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들여 관찰한 식물을 정교하게 그려내는 작가들이 있다. 사진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디테일한 부분들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보태니컬 아티스트들. 자연의 일부인 식물을 자세히 조사하고 관찰한 뒤 그것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것은 작가의 예술성이 드러나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자연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보태니컬 아트는 과학과 예술, 그 사이 어디쯤 자리한다고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식물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 된 작업이다.

지난 연말, 20세기의 위대한 보태니컬 아티스트로 꼽히는 마거렛 스톤스(Margaret Stones)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호주 출신으로 1950년대부터 말린 식물 표본을 보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특히 호주 태즈메이니아 지역의 식물들에 관한 방대하고 중요한 자료를 남겼다. 크리스마스 직후 9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바로 한 달 전에는 미국 루이지애나의 토착 식물에 관한 수채화를 담은 책이 새롭게 출간되기도 했다. 그는 살아있는 식물을 그리는 동안에는 그것의 생명력에 맞는 매우 빠른 작업이 필요하며, 식물을 그릴 때마다 매번 새로운 경험을 한다고 말하곤 했다. 한 인터뷰에서는 “모든 식물은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만의 룰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수십 년간 사랑하고 그려온 식물을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고 그 개별성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마거렛 스톤스 <Stypandra grandiflora Lindl.>(1955) via ‘ngv’ 

마거렛 스톤스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존재로서의 식물을 그리는 아티스트들이 있다. 그들이 그리는 식물의 종류는 다르지만, 섬세하고 애정 어린 묘사는 비슷하다. 그들은 자신이 사는 곳 주변을 관찰하며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을 그린다. 현재 세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보태니컬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소개한다.

 

사라 제인 험프리

©Sarah Jane Humphrey

영국은 가드닝으로 유명한 나라답게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보태니컬 아티스트들도 많다. 식물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인 사라 제인 험프리(Sarah Jane Humphrey)는 영국 케임브리지셔의 시골에서 자라며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일러스트레이션과 하이퍼리얼리즘을 공부한 뒤 자연사에 대한 연구를 했고, 현재 영국 콘월에서 활동하며 자신이 직접 본 자연의 아름다움을 일러스트로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Sarah Jane Humphrey

사라 제인 험프리는 여러 브랜드와 기업으로부터 작품을 위촉받아 작업했고, 작년에는 런던에서 개최된 보태니컬 아트쇼에서 작품을 전시해 금메달을 수상했다. 또 최근에는 과학적 정확성이 더해진 보태니컬 아트에 관한 저서 <보태니컬 아트와 과학적 일러스트(Botanical Art with Scientific Illustration)>를 출간했는데, 그의 일러스트 200여 점이 포함된 책이다.

©Sarah Jane Humphrey

사라 제인 험프리 인스타그램 

 

아스카 히시키

©Asuka Hishiki

아스카 히시키(Asuka Hishiki)는 일본에서 활약이 눈에 띄는 보태니컬 아티스트 중 한 명. 교토에서 나고 자란 그는 식물과 곤충을 관찰하는 것과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두 가지를 별개의 활동으로 지속하다 마침내 자연을 그리는 작업에 다다랐다. 거리에 선 나무들과 우리 식탁에 오르는 평범한 채소들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그것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작업을 한다. 세밀화이지만 작가의 눈으로 발견한 아름다움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대상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과는 다르다.

©Asuka Hishiki

그는 자연을 그리며 점차 환경문제에 대한 인식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우리 주변에 있는 아름다운 존재들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려 노력한다. 다양한 형태의 토마토, 석류, 뿌리채소들, 정원의 식물과 그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벌레들 등은 작가의 일상 속에서 포착된 자연이다.

©Asuka Hishiki

아스카 히시키 홈페이지 

 

에우니케 누그로호

©Eunike Nugroho

수채화로 식물을 그리는 인도네시아 작가 에우니케 누그로호(Eunike Nugroho)는 영국에서 사는 동안 보태니컬 아트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이후 인도네시아로 돌아와 족자카르타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수채화 작품이지만 생동감 있는 컬러를 통해 사진처럼 보일 정도로 현실적인 느낌의 꽃과 잎, 나비, 새 등을 그린다. 식물과 함께 새와 곰을 소재로 수차례 와인 라벨을 그리는 작업을 했고, 패션과 식물을 연계한 컬래버레이션 작업도 선보였다.

©Eunike Nugroho

그중에서도 그가 특히 관심을 가지는 대상은 인도네시아의 토착 난초. 영국에서 보태니컬 아트를 시작했지만 난초의 꽃잎 컬러와 모양을 세세하게 살펴보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 난초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고 생태계의 다양성을 표현하려 한다. 그의 난초 작품은 식물 자료를 수집하는 권위 있는 기관 헌트 인스티튜드의 영구 컬렉션으로도 선정됐다.

©Eunike Nugroho

에우니케 누그로호 인스타그램 

 

애니 패터슨

©Annie Patterson

프랑스에서 디자이너로 오랜 경력을 쌓은 애니 패터슨(Annie Patterson)은 평소 자신이 기르고 수집하던 독특한 식물들을 드로잉과 회화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디자인을 하며 갖춘 컬러 감각과 디테일을 보는 섬세함이 보태니컬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Annie Patterson

살아있는 대상을 표현하는 것에 특히 매료된 그는 쉽게 볼 수 있는 튤립과 양배추부터 매우 희귀하고 이국적인 식물들까지 다양한 피사체를 관찰하고 그린다. 2006년 프랑스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미국, 독일, 영국, 호주 등에서 활발한 전시 활동을 펼쳐왔다. 프랑스 투렌 근교의 자연에 둘러싸인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Annie Patterson

애니 패터슨 인스타그램 

 

메인 이미지 출처 – 아스카 히시키 인스타그램 

 

 

Writer

잡지사 <노블레스>에서 피처 에디터로 일했다. 사람과 문화예술, 그리고 여행지에 대한 글을 쓴다. 지은 책으로는 에세이 <마음이 어렵습니다>, <회사 그만두고 어떻게 보내셨어요?>, 여행서 <Tripful 런던>, <셀렉트 in 런던>이 있다.
안미영 네이버포스트 
안미영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