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출신의 사진가 보리스 미하일로프 (1938~). 그는 소비에트와 포스트 소비에트 시기의 혼란을 고스란히 사진 속에 담았다. 덕분에 그의 작업은 사진 자체의 작품성을 뛰어넘는, 입체적이고 더 넓은 영역의 의미를 갖게 되었다.

작금의 러시아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미하일로프의 사진은 어떤 문서보다도 가치 있다고 평가된다. 사회주의의 끝자락에서 목격되는 저항과 폭동, 소련 이후 찾아온 새로운 형태의 자유 속에 놓인 사람들의 모습. 이 모든 것을 가감 없이 담아냄으로써 미적 추구와 동시에 역사적 가치까지 획득한 것이다.

사진을 전업으로 하기 전, 미하일로프는 평범한 공학도였다. 한 공장의 엔지니어로 취직하여 생계를 이어가던 중, 취미를 붙인 것이 사진이었다. 처음엔 자신의 일상을 스냅 형식으로 찍기 시작했다. 그러다 그가 찍은 아내의 누드 사진이 일터에서 우연히 발견되었고, 미하일로프는 그 자리에서 즉시 해고당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그를 본격적으로 사진의 세계로 뛰어들게 했으며, 또한 그 대상이 평범한 일상이 아닌 소비에트 시대의 사회 전체를 겨냥하게 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누드를 통제하는 것은 곧 인간을 통제하는 방식이었다. 우리가 우리 몸을 부끄럽게 생각해야만 했다. 이로써 우리는 모두 이미 유죄였다.” (선데이 타임즈 인터뷰 중)

‘Case History’(1999) Via ‘Saatchigallery
‘Case History’(1997-1998) Via ‘Saatchigallery
‘This man was standing there’(2002) Via ‘artnet
‘Case study’(1998) Via ‘artnet
‘Red Series’(1968~1975) Via ‘artnet
‘Untitled’(1997) Via ‘artnet
Via ‘MoMA
‘Untitled’ form <Case History>(ca. 1997) Via ‘artnet
‘Untitled’(1998) Via ‘artnet

보리스는 시대가 조장한 혼돈 속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결핍에 주목했다. 담배를 문 꼬마들, 넋이 나간 표정의 정신병자들, 마르고 초췌한 중독자들, 더러운 누더기를 걸친 채 거리를 떠도는 노숙자들. 그의 피사체들은 하나같이 핍박받고 소외당하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낙오자란 오명 안에 갇힌 이들에게 ‘유로지비(yurodivy, holy fool)’ 라는 거룩한 이름을 부여한다. 유로지비는 바보 성자, 즉 겉보기엔 미천하지만 실제로는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지혜자를 뜻한다. 광대나 미치광이와 같이, 군중 속에선 백치처럼 굴며 시선을 끌지만, 그들의 말속엔 평범한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하는 진리와 예언들이 숨어있는 것이다. 부패한 사회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차리지 않고 계몽의 전언을 수행하며 현명하게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항하는 이 유로지비들은 러시아 민중들에겐 언제나 사랑과 존중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이런 격동의 시기 속에서도 작가는 주변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유지했다. 친구와 가족, 이웃 역시 그의 피사체의 일부였다. 그들은 보리스를 위해 기꺼이 진심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고,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해주었으며, 죄책감과 비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옷을 벗었다. 그는 사회를 바라보는 냉철한 태도 안에서도 연민을 잃지 않았으며, 절망적인 상황 안에 놓인 이들을 감각적이고 유머러스하게 조명했다. 이런 그의 유머는 대상을 향한 조소가 아닌, 대상에게 자유와 해방을 선사하는 해독제와 같은 것이었다.

‘untitled’(act with apple)(1981) Via ‘artnet
‘La plage de Berdiansk, le dimanche de 11h à 13h’(1981) Via ‘artnet
‘Salt Lake’(2000) Via ‘artnet
‘Salt Lake’(2000) Via ‘artnet
‘Am Krankenbett oder die letzten Tage von Goethe’(1995) Via ‘artnet
‘Football’(2000) Via ‘artnet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오직 나에게만 보이는 것, 그것이 바로 사진가의 시각이다.” 보리스는 이 한 문장으로로 자신의 사진세계를 정의한다. 이는 보리스, 그 자신 역시도 유로지비의 시선으로 세상을 관찰하고 기록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렇게 그의 작품은 이젠 지도에서 사라진 나라를 검열없이 그대로 품고 있는, 유일한 유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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