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들어서 미국 빅밴드의 스윙재즈 음악을 접한 영국은, 역사적으로 오랜 무도회장(Ballroom) 전통과 결합하여 댄스음악의 황금기를 맞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는 1930년대 후반까지 영국의 무도회장 음악이 유럽 전역과 본고장 미국까지 퍼져 인기를 누렸는데, 이 시기를 영국 댄스음악의 황금기(The Golden Age of British Dance Music)라 부른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영화 <샤이닝>(1980)에서 자신이 직접 이 음악들을 선곡하여 유명한 볼룸 홀 장면에 삽입하였다.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의 영국으로 돌아가 스윙 악단의 나른한 연주에 부드러운 남자가수 목소리를 얹은 1930년대 댄스곡 네 곡을 들어보자.
레이 노블 악단 ‘Midnight, the Stars and You’
영화 <샤이닝>의 볼룸 홀 장면과 엔딩의 흑백사진 장면에 등장하면서 가장 명성을 얻은 곡이다. 1927년 영국 댄스음악 컨테스트에서 수상한 레이 노블 악단(Ray Noble and His Orchestra)이 연주하고, 그의 친구이자 동료인 알 보울리(Al Bowlly)가 노래한 1934년 히트곡이다. 이 곡은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나 픽사의 <토이 스토리 4>에도 수록되어, 레트로나 누아르 장면에 자주 채택하는 클래식으로 부상했다. 이 곡을 부른 알 보울리는 1941년 런던의 아파트에서 독일군의 야간 공습 때 사망한 채 발견되어 불길한 노래로 인식되기도 한다.
잭 힐튼 악단 ‘Masquerade’(1932)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에 걸쳐 전성기를 누리며, ‘영국 재즈의 왕’이라 불렸던 잭 힐튼(Jack Hylton) 악단의 1932년작이다. 악단에서 고용했던 영국 배우이자 가수 팻 오말리(Pat O’Malley)가 노래했다. 잭 힐튼은 경제 공황이 닥친 1940년대 초 밴드를 해산하고 프로덕션 비즈니스에 나서 프로듀서로도 이름을 떨쳤다. 그의 추모 페이지에서 수백 곡에 달하는 1930년대 히트곡을 무료 다운받을 수 있다.
잭 힐튼 홈페이지
레이 노블 악단 ‘It’s All Forgotten Now’
‘Midnight, the Stars and You’의 단짝 콤비 레이 노블과 알 보울리의 또 다른 인기곡으로, 붉은 벽면의 화장실 장면에 삽입되었다. 1930년부터 함께 활동한 두 사람은 영국에서 약 3백여 곡을 발표하여 높은 인기를 구가했고, 1934년에는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 차례 미국 팝 차트 수위에 올랐다. 유럽 생활을 그리워 한 보울리는 1938년 영국으로 돌아왔지만, 노블은 배우와 가수로 활동하며 미국에 영구 정착했다.
헨리 홀 밴드 ‘Home’
화장실 장면에서 ‘It’s All Forgotten Now’ 다음에 이어지는 곡으로, 헨리 홀과 글레니글스 호텔 밴드(Henry Hall and the Gleneagles Hotel Band)가 1932년에 발표하였다. 밴드에 고용된 스코틀랜드 출신 가수 모리스 앨빈(Maurice Elwin)이 노래했다. 이들은 1920년대 말부터 인기를 끌던 댄스 밴드로 BBC 라디오에 출연하며 1930년대 전성기를 누렸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위문 공연을 다녔다. 헨리 홀은 종전 후 밴드를 해체하고 BBC의 프로그램 <Henry Hall’s Guest Night>에 호스트로 출연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