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좋아하는 영화가 반드시 좋은 영화인 것은 아니다. 영화에 대한 감상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취향에 따라 평가도 극과 극으로 갈린다. 그중에서도 너무 압도적으로 평이 갈리는, ‘괴작’으로 평가받는 작품들이 있다. 보자마자 ‘감독이 미친 건가’라고 감동 혹은 경멸을 느끼게 하는 영화들.

감독에게 ‘미쳤다’는 평가는 칭찬일까? 어떤 관객에겐 영화에서 느낀 불편함과 불쾌함이 좋은 영화적 체험으로 기억되는 게 예술의 아이러니다. 괴작은 만인의 사랑을 받을 순 없지만 마니아를 만든다. 악마의 재능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 괴작을 만드는 감독들의 대표작을 살펴보자.

 

<아이 스탠드 얼로운>의 감독, 가스파 노에

이 글에서 언급할 네 명의 감독 중에서 가장 보기 힘든 영화를 만드는 건 가스파 노에다. <돌이킬 수 없는>(2002)의 성범죄 장면은 끔찍하고, <러브>(2015)의 몇몇 장면은 포르노에 가깝다. 타협 없이 늘 극단으로 가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평도 극과 극으로 갈린다. 가스파 노에의 시작을 알리는 장편 데뷔작 <아이 스탠드 얼로운>(1998)은 그의 단편영화 <까르네>(1991)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1980년 프랑스, 말 도살업자(필립 나혼)는 자신의 딸을 희롱했다고 의심되는 이를 죽이고 몇 년간 감옥에 있다가 세상에 나온다. 그는 술집에서 일하다가 술집 여주인과 눈이 맞고, 딸을 파리에 남겨둔 채 릴로 떠난다. 그러나 임신한 새 부인의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고, 말고기 가게를 차리기도 힘들어지자 분노하며 파리로 돌아온다. 파리에 도착한 그는 환멸을 느끼며 세상에 대한 복수를 결심한다.

<아이 스탠드 얼로운> 트레일러

<아이 스탠드 얼로운>은 나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영화다. 나레이션을 통해 드러나는 인물의 마음은 하나 같이 거칠다. 아내와 장모를 욕하고, 세상을 경멸하고, 자신을 비난한다. 경고처럼 들리는 효과음이 수시로 들리고, 영화의 절정을 앞두고 30초안에 극장을 떠나라는 경고문구가 나온다. <아이 스탠드 얼로운> 속 말 도축업자의 불편한 속마음을 목격한 뒤에는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사람의 속마음을 영화로 만든다면 결과물의 팔 할은 <아이 스탠드 얼로운>처럼 괴작이 아닐까, 라고.

 

<오디션>의 감독, 미이케 다카시

미이케 다카시는 60편이 넘는 장편영화를 연출한 감독으로, 한계를 모르는 상상력과 폭력적인 장면으로 대표되는 감독이다. 폭력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감독인 쿠엔틴 타란티노는 미이케 다카시의 팬으로 유명한데, <스키야키 웨스턴:장고>(2007)에 직접 출연까지 했다. 미이케 다카시가 연출한 거의 모든 작품이 괴작에 해당하는데, 그중에서도 무라카미 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디션>(1999)이 대표적이다.

몇 년 전 아내를 잃고 16살 외아들과 함께 지내는 40대 남성 ‘오야마’(이시바시 료)는 비디오 제작사를 운영하고 있다. 아오야마는 어떻게 재혼 상대를 찾을지 고민하다가, 영화 오디션을 명목 삼아서 재혼 상대를 찾기로 한다. 아오야마는 오디션에 지원한 4천 명의 여성 중 순종적으로 보이는 ‘아사미’(시이나 에이히)와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아사미는 아오야마의 상상과는 다른 인물이다.

