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과거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건 무기력한 일상에 파묻혀 지내던 ‘리’에게도, 그를 연기한 배우 케이시 애플렉에게도 그렇다. 7년 전 여성 스태프를 성추행한 혐의로 고소를 당한 케이시 애플렉은 미심쩍은 합의를 통해 사건을 무마시킨 바 있다. 이러한 그의 과거는 지금까지도 끊임없는 논란의 대상이고, 어떠한 동정이나 안타까움도 들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영화 속 ‘리’의 경우라면 다르다. 무심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에 많은 이들이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차가운 겨울을 맞이한 바닷가 도시 맨체스터에서 고요하게 펼쳐지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자신의 과거를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는 이 가상 인물의 삶은 평범한 사람들의 인생과 처연하게 맞닿아 있다. 그리고 지우고 싶은 과거를 정면으로 봐야 하는 건, 리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특히 리를 연기한 케이시 애플렉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 아닐까.

 

피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시작

보스턴의 아파트 관리인으로 일하는 ‘리’(케이시 애플렉)는 그저 잡다한 일을 처리하며 홀로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형 ‘조’(카일 팬들러)가 위독한 상황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장 고향인 맨체스터로 향하지만 형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다. 리는 형이 아들 ‘패트릭’(루카스 헤지스)의 후견인으로 자신을 지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후견인이 되면 조카가 있는 맨체스터에서 지내야 하는 상황에 놓인 리는 선뜻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맨체스터에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과거의 흔적들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미국 동부의 바닷가와 맞닿은 도시 맨체스터는 여느 도시처럼 차가운 겨울을 맞이한 평범한 곳이다. 그러나 과거의 사건에 죄책감을 느끼며 도망치듯 살아온 리에게 맨체스터는 고통을 상기시키는 지독한 장소다. 잊고 싶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전 부인 ‘랜디’(미셸 윌리엄스)를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고, 아주 사소한 상황으로부터 아물지 않은 상처의 아픔을 느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리는 더욱 무덤덤하게 과거의 기억을 외면하려 한다. 반면, 조카 패트릭에게 맨체스터는 떠나고 싶지 않은 곳이다. 패트릭에게도 맨체스터는 가장 큰 상처가 남은 장소지만, 아빠의 죽음을 슬퍼하면서도 연애와 밴드 생활에 전념하며 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슬픔에 맞선다. 그렇게 비슷한 과거를 지녔지만 다른 방식으로 삶을 대하는 두 사람은 기대와 달리 서로를 보듬고 위로하지는 않는다. 때때로 두 사람의 언쟁에서 느껴지는 건조한 유머, 그 안에서 느껴지는 서로를 향한 속마음을 슬쩍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는 인물들을 멀찌감치 떨어져 관찰하듯 덤덤하게 따라간다. 적극적으로 슬픔을 극복하고 희망찬 새 삶을 사는, 그야말로 ‘영화 같은’ 결말을 끼워 넣지 않는다. 그러나 그 고요하고 현실적인 여백은 한 인간의 슬픔과 외로움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만드는 훌륭한 장치가 된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예고편

 

중요한 커리어를 쌓은 배우들

주인공 리 챈들러 역할로 분한 케이시 애플렉과 패트릭 역으로 또렷한 인상을 새긴 신예 루카스 헤지스의 호연 역시 영화를 중요하게 만든 요소다. 이번 작품을 통해 무려 46개의 남우주연상을 차지한 케이시 애플렉은, 이미 톱스타 반열에 오른 친형 벤 애플렉의 동생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보란 듯이 연기력을 입증했다. 특히 쟁쟁한 후보들과 함께 후보에 오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카데미는 과거 행적과 상관없이 그에게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겨 주었다. 참고로 케이시 애플렉은 앞서 열린 골든글로브와 영국아카데미 시상식(BAFTA)에서도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극중 삼촌과 묘한 관계를 유지하며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낸 루카스 헤지스도 이번 작품을 통해 관객들의 기억에 남을 배우가 됐다. <길버트 그레이프>(1998), <댄 인 러브>(2007) 같은 작품을 만든 할리우드 유명 각본가이자 감독 피터 헤지스의 아들로도 알려져 있는 루카스 헤지스는 이제 자신만의 필모그래피를 착실히 쌓아가고 있다. 그가 제22회 크리틱스초이스에서 신인상을 수상하며 밝힌 풋풋한 소감 또한 화제에 올랐다. 시상식 무대에 선 루카스 헤지스는 트로피를 번쩍 들어 보이며 "이 영화를 계기로 나를 더욱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수줍게 고백해 관중의 웃음과 환호를 자아냈다. 1997년생, 스무 살 어린 나이에도 당당히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며 할리우드의 유망주로 꼽히게 된 그는 금년에도 두 편의 신작 영화에 출연했다.

 

맷 데이먼과 배우들의 조화

▲ (왼쪽부터) 케이시 애플렉, 케네스 로너건 감독, 맷 데이먼

영화는 일찌감치 맷 데이먼의 제작 참여로도 주목을 모았다. 맨 처음 아이디어와 각본 단계부터 참여한 맷 데이먼은 원래 연출과 주연을 모두 맡을 계획이었으나, 당시 다른 작품 활동과 스케줄 문제 등으로 제작에만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연출을 맡은 케네스 로너건 감독과 주연 배우 케이시 애플렉에 대해 극찬을 남기며, 제작에 참여한 것을 두고 자랑스러운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 <인터스텔라> 스틸컷. 제시카 차스테인과 케이시 애플렉

맷 데이먼과 남다른 친분을 쌓아온 애플렉 형제는 앞서 <굿 윌 헌팅>(1997)에 함께 출연한 바 있다. 이후 영화 <오션스 일레븐>(2001), <오션스 트웰브>(2004), <오션스 13>(2007) 시리즈를 통해 맷 데이먼과 꾸준히 작품을 같이 한 케이시 애플렉은 <인터스텔라>(2014)에서 쿠퍼의 아들 톰 역으로 분해 만 박사 역의 맷 데이먼 못지않은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루카스 헤지스 또한 <제로법칙의 비밀>(2013)에서 조연 밥 역으로 먼저 맷 데이먼을 만난 바 있다. 이런 제작자 맷 데이먼과 배우들의 조합은 영화의 완성도에 어떻게 기여했을까. 올해 극장에서 5만 5천명의 관객수를 기록했으며, 이젠 온라인 VOD로 그 호기심을 해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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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이미지=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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