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조금씩 풀리고 있지만, 여전히 쌀쌀한 공기가 옷깃을 스친다. 어수선한 계절 때문에 일상마저 무겁게 느껴진다면, 따뜻한 위로를 건네줄 영화들을 만나보자. 마침 3월에는 뛰어난 완성도와 감각적인 연출로 마음을 사로잡는 웰메이드 독립영화들이 여럿 개봉한다.

 

<국경의 왕>

영화를 공부하는 ‘유진’(김새벽)과 ‘동철’(조현철)이 유럽의 도시를 여행한다. 각자의 여행길에서 그들은 낯선 거리와 뜻밖의 사람, 맛있는 술, 피어나는 꽃, 오래된 예술품들을 만난다.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사건이 흘러가며 미스터리한 상황을 맞기도 하는데, 일부는 유진과 동철이 구상하는 시나리오 속 이야기인 것 같다. 인물 간의 대화를 따라가다 보면 진짜와 가짜, 의심과 신뢰 사이에 긴장이 느껴진다. 무엇이 영화이고, 무엇이 현실일까? 재미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아기자기한 상황과 더불어 김새벽, 조현철 등 독립영화가 사랑하는 배우들의 반가운 얼굴을 만날 수 있는 작품. 앞서 <초행>(2017)을 통해 부부로 연기 호흡을 맞췄던 배우 김새벽과 조현철의 두 번째 만남으로 화제를 모았다.

 

 

<내가 사는 세상>

DJ지만 현실은 일과 사랑 모두 마음처럼 되지 않아 괴로운 ‘민규’(곽민규)와 꿈은 아티스트지만 현실은 미술학원 초보 강사로 이리저리 치이기 바쁜 ‘시은’(김시은). 영화는 부당한 노동환경에서도 서로에게 의지한 채 매일을 견뎌내는 청춘들의 자화상을 담담한 필체로 그린다. 해답도, 한 치 앞길도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상황에 놓인 인물들이, 그럼에도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삶을 일궈 나가는 모습은 깊은 공감과 여운을 남긴다.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를 비롯한 여러 영화제에 초청되어 평단과 관객들의 지지를 모은 작품. 최창환 감독은 다소 무겁고 어두운 주제를 덤덤하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풀어내 몰입도를 높였다. 그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히치하이크>

열여섯 살 소녀 ‘정애’(노정의)에게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한다. 오래전 집을 떠난 엄마에게서 온 연락이다. 재개발을 앞둔 낡은 집에서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와 함께 살던 그는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엄마를 찾아가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유일한 희망이라 생각하고 길을 나선다. 로드무비의 틀 안에서 목적지로 향하는 소녀의 여정은 자주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꺾이고 갈라진다. 그때마다 소녀가 감행해야 하는 선택과 마음의 갈등이 이 영화를 상투적인 성장담에서 벗어나게 한다. 아역 배우 출신의 노정의가 소녀 ‘정애’ 역을 맡아 누른 듯 절제된 내면 연기를 선보인다.

영화 <히치하이크>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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