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유튜버 ‘연두콩’의 학생 메이크업 영상. 연두콩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여성에게 저렴한 제품군으로 집에서 쉽게 할 수 있는 화장법을 보여준다. 2년 전에 업로드한 이 영상은 조회수가 300만을 넘겼다

“선생님, 오늘 ‘클리오(Clio)’ 신상 팔레트 아이섀도 바르셨죠? 눈꼬리 ‘삼각 존’에도 발라 보세요. 되게 자연스럽고 예뻐요.” 서울에서 고등부 보습학원 강사로 일하는 30대 초반의 B에게 고등학교 2학년인 K가 조언했다. 학원에서 쉬는 시간이 되면 남학생들은 전날 본 게임 방송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여학생들은 각자의 화장품 파우치를 꺼내 구경하거나 ‘뷰티 유튜버’ 이야기에 몰두한다. 학교에서 학원으로 이동하는 짧은 시간 동안 이들은 한시라도 빨리 ‘신상’ 화장품을 구매하려 가까운 매장에 들른다. 대학 새내기를 화장의 숙련도로 구분하던 것도 지난 일이다. 갈색 일자 눈썹, 아이섀도를 자연스럽게 겹쳐 발라 더 커 보이게 연출한 눈, 턱과 광대뼈, 코를 축소하거나 돋보이게 하는 ‘컨투어링(Contouring)’ 등 유행하는 화장법을 능숙하게 구사한 교복 차림 학생들도 많다. 한눈에 선생님이 바른 아이섀도의 품명을 알아내고, “얼굴이 못생겨서 죽고 싶다”는 고민을 털어놓는 K는 전교에서 1등을 놓치지 않는다. K의 동급생 H는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 립 제품을 모은다. 학교에서 친구들 사이 인기 순위는 얼굴이 예쁜 순위와 거의 일치한다. B는 그런 학생들의 상황이 걱정스럽다.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운동을 잘해서 멋있는 친구, 아이돌 ‘빠순이’, 책을 많이 읽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개그맨처럼 웃겨서 인기가 많은 친구 하는 식으로 인기의 기준이 다양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요즘 청소년 사이 인기의 기준은 무조건 외모인 것 같다. 젊은 부모들은 애들이 칭찬받을 일이 있으면 백화점 1층에 데리고 가서 유행하는 블러셔나 립글로스를 사준다. 아이들이 가장 원하는 거니까. 아이들은 TV를 보지 않는다. 대부분의 장래 희망이나 동경의 대상은 뷰티 유튜버, 아프리카 BJ다.

‘하울(Haul)’은 물건을 잔뜩 사 모았다는 의미로, 뷰티 유튜브 중에서도 쇼핑한 화장품들을 함께 개봉하고 품평하는 하위 장르를 뜻한다. 영상은 유튜버 ‘레나’가 공개한 하울
 

“우리 때에는 이렇지 않았다”는 어른들의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최신 스타일을 접할 수 있는 매체가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유명 연예인의 패션과 화장은 때마다 유행했다. 교복 치마와 재킷을 몸에 딱 맞게 줄이고, 방학이면 머리를 염색하고, 파우더와 립글로스로 ‘투명 화장’을 하는 청소년들이 과거에도 있었다. 그때도 어른들은 말했다. “그 나이 때에는 아무것도 안 바른 게 제일 예쁘다”고. 얼굴의 작은 결점을 감추는 화장법을 잡지 기사를 통해 배웠던 세대가, 고해상의 카메라로 얼굴을 클로즈업해 튀어나온 턱과 좁은 쌍꺼풀을 보완하는 방법을 상세하게 보여주는 유튜브나 아프리카TV의 튜토리얼(Tutorial) 영상을 기꺼워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실제 30대 이상의 뷰티 유튜브 채널 진행자와 구독자들도 많다). 그러나 “너무 과하다”는 그들의 평가와 동의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한 우려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점차 세분되고, 복잡해지고, 충족시키기 까다로워지고 있다.

미셸 판의 <Spanish Rose> 메이크업 튜토리얼

십여 년 전, 온라인 모임과 다음 카페 회원들을 대상으로 뷰티 업계에 종사하는 이들이 자기 노하우를 전수하는 토막 영상들을 판도라TV, 다음팟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활용해 게시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온라인에서 글과 사진으로 자신의 화장대와 파우치를 소개하던 이들이 ‘셀피’에 익숙해지면서 화장한 모습과 화장 과정을 짧은 영상으로 촬영해 올리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미국에서 지금은 거의 1인 기업체가 된 대표적 뷰티 유튜버 미셸 판(Michelle Phan)이 초창기 동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했다(2007년). 아프리카TV에서는 BJ들이 화장법을 생방송으로 공개했다. 동시다발적으로 SNS를 활용한 1인 미디어 봇물이 쏟아지고, 해외 트렌드와 위치·시간 차를 극복하며 발을 맞췄다. TV와 잡지를 통해 독점적으로 공급되었던, 게다가 사실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던 유명인들의 ‘뷰티 시크릿’과는 반대로, 1인 미디어 운영자들은 모든 요소를 낱낱이 파헤치고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상품 판매 촉진을 위한 브랜드 메이크업 시연회에서나 알려지던 노하우는 이들에 의해 상품의 브랜드, 구입처, 가격부터 활용법까지 상세하게 밝혀진다. 어떤 브랜드의 메이크업 도구가 좋은지, 신상품의 ‘발색’은 피부 위에서 어떤 빛깔로 보이는지, 명품과 저가 브랜드의 차이점과 공통점은 무엇인지 의견을 덧붙여 수다 떨듯 친근하게 보여 준다. 민낯과 결점을 기꺼이 드러내고, 이를 어떻게 커버하는지 공유한다. 시청자는 자신의 취향, 진행자의 매력, 유용함의 정도와 유행의 반영 등을 여러모로 고려해 구독을 결정한다.