<오디션> 트레일러

아오야마가 재혼 상대를 찾기 위해 오디션을 연다는 방식 자체가 굉장히 폭력적인데, 미이케 다카시는 오히려 오디션과 관련된 영화 전반부를 로맨스 영화처럼 평화롭게 연출한다. 이런 연출방식 덕분에 자신의 행위에 죄의식을 못 느끼는 아오야마의 심리가 도드라지고, 영화 후반부에 벌어지는 아사미의 행동들이 더욱 극적으로 느껴진다. 아사미는 말한다,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깨달을 때는 괴롭거나 힘들 때뿐이라고. <오디션>은 사람의 마음을 쉽게 여기는 이들에게 강력한 경고를 날리는 작품이다.

 

<자살 클럽>의 감독, 소노 시온

소노 시온은 인터뷰를 통해 피를 싫어한다고 밝힌 적이 있지만, 그의 작품 대부분에는 피가 넘친다. 소노 시온은 시인 출신으로 영화뿐만 아니라 미술, 음악 등 여러 방면에서 활동 중이다. 그의 작품 중에는 기괴한 설정과 시대에 대한 비판이 공존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노 시온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린 <자살 클럽>(2002)이 대표적이다.

2001년의 도쿄, 신주쿠 역에서 54명의 고교생이 동시에 선로에 뛰어내려 집단자살한다. 이후로도 도쿄에 전염병처럼 계속해서 집단자살이 일어난다. 경찰은 수사를 시작하고, 담당 형사인 ‘쿠로다’(이시바시 료)는 다음 집단자살이 일어날 장소와 날짜를 말해주는 어린아이의 전화를 받는다.

<자살클럽> 트레일러

<자살 클럽>에는 ‘당신은 당신과 관계하고 있습니까?’라는 물음이 등장한다. 나는 나 자신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왔는가, 라는 질문은 삶 전체를 흔든다. 해맑게 선로에 뛰어내려 죽은 학생들과 옥상에서 놀이하듯 뛰어내려 죽은 학생들은 이 질문에 뭐라고 답했을까. 소노 시온은 무너져가는 사회 공동체에 대한 경고를 ‘자살’이라는 가장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현한다. 소노 시온이 보여주는 과장된 세계는, 개인의 삶을 위협하는 현대사회의 균열에 비하면 오히려 평화로워 보인다. 영화가 아무리 끔찍하다 해도 현실은 늘 영화 이상으로 잔인하다.

 

<안티크라이스트>의 감독, 라스 폰 트리에

라스 폰 트리에는 <멜랑콜리아>(2011)와 함께 방문한 칸영화제에서 “나는 히틀러를 이해한다”는 나치 옹호 발언으로 영화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렇게 그의 언행이 논란을 만들 때도 있지만, 매년 그의 작품이 발표될 때면 평단과 대중들은 논쟁을 벌인다. 과격한 묘사와 함께 불편함을 안겨주는 그의 작품 중에서도 <안티크라이스트>(2009)는 압도적이다.

‘그녀’(샤를로트 갱스부르)와 ‘그’(윌렘 데포)가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밤, 두 사람의 사랑이 절정에 이를 때쯤 그들의 어린 아들은 창밖으로 추락한다. 그녀는 죄책감에 힘들어하고, 심리치료사인 그는 치료를 위해 그녀를 데리고 ‘에덴’이라는 숲으로 간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치료에는 진전이 없고, 그녀의 혼란은 더욱 심해진다.

영화 <안티크라이스트> 예고편

제목과 영화의 배경이 되는 숲의 이름 ‘에덴’에서 알 수 있듯, 종교적 상징이 많이 등장하는 작품이다. 흥미롭게도 <안티크라이스트>의 윌렘 데포는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1988)에서 예수를 연기했었다. 영화를 보다 보면 우리는 한 가지 가설에 도달한다. 그녀는 어쩌면 아들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모른 척한 게 아닐까.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작품은 사회적으로 금지된 상상을 하게 만들고, 악한 본성을 건드리는 질문을 던진다. 그가 던지는 불편한 질문에 솔직하게 답하기 어려워서, 그의 작품을 괴작 취급하며 질문을 피하는 걸지도 모른다.

 

메인 이미지 <오디션> 스틸컷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