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 엘리퍼튼스페이스는 <유목증후군: 어둠이 낮보다 먼저 오듯>을 개최했다. 이 전시에서 작가들은 노마드 개념으로서 '유목'의 공간성을 탐구하고, 이 속에 중첩된 시간에 대해 주로 이야기했다. 이번 <백야(Midnight Sun)>는 반대로 시간성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리고 낮과 밤을 잇는 시간의 메타포는 '욕망과 물의 이미지'라는 다분히 오래 된 문학적 주제와 관점으로 이어진다.

<백야>에 참여한 김아영, 박민하, 파킹찬스(박찬욱, 박찬경)는 총 여섯 편의 중·단편 영상을 통해 물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작품 속에서 출렁이는 물의 역동성은 동시대 영상의 매체적 특질과 욕망의 본질과 결부되어 스크린 위로 흘러넘치거나, 밤의 공기를 타고 넘실대며, 때로 바짝 마른 사막 아래 관념의 조각만 남은 채 반짝인다.

전시 <백야> 공식 트레일러

영화감독 박찬욱과 현대예술 작가 박찬경 형제로 이루어진 '파킹찬스'는 <파란만장(Night Fishing)>과 <반신반의(Believe It Or Not)> 두 작품을 선보인다. 두 작품에서 물은 '죽음'의 이미지를 드리운다. "물 옆에는 모든 것이 죽음 쪽으로 기울어진다. 물은 밤과 죽음의 모든 힘과 연결된다."는 바슐라르의 진술을 고스란히 연상시킨다. <파란만장>은 강가의 밤낚시로 서사가 시작해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의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가 거듭 뒤집히는 식이다. 물에 휩쓸려 죽은 낚시꾼의 영혼이 산 무당의 관점으로 뒤바뀌며 밤의 몽환적인 풍경 속에 그려진다. <반신반의>에서는 주인공이 죽음을 불사하고 생사와 이념의 경계가 되는 물을 건너는 행위가 그려진다.

파킹찬스 <반신반의>(2018) 공식 이미지

김아영의 작품에서 물은 추상적이고 종합적인 이미지 대신, '석유'나 '대홍수 서사'와 같은 구체적 상징으로 대체된다. 거대 자본의 욕망이 집약된 자원을 둘러싸고 얽고 얽히는 목소리들을 반복하거나(<제페트, 그 공중정원의 고래기름을 드립니다, 쉘 3(Zepheth, Whale Oil from the Hanging Gardens to You, Shell 3)>), 금빛으로 빛나는 호화로운 파리 오페라 극장 지하를 '대홍수-방주' 서사를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로 수놓기도 한다.(<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In This Vessel We Shall Be Kept)>

박민하의 <잡을 수 없는 눈 이야기(A Story of Elusive Snow)>와 <전략적 오퍼레이션 - 하이퍼 리얼리스틱(Strategic Operations - Hyper realistic)>은 앞선 '석유'처럼 물의 이미지 속에 감춰진 자본주의의 욕망을 좀더 낱낱이 파헤친다. 그것은 더이상 '생명'과 '풍요'의 상징으로서의 물이 아닌 인공 기술로 탄생해 차갑게 세상을 거대한 파괴의 물이다. 광활한 바다처럼 모든 것을 집어삼킨 채 관념만을 전달하는 공허함으로 가득 찬 이미지를 시청각으로 전달한다.

김아영 <이 배가 우리를 지켜주리라>(2016) 공식 이미지
박민하 <전략적 오퍼레이션 - 하이퍼 리얼리스틱>(2015) 공식 이미지

'백야'는 고위도 지역에서 여름 동안 빛이 밤을 밝히는 현상을 일컫는다. 말하자면, <백야>의 주제가 전제로 삼는 이미지는 빛과 시간이다. 그러나 <백야>의 작품들은 이를 물 이미지에 투사해 전달한다. 그 이유는 아마도 물의 매체적 특성 때문이리라. 물은 이 세계를 구성하는 가장 본질적인 자연 요소 중 하나다. 동시에 끊임없이 움직이도 흔들리는 유동성을 그 이미지로 지니고 있기도 하다. 물이 담보하는 원초적 이미지와 역동성, 그로 인해 초래되는 양면성과 복합성 등은 결국 우리네 삶과 욕망을 투영하는 예술 작품의 속성을 설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것이 아닐까 싶다.

 

<백야 Midnight Sun> 展

일시 2019년 8월 16일(금)~2019년 9월 7일(토) / 일・월 휴관
시간 15:00~21:00
장소 엘리펀트스페이스
요금 무료 (홈페이지 예약자 우선 입장)
홈페이지

 

참고 홈페이지 소개글, 가스통 바슐라르 <물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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