 사이트에 감상평들을 보면 음악 중간 중간 나오는 노이즈 때문에 귀가 혹사당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야 할 음악이란 댓글들이 보인다. 과연 예술은 고독 가운데 탄생하는 지가 궁금하다면, 찰리 XCX의 <How I’m Feeling Now>이 어느정도 대답이 될 것 같다.

Charli XCX ‘How I’m Feeling Now’ 메이킹 필름 3주차
Charli XCX ‘forever’ 뮤직비디오

 

Writer

소니뮤직 코리아 팝 마케팅 팀에서 근무했음. 월드뮤직, 해외의 서브컬쳐 음악과 인디 음악이 취향입니다. 취향을 살려 아주 작은 해외음악 레이블을 혼자서 운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