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길을 잃고 어두운 숲속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럴 땐 종종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혀 일상의 커다란 구멍을 마주하고도 미처 돌아볼 새 없이 스쳐 지난다. 늦은 밤 뭔가가 떠올라 기억을 물끄러미 응시하지만, 머리가 아득해 눈꺼풀만 무겁다. 언어는 애초에 불완전해서 마음을 온전히 녹여낼 수 없다. 이런 우리를 위해 일류 작가들은 창밖으로 멀리 어두워지는 늦저녁 하늘처럼 불가해한 현상을 서술한다. 내가 정체 모를 기분에 허우적거릴 때 문학의 자장 속으로 이끈다. 미묘한 문장과 정성스레 조탁한 단어가 감정을 틈새를 파고든다. 미묘한 느낌을 놓치지 않고 광채를 띤 순간을 포착한다. 오늘 소개할 두 권의 책은 대가의 솜씨를 엿볼 수 있는 이름난 단편들이 수록된 소설집이다.

 

대성당(1983), 레이먼드 카버

레이먼드 카버는 작가 생활 초기부터 생활고에 시달렸다. 평생 글을 썼지만 장편 소설은 집필하지 못했다. 이른 결혼으로 생활고에 시달리다 보니 단편을 써서 돈을 빠르게 수급하기 급급했다. 그에게 글은 밥벌이를 위해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전쟁과 같았다. 카버는 저녁 무렵 집을 벗어나고 싶을 땐 자신의 허름한 폭스바겐 운전석에 앉아 무릎 위에 공책을 대고 글을 썼다. 그래서일까 카버는 꽤 긴 시간 술을 달고 살았다. 마당에 널려 있는 술병과 한 발만 잘못 디뎌도 나락으로 빠져들지 모르는 운명. 그는 결국 첫 아내와 이혼한 후에야 생활고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을 읽으며 작가를 자신을 의식하지 않기란 어렵다. 작중 화자 대부분이 이혼했거나, 알코올 중독자며 실직을 당해 우울한 처지기 때문이다. 삶을 살다 보면 예측할 수 없는 변화구가 날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우린 최대한 몸을 구부리며 그 시간을 버텨낸다. 별수 없이 비탈에 몰려 허리춤을 짚고 서서 참아보는 거다. 위안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갖다 붙이기엔 가혹한 시간, 레이먼드 카버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적는 사람이다. 비록 보잘것없는 현실이지만 뭐라도 붙잡고 힘을 내 살아갈 수 있지 않겠냐며 나지막이 말문을 연다.

수록작 중 하나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부가 화자다. 삶이 일제히 무너지는 시간, 괴상한 전화가 빗발친다. 경황이 없던 부부는 며칠 전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하고 까맣게 잊은 참이다. 빵집 주인은 별다른 말 없이 무례한 말투로 화를 내고 전화를 끊는다. 되풀이되는 전화벨 소리에 부부의 신경은 날카로워지고 끝내 화를 참지 못한다. 부부는 노기를 띠며 가게로 쳐들어가고, 영문을 모르는 빵집 주인은 겨우 사태를 파악하곤 말을 잇지 못한다.

"그는 컵을 찾아 전기 커피메이커에서 커피를 따랐다. ‘아마 제대로 드신 것도 없겠죠.’ 빵집 주인이 말했다. ‘내가 만든 따듯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뭘 좀 드시고 기운을 차리는 게 좋겠소.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될 거요.’ 그들은 롤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허기를 느꼈는데, 그 롤빵은 따듯하고 달콤했다."

난 문학이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데 회의적이다. 소설을 통해 뭔가 대단한 걸 깨달았다는 과장은 질색이다. 음습한 일상은 그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는다. 내게 문학은 변기에 앉아 잠시나마 숨을 고르고, 자정 무렵 침대에 기대 잠을 청하는 용도가 다다. 소설은 종종 독자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키지만, 그 순간뿐이고 켜켜이 쌓인 일과엔 낭만이 깃들 새가 없다. 문학의 가치를 부풀리는 순간 그 길로 가짜가 되고 만다. 레이먼드 카버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퇴근 후 침대에 누워서 제인 그레이의 책을 읽던 모습을 인상적으로 기억한다. 사생활이라고는 없는 좁은 집구석에서 골치 아픈 문제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평온을 맛보던 중년 남자의 사적인 시간을 그려본다. 그것이 카버에게 독서가 주는 위안이었다. 그건 아이를 잃은 부모에게 건네는 갓 구운 롤빵과 같고, 별건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시간이다. 망자는 돌아올 리 없고, 시간이 지나도 상처는 쉬이 낫지 않으리라. 하지만 지금으로선 서로를 마주하고 먹는 따듯한 롤빵 하나가 전부다. 그 순간 잠시나마 바람이 옷을 적실 때처럼 한결 마음이 느슨해진다. 풍향계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축복받은 집(1999), 줌파 라히리

줌파 라히리는 독특한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영국의 벵골 이민자 가정 출신이다. 유년 시절 가족이 미국에 이민을 떠나면서 로드 아일랜드에서 성장했다. 그런 연유로 작품 대부분이 이방인의 정서에 가닿아 있다. <축복받은 집>은 줌파 라히리의 데뷔작이자, 누구나 한번 읽으면 잊지 못하는 걸출한 소설집이다.

