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자렛이 <The Köln Concert>를 연주한 해는 1975년. 그의 나이 겨우 스물 아홉이었다. 10대부터 재즈계의 거물 아트 블레키, 찰스 로이드, 마일스 데이비스의 밴드에서 일찌감치 작곡과 즉흥연주에 눈을 떴고, 22세에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첫 음반을 낸 그였다. 앨범 <Restoration Ruin>(1968)에서는 직접 노래를 부르거나 색소폰, 기타, 드럼 등 다양한 악기를 연주하여 재즈의 정통성에서 벗어난 실험적인 음악을 시도했다. 독일 뮌헨의 신흥 재즈 레이블 ECM과 첫 솔로 피아노 음반 <Facing You>(1971)를 내면서부터는, 미국의 컬럼비아 레코드와 결별하고 즉흥적인 솔로 피아노 연주에 더욱 집중하기 시작했다.

<The Köln Concert>의 Part 1(26분)

키스 자렛은 ECM의 설립자이자 프로듀서인 만프레트 아이허(Manfred Eicher)의 소형차 르노 5에 몸을 싣고 유럽을 순회하던 중, 1975년 1월 24일에 독일 쾰른시의 오페라 하우스에서 실황 녹음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문제점들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쾰른의 오페라 하우스

키스 자렛이 사전에 요청한 대형 그랜드 피아노(Bösendorfer 290 Imperial)가 아니라 같은 브랜드의 작은 모델이 공연장으로 배달되었던 것이다. 당일 오전에 급하게 대형 트럭을 수배하여 피아노를 교체했는데, 다시 배달된 피아노는 상태가 엉망이었다. 또 다시 기술자를 불러 수리와 조율을 거쳤지만 일부 음계의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았고 페달 역시 뻑뻑해 최상의 상태로 고치기는 어려웠다. 키스 자렛은 공연을 취소할 것을 원했지만 주최 측의 설득에 따라 마지못해 공연을 하기로 했다. 그는 소리가 좋지 않은 음계를 가급적 피해서 제대로 소리가 나오는 음계 중심으로 즉흥연주를 해야 했다.

Keith Jarrett <The Koln Concert>

그의 몸 상태 또한 정상이 아니었다. 며칠 간 공연을 위해 머물렀던 스위스 취리히에서 이틀 연속 제대로 자지 못했고, 당일 쾰른까지 오랜 시간 소형차를 타고 오면서 목 부위에 통증을 호소하던 차였다. 공연장 부근에 있는 이탈리안 식당에 요기를 하러 갔으나 음식이 늦게 나오는 바람에 얼마 먹지도 못하고 공연 시간에 맞춰 나올 수밖에 없었다. 공연은 밤 11시 반에 시작했다. 오페라 하우스의 정규 오페라 공연이 끝난 후 재즈 연주에 할애할 수 있었던 시간은 이 때가 유일했다. 미리 판매한 티켓은 매진되었고 1,400명의 관객이 숨죽이고 그 날의 공연을 관람했다.

이 날 공연은 한 번의 앵콜 연주를 포함하여 모두 세 파트로 구성되었다. 두 장의 바이닐 음반으로 출반하기 위해 30분이 넘는 두 번째 곡은 두 개의 트랙으로 나누어 모두 네 개의 트랙(Part 1, Part 2a, Part 2b, Part 2c)으로 구성했다. 본 연주로 구성한 두 곡은 각 30분이 넘는 길이로, 즉석에서 1~2개의 코드를 정하여 긴 시간 즉흥연주로 이어졌다. 맨 마지막 커튼 콜에 의해 추가 연주한 6분 분량의 곡만이 사전에 작곡됐다.

1990년에 출판된 <The Köln Concert> 악보

키스 자렛은 피아니스트와 음악학자들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즉흥 연주된 두 곡의 악보 출판을 거부했다. 하지만 15년 후인 1990년 마침내 이를 수락했고, 2006년에는 폴란드의 피아니스트가 이 날의 즉흥 연주곡을 재해석한 음반을 내기도 하였다.

쾰른 콘서트 당시의 문제를 토로하는 키스 자렛

공연 후 7개월 만인 1975년 8월에 2장의 LP로 구성된 <The Köln Concert>가 출반되었다. 당일에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코드를 중심으로 1시간 동안 이어지는 놀라운 즉흥 연주력과 집중력에 찬사가 이어졌다. 이 음반은 지금까지 4백만 장이나 팔렸는데, 재즈 음반을 넘어서 솔로 피아노 연주 음반으로는 최고의 기록이다. 당일 최악의 여건에서 최고의 결과가 나올 것으로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쉽게도 그 날 공연이 영상으로 촬영되지 않았으나, 9년 후 도쿄 공연의 실황이 비디오로 남아 쾰른 공연을 상상해 볼 수 있다.

Keith Jarrett 'Over the Rainbow' Tokyo 19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