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의 결과가 아름다움일 수 있을까? 누군가는 버리고 떠났지만, 여전히 눈길을 끄는 사진들이 있다. 수명을 다한 대상에 대한 인간의 태도가 거울처럼 비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잔해들에선 덤덤함이 느껴지는 작품들이다.

 

1. 15년 동안 매일 보던 창문이 파괴되던 날,
알려지지 않은 창문의 이야기

터키 출생으로 현재 이스탄불에서 변호사와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알페르 예실타즈(Alper Yesiltas)는 자신의 집 맞은편에 있는 창문을 2005년부터 2017년까지 촬영했다. 방으로 연결된 곳이 아닌 긴 복도에 달린 창이었고, 열려 있는 날이 대부분이었기에 커튼이 살랑거리는 창문을 종종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아주 좋은 구도에서 계속해서 지켜볼 수 있는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계절별로 달라지는 모습을 촬영한 계절 시리즈를 만들 요량이었지만, 창문은 시시때때로 흥미로운 면들을 보여주었다. 단순한 이유로 시작했던 촬영은 어느새 12년이라는 세월 동안 지속되었고, 수백장의 사진이 쌓여 거대한 앨범이 되었다.

그리고 12년의 창문 시리즈는 더이상 찍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마무리되었다. 맞은편 건물이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도 그는 창문이 허물어지는 순간까지 완벽하게 포착했다. 시리즈가 ‘중단’이 아니라 ‘종료’가 될 수 있었던 건 마지막을 담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Alper Yesiltas
©Alper Yesiltas


” 2017년 5월 1일, 나는 아파트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나는 그곳에 있어서 운이 좋았고 그것을 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것은 마치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너무 깨지기 쉬웠고, 너무 빨랐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그 이야기는 슬프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사실 나는 기분이 나빴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이 정말 마음에 들고 이렇게 끝나기 때문이다.” – behance 작가의 글에서 발췌


알페르는 창문 시리즈에 대한 소개를 통해 대상에 대한 인식과 규정,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들은 한순간에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만들어지고, 자리를 잡아가며, 제시되는 과정 자체라는 것. 때문에 12년동안 많은 모습을 보여주었던 창문과 나름의 관계를 형성해왔던 그는, 이 소식을 세상에 알리기 시작하며 창문 시리즈를 마무리 지었다.

 

 

2. 남겨진 잔해와 바다의 고요한 불협화음

1949년생의 시각 예술가 존 디볼라(John Divoal)는 캘리포니아 태생으로 현재까지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고 있다. 순수미술 석사 과정을 거쳐 캘리포니아주 리어 사이드 대학교에서 미술학과 교수로 지냈으며 미국, 유렵, 일본, 호주 등 세계 전역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을 열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특히나 자연과 인공의 문제 사이의 세계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다른 이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일상 속에서 버려진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다루며 그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1970년대에는 버려진 건축물들을 방문했는데, 초기의 사진 시리즈부터 그의 어떤 것들에 주목했는지 알 수 있다.

Los Angeles International Ariport Noise Abatement Zone(1975-1976) ©John Divoal
MGM Lot (1979-1980) ©John Divoal

무너진 벽면과 깨진 유리, 아스팔트 가루와 벗겨져 드러난 철골 등. 실제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골칫거리에 지나지 않는 존재들이었지만, 그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마치 비현실적인 작품과 적나라한 실상의 고발 사이를 오가는 듯한 느낌이다.

그의 시선은 비슷한 곳들을 계속해서 찾아냈고, 이를 꾸준히 기록했다. 로스앤젤레스 인근 바닷가 인근에서 촬영한 빈집은 더욱 아이러니하다. 인간의 손을 떠나 쓰레기가 되어버린 더미들 사이로 드넓은 바다가 한없이 아름다운 색을 품고 있다. 버려진 것들이 대자연으로 돌아갈 순서를 기다리는 모습이 고요하고 또 고요해 보인다.

Zuma Series (1977) ©John Divoal

John Divola
홈페이지

 

 

3. 과거의 영광을 또 다른 아름다움으로 간직하는 건축물

2010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제임스 커윈(james kerwin). 초기에는 결혼식이나 이벤트 등 다양한 장르를 촬영하는 작가였다. 건물을 찍기 시작한 건 2014년으로, 여행을 통해 다른 문화, 음식, 질감 및 색상에 매력을 느꼈고 이 점이 버려진 건축물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탐색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2015년부터 다양한 규모의 전시를 열며 몇차례의 국제 대회에서 후보작으로 선정되기도 할 만큼 환상적인 건축사진을 만들어낸 그는 2017년 크로마키 컬러 어워드와 ND어워드에서 건축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작업은 현장에서 카메라의 풍부한 색감과 채광을 기반으로 촬영한 후에 그래픽 처리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촬영 과정은 그의 홈페이지에 게시된 현장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2017년에만 9개국을 방문했으며 현재도 유럽전역을 비롯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버려진 건물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는데, 현재는 시리즈 촬영을 워크샵으로 만들어 관심이 있는 이들과 함께 버려진 건축물을 찾아 다니고 있다.

©James kerwin

그의 사진은 건축을 포함해 그 안에서 숨쉬던 이들이 명성을 누렸던 한창의 시간으로 회귀시켜준다. 알페르의 창문 시리즈가 인간이 무언가를 손에서 놓을 때를 보여준다면, 제임스는 그 후 남겨진 것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준다. 무려 무생물에게 살아간다는 표현을 사용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의 아름다움이다.


James kerwin 홈페이지
James kerwin 인스타그램

 

 

Writer

그림으로 숨 쉬고 맛있는 음악을 찾아 먹는 디자이너입니다. 작품보다 액자, 메인보다 B컷, 본편보다는 메이킹 필름에 열광합니다. 환호 섞인 풍경을 좋아해 항상 공연장 마지막 열에 서며, 동경하는 것들에게서 받는 주체 못 할 무언가를 환기하기 위해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