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는 ‘잡다한 것’을 다뤄서 잡지라 부르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잡지의 영역은 그리 넓지 않다. 패션 혹은 라이프스타일, 더 나아가 영화를 포함한 문화콘텐츠 분야 정도이다. 잡지란 본래 이름의 뜻에 걸맞게 다양하고 색다른 이야기를 담는 잡지들을 모아봤다. 발을 디디고 있는 분야도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제도 각양각색이지만, 그들은 뚜렷한 색깔로 확실하게 목소리를 내고 있다.

 

1. 가장 작고 외로운 존재의 시선 <젤리와 만년필>

<젤리와 만년필> 창간호, 출처 - 유음 블로그

거리를 걷다 보면 자주 따라오는 시선이 있다. 그러나 경계심이 진득하게 묻은 이 눈길은 외면당하기 일쑤다. <젤리와 만년필>은 이처럼 도시에서 가장 작고 외로운 존재, 고양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도시의 모습을 담았다. “고양이에게 포용적인 도시는 사람에게도 포용적인 도시다.” 라는 생각에서 시작된 국내 최초 고양이 문예지로, 다소 귀여운 느낌을 주는 타이틀과 달리 다루는 주제는 사뭇 무겁다. 무분별한 재개발, 젠트리피케이션, 위계 폭력 등 우리의 삶 속에서 당연하게 맞닥뜨리는 도시 문제들을 고양이가 페르소나 삼은 문학 작품을 통해 꼬집는다.

<젤리와 만년필>은 2017년 7월 창간호 ‘우리는 귀엽고 강하다’를 시작으로, 최근 3호까지 나왔다. 사회의 민낯을 문학 작품 속에서 유려하게, 그러나 가감 없이 드러낸 잡지는 읽는 동안 독자들의 마음이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불편함이 우리의 현실이며, 누군가가 불편해야 사회는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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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와 만년필> 출판사 유음 인스타그램

 

2. 연애하지 않을 자유 <계간홀로>

“요즘 만나는 사람 있어?”, “그러지 말고 연애를 해.”, “남자친구는 왜 안 만들어?”

사람들 사이에서 오가는 수많은 질문과 대답 중 상당 부분이 ‘연애’를 주제로 한다. 많은 사람이 연애를 삶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삶은 가치 있고 큰 행복을 선사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가치를 사랑하는 사람 외에 타인과 쉽게 나누고 강요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들의 언어에는 연애하지 않은 이는 사회적, 정서적, 외적으로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편견이 기저에 깔려 있다.

<계간홀로> 소개 이미지, 출처 - <계간홀로> 텀블벅 펀딩 페이지

<계간홀로>는 이런 사회적 인식에서 벗어나 비연애의 삶을 그대로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잡지는 이 시대에 만연한 연애지상주의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쉽게 정상〮비정상으로 나누며 일반화하는 연애 담론에 관해 꼬집는다.

<계간홀로>는 정해진 주기 없이 내키는 대로 만들고 당기는 대로 낸다. 다소 무책임한 말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최근 14호를 발간하면 6년 동안 꾸준히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존중하며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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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먹는 것에 대한 유쾌한 고찰 <계간돼지>

이미지 출처 - <계간돼지> 트위터

<계간돼지>는 이왕 먹을 것이라면 맛있는 것을, 어차피 먹을 것이라면 미루지 않고 빨리 먹자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만든 잡지다. 나만의 맛집 지도를 만드는 앱에서 만난 이들이 모임을 거듭하다 이를 기록하고자 잡지 제작을 시작했다. 손 안에 스마트 폰만 키면 쉽게 찾을 수 있는 #맛집 정보를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랜 시간 맛집 탐방을 취미 삼아 발로 뛰고 공유했던 편집부의 경험치는 무시할 수 없다. 이는 ‘전국 떡볶이 지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그들은 그저 맛집 소개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형식과 이야기를 통해 먹는 행위에 대해 조명한다. 끼니마다 마주하는 음식에 대한 그들의 진지한 철학도 엿볼 수 있으며, 같이 맛집을 탐방을 할 사람을 모집하는 구인공고 섹션, 교토와 후쿠오카에서 만날 수 있는 음식과 카페 등 다양한 이야기를 담았다. 이처럼 시종일관 먹는 이야기를 하는 잡지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유쾌한 한 끼 식사를 떠오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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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를 지칭하는 숫자에 대하여 <나이이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 빼놓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나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그것이 나를 지칭할 때에 수많은 의미가 따라온다. 그 숫자에 따라 사회적으로 통과해야만 하는 퀘스트가 존재한다.

이미지 출처 - <나이이즘> 트위터

<나이이즘>은 나이 듦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고찰해보는 잡지이다. 20~30대인 편집자들이 모여 자신의 나이와 미래 자신이 맞이할 나이에 대해서 특정 주제와 결합해 생각해보고 글로 나눈다. 그들이 최근 발간한 두 번째 잡지의 주제는 ‘일’. ‘우리는 언제까지 일해야 할까?’, ‘나이와 일에 가해지는 우리의 편견은 사실일까?’ 많은 이가 마음 한편에 안고 있지만, 딱히 꺼내지 않았던 의문을 수면 위로 던진다. 어쩌면 꼭 짚고 넘어갈 질문일지도 모른다. 인생은 인생만의 계획이 있다는 어느 영화 속 대사처럼, 모든 것이 불분명한 이 시대에 더는 나이가 인생에 지표가 되어주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매일매일 나이 들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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