적나라하고 자극적이며 솔직하다는 특징은 1인 미디어의 가장 큰 매력이자 함정이다. 이들은 솔직하게 평가하고, 칭찬하고, 보여주며 모방과 구매 욕구를 끊임없이 부채질한다. 잘게 나누어 보여주는 것은 이목구비뿐만이 아니다. 인기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주력 콘텐츠 외 평소 라이프 스타일을 적절히 공개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소품과 패션, 미식의 취향도 자신이 공략하는 연령층의 호기심과 선망을 자아낼 수 있도록 선택하여 촬영하고,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로 노출한다. 그래서 다이어트와 피부 관리, 충분한 제품과 경험을 구매할 수 있는 자본력까지 포괄하는 ‘자기관리’는 필수다. 유명 뷰티 유튜버였던 ‘다또아’는 2016년 어느 날 장문의 글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구독자가 늘어나면서 자신을 향한 비난, 인신공격도 함께 늘었고, 육체적·심리적 어려움을 겪게 되어 활동을 잠시 쉰다는 내용이었다. 이 글에서 다또아가 토로하는 경험은 충격적이지만, 한편으로는 이토록 세분화한 미적 기준을 완벽하게 충족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며 많은 여성이 처한 어려움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다. 글 속에 등장한 죄책감, 강박, 두려움, 자기혐오 같은 단어들은 다또아뿐만 아니라 수많은 여성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생각할 때 직면하는 감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방송인 김기수도 유튜브 뷰티 채널을 개설했다. 남성 뷰티 채널로, 자신의 얼굴에 직접 시연해 화제를 모으는 중. 기존 연예인이 유튜버로 나선 사례이기도 하다

외모를 치장하는 일이 오로지 잠재적 연애 상대에게 잘 보이기 위함이라는 명제는 격파당한 지 오래다. 화장은 때로 주도적인 섹슈얼리티의 표현이다. 적어도 인터넷에 떠도는 누군가의 명언처럼, 뭘 발라도 구분 못 하는 남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여성들이 미묘한 색상 차이의 브라운 계열 섀도 팔레트를 몇 개씩 사들일 필요는 없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정교해지고, 손쉽게 그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접할 수 있는 환경은 치장의 즐거움도 선사한다. ‘퍼스널 컬러’ 진단에 따라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조를 찾고, 자기의 눈 모양에 딱 맞는 아이라인을 그리는 일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한다. 그러나 인기 유튜버들이 보여주는 다양화가 비슷한 '예쁜 모습'의 유형 속에서 일어난다는 점, 우리는 누구나 사회적인 시선을 내면화하고 살아간다는 사실에 이르면 다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우리는 원하건 원치 않건 자신을 표현하는 적절한 외형과 취향을 전시해야 한다. 그러나 그 선택의 폭조차 넓지 않다.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에게 화장과 몸매 관리는 업무의 연장으로 강요된다. 짙은 화장을 한 남성은 손가락질받거나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노출이 심한 복장은 폭력을 유발할 수 있으니 절제해야 하는 것으로, 너무 컬러풀한 복장은 업무에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한다. 경제적 빈곤의 사회화도 자유로운 치장의 걸림돌이다. SPA 브랜드에서 대량생산하는 의류는 지나치게 일률적이고, 유행하는 값싼 옷들은 뻔한 취향에 굴욕적으로 두 손 들게 한다. 저가 화장품만으로 만족하기에 화장의 세계는 너무 넓고, 때로 너무 높다.

그러니 사회적 아름다움의 한정된 기준 속에서 즐길 수 있는 해부학적 놀이, 놀이문화와 경제력이 빈곤한 세대의 대리 만족, 자기 주도적인 섹슈얼리티 표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헤엄치는 청소년들을 마냥 한심해 하거나 걱정할 입장도 아니다. 우리 모두 같은 강의 다른 다리를 건너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유튜버 ‘회사원’은 ‘세계로 가는 미용실’이라는 주제로 방문한 국가의 현지 미용실을 체험해보는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이 영상은 아랍 미용실에서 메이크업과 헤어 스타일링 서비스를 받는 장면을 촬영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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