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선댄스 영화제에서 아프리카 케냐의 장편영화로는 사상 처음으로 상영된 영화의 제목은 <Rafiki>. 스와힐리 언어로 ‘친구’라는 의미로 <라이언킹>의 개코원숭이 캐릭터와 같은 이름이다. 케냐의 신예 여성 감독 와누리 카히우(Wanuri Kahiu)의 두 번째 작품으로, 나이로비의 평범한 동네에서 살아가는 두 여성 ‘Kena’(Samantha Mugatsia)와 ‘Ziki’(Sheila Munyiva)의 사랑과 이들을 향한 주위의 따가운 시선과 편견을 다룬 LGBTQ 영화다. ‘가장 훌륭한 케냐 여성은 전업주부’라는 케냐의 전통적 가치관에 맞서 자신의 꿈과 희망을 찾는 현대적인 케냐 여성상을 다루었다.

영화 <Rafiki> 예고편

감독은 나이로비에서 활동하는 우간다 작가 Monica Arac de Nyeko의 유명한 LGBTQ 단편소설 <Jambula Tree>에 영감을 받고 이를 장편영화로 기획했다. 하지만 동성애 영화에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투자자가 없어 제작비 조달에 수 년이 걸렸다. 결국 네덜란드 필름 펀드에서 투자를 받았고, 남아프리카 영화사가 지원에 나서 저예산으로 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성애가 최대 14년 징역형의 중범죄에 해당하는 동성애 금지국 케냐에서는 결국 상영 금지되었다.

와누리 카히우 감독의 인터뷰 영상

작품이 본국에서 상영 금지되었다는 소식에 <Rafiki>는 2018년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Un Certain Regard) 부문에 초청받아 공식 상영되었고, 시카고 영화제, 더블린영화제 등에서 수상하며 국제적인 이목과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아카데미 영화제에 출품하기 위해서는 본국에서 최소 7일간 상영이 필요했다. 감독은 상영을 금지한 영화등급위원회를 제소했고, 마침내 법원은 영화가 해외 영화제에 나설 수 있도록 케냐에서 일주일 간 상영할 것을 제한적으로 허가했다. 아카데미 출품 마감일인 9월 30일 직전 나이로비 1개 영화관에서 매진 행렬을 이루며 상영하여 6,500명의 관객이 영화를 보았다. 그러나 아쉽게 케냐의 다른 영화가 대신 후보작으로 선정되었다.

와누리 카히우 감독의 SF 단편 <Pumzi>(2012)

와누리 카히우 감독은 아프리카 미래주의(Afrofuturism)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영화감독으로, 지난 해 부산 비엔날레에서 기후 변화, 정부 통제, 생명의 탄생 등 아프리카 미래주의를 은유하는 단편영화 <불모의 땅>(Pumzi)을 상영한 바 있다. 그는 세 번째 장편영화로 다시 한번 오스카에 도전할 계획이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