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여성 디자이너 중 한 명인 레이 가와쿠보. 아마 우리는 그의 이름보단 그의 브랜드인 꼼 데 가르송(Comme des Garçons)을 더 친숙하게 느낄 것이다. 그만큼 그는 전면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걸 즐기지 않았으며 오로지 일에만 집중하길 원했다. 오랜 시간 동안 견고하게 형성된 신비롭고 독특한 세계관은 마틴 마르지엘라, 헬무트 랭등 많은 디자이너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으며, 일흔을 훌쩍 넘긴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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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지 않을 것 

옷이 꼭 아름다울 필요가 있는가? 가와쿠보의 착상은 항상 보편적인 미에 대항하는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모두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오히려 그에겐 지양해야 할 요소였다. 반듯하고 매끄러워야 할 옷감을 마구 구기거나 접고, 여러 겹으로 겹쳐 감았으며 몸매를 감싸 여성스러운 굴곡을 드러내야 할 부분을 고의적으로 부풀리거나 뒤틀었다. 얼굴과 팔, 다리를 위한 구멍들은 일부러 막아 두거나 예상할 수 없는 곳에 위치시킴으로써 의복의 역할을 온전히 수행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의복의 기본 조건인 착용감이나 기능성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당연히 형태가 아름다울 리 없었다. 하지만 바로 이것이 그가 원하는 옷이었다. “저의 작품은 일종의 풀 수 없는 스승의 질문, 간화선과 같아요.” 그는 2018년, 가디언(Guardian)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간화선’Koan이란 불교에서 화두를 던지고 답하며 이루어지는 참선법 중 하나로서, 화두 전체를 간파하고 의심 없이 이를 체화하며, 결국 수행자 그 자신이 화두 자체가 되는 과정이다.) 이처럼 그는 옷을 제작하기 위해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옷으로 표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사람들이 싫어하면 싫어할수록 더 새로운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간의 문제는 변화를 싫어하는데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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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지 않을 것 

기본적으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옷을 만들려고 한다. 그것이 나의 사명이다.

가와쿠보의 옷은 항상 무로부터 출발했다. 어디서도 본 적 없고, 감히 상상으로도 닿을 수 없는 옷을 만드는 일이야말로 그의 세계를 구성하는 필수적 조건이었다. 그를 아방가르드의 제왕이라고 부르는 이유 역시 이런 신념과 맞닿아 있었다. 꼼 데 가르송의 컬렉션이 매해 화제가 되었던 건 다른 쇼에서는 보기 어려운, 혁신을 넘어 전위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다양한 시도들이 계속되기 때문이었다. 그 중 ‘옷을 만들지 않음 Not Making Clothes’ 라는 제목의 2014년 s/s 컬렉션은 스무 벌이 넘는 의복 전부가 소재에서부터 형태까지 ‘입을 수 있는 옷’이라고 보기 어려운 모양새였다. 오히려 사람의 골격을 뼈대 삼아 전시된 작품에 더 가까웠다. 그는 타이어나 쿠션, 생소한 굴곡을 만들고 강조하기 위한 와이어들을 재료로 사용하여 독특하다 못해 기이하기까지 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이를 본 평단은 충격에 휩싸였고, 이런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그는 이런 메시지로 논란 속의 자신의 창작물들을 더욱더 강하게 대변한다. “저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더는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결국 새로운 것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옷을 입지 않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죠.” 즉 그는 옷이라 부를 수 없는 것에 옷의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의복의 대안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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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애받지 않을 것 

가와쿠보는 자신의 작업에 있어 그 어떤 것의 구애도 받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선언했다. 그건 성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소년처럼’이라는 뜻의 꼼 데 가르송은 이미 전통적인 여성의 상징을 탈피하기 위한 그의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쇼에서 자주 피날레를 장식했던 신부(Bride) 컨셉은 여성성이 가장 극도로 드러나는 역할과 복장을 되려 변형하고 파괴하기 위한 시도이자, 여성의 신체적 특성이나 단아하고 순결한 분위기만을 강조하는 성역에 변화를 꾀하기 위한 유의미한 공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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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끝없이 자유로울 것 

레이 가와쿠보. 그는 끝까지 타협하지 않았으며, 순응하지 않았으며, 규칙을 만들었다고 생각한 순간 규칙을 어겼으며, 이런 자신의 신념에 대해 용기를 가졌고, 실행하였다. 그는 어떤 것을 위해서도 옷을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무엇도 위하지 않기 위하여 옷을 만들었다. 이로써 그는 이미 자유롭다.  

저는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만들기 위해 항상 0에서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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