이 책엔 모두 아홉 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오늘 소개할 작품은 맨 앞에 수록된 <일시적인 문제>다. 쇼바와 슈쿠마는 결혼한 지 3년이 된 부부다. 몇 달 전 아이의 사산으로 갈등의 골이 깊어진 부부는 이젠 의례적인 말조차 나누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안타까운 건 차라리 소란스레 싸움이라도 벌인다면 바닥이 드러날 텐데, 현재로선 서로를 붙잡을 마음의 동력마저 상실해버렸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서로를 피해 다니기 바쁘다. 이때 일시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동네 전기공사로 닷새 동안 저녁에 한 시간 정도 단전이 된다는 안내문이 붙여진다. 부부는 밤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집에서 어색하게 식사를 한다. 하지만 어둠에 의지해 한결 편안해진 부부는 평소 나누지 못했던 속마음이 터놓기 시작한다. 두 사람은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애잔한 마음에 젖는다. 남편의 집을 처음 찾았을 때의 어색함. 그의 수첩을 들추며 자신의 이름을 확인하며 느꼈던 설렘. 어느 날 데이트에서 문득 이 사람이 내 반려자가 될 것을 직감하며 느꼈던 환희까지. 퇴근하면 방에 처박혀 서로를 멀리하던 부부는 정전이라는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묵은 오해를 풀어낸다. 하지만 공사가 예상보다 일찍 끝나며 일시적인 화해 무드도 종료된다. 전기는 복구되고 다시 불은 다시 켜졌지만 그들의 애틋한 시간마저 사라졌다. 저녁을 위해 사뒀던 와인과 케이크도 이제 무용지물이다. 그들은 다시 어색한 사이로 돌아간다. 와인 잔엔 붉은 자국이 남겨져 어젯밤의 자취만 상기하지만, 미처 다 돌지 못한 셀로니어스 멍크의 앨범처럼 두 사람은 잔망스럽게 빙빙댄다.

"생일 양초는 다 타버렸지만, 그는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얼굴을 또렷이 그릴 수 있었다. 약간 기울어진 커다란 눈, 도톰한 포돗빛 입술, 두 살 때 높은 의자에서 떨어져 턱에 생긴, 아직도 눈에 띄는 쉼표 모양의 상처, 슈쿠마는 한때 자신을 압도했던 그녀의 아름다움이 나날이 시들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전에는 불필요하게 보였던 화장품이 이제는 필요했다. 용모를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그녀를 또렷이 드러내려면."

익숙한 관계일수록 서로를 속단하고 미루어 짐작한 걸 확신이라는 터울에 가둔다. 인간은 얼마나 미욱한지 환경이 조금만 바뀌어도 이리저리 흔들리고, 서로를 향한 마음을 어쩌지 못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줌파 라히리는 우리가 바닥을 응시하는 미세한 순간을 끌어올려 마치 이 순간만이 전부인 것처럼 시간을 잠식한다.

운전석에 앉아 건널목을 건너는 사람들을 유심히 쳐다볼 때가 있다.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는 어떤 사람은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껌을 씹는다. 음악을 듣는 여고생은 시니컬한 표정으로 허공을 바라본다. 난 그들을 보며 짐짓 놀라워한다. 손가락으로 네모를 만들어 그들을 거기에 놓곤 따로 떼어본다. 그 속에 이야기를 가미하고, 그들 각자의 우주를 상상한다. 차마 흘려보내지 못하고 그들이 서 있는 꼴을 붙잡는다. 한참을 살피다 보면 그들도 나처럼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줌파 라히리의 소설엔 타인의 주저하는 말투와 혹시 엇나갈지 모르는 말의 뉘앙스를 살피는 화자가 있다. 곤두선 감각이 어느 순간엔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다가 한편으로는 누구나 골치 아파 모른 척하는 걸 끄집어낸다. 가끔 실소를 자아내기도 하고, 찧고 까불다가도 몽롱하게 취해버린다. 어느 순간 아, 이게 소설을 읽는 맛이지 생각하며 책장을 넘긴다.

 

Writer

영화와 책, 그리고 예술 전반에 대한 글을 쓴다. 염세주의자가 되고 싶으나 하루 세끼 먹을 때마다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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