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해방 이전의 농장주들이 반란이나 봉기를 우려하여 노예의 드럼 연주를 금지했다는 사실은 드럼이 청중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영화 <위플래쉬>(2014) 속 재즈 리듬을 표현하기 위해 손에 피가 나도록 연습하는 장면을 통해서도 리듬 섹션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재즈 콤보에서 리듬 섹션을 편성하는 베이스와 드럼

재즈 드러머들은 청중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리드 섹션의 리듬감을 살리는 데 주력하지만, 명성을 지닌 인기 드러머들은 예외 없이 긴 시간의 솔로 연주를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선보인다. 이들은 세션 맨으로 수백 회의 레코딩에 참여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세운 콤보를 구성하기도 한다. 재즈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긴 스타 드러머들과 그들의 솔로 연주를 들어보자.

 

Kenny Clarke (1914~1985)

영화 <라라랜드>를 유심히 본 관객들은 라이언 고슬링의 대사에서 나온 케니 클락(Kenny Clarke)이라는 이름을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그는 비밥 이노베이터(Bebop Innovator)라 불리며, 종종 찰리 파커의 드럼 버전으로 비교된다. 그는 고아원 출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부터 자신만의 드럼 연주 스타일을 익혀, 비밥의 산실이 된 1940년대 초반 재즈 클럽 민턴스 플레이하우스(Minton’s Playhouse)의 붙박이 드러머로 활동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프랑스로 영구 이주하여 유럽에서 음악 활동을 계속하며 드럼 교육에도 힘썼다.

프랑스의 TV에 출연한 케니 클락(1962)

 

Art Blakey (1919~1990)

아트 블레키(Art Blakey)는 고향 피츠버그에서 원래 피아노를 쳤으나 그를 고용한 클럽 주인이 에롤 가너(Erroll Garner)를 피아니스트로 초빙하기 위해 강제로 드럼으로 전환시켰다는 일화가 있다. 플레처 헨더슨 빅밴드에서 명성을 얻었고 1950년대 후반에는 재즈 메신저(Jazz Messenger)를 창단하여 하드밥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이를 통해 수많은 유망주를 양성했는데, 프레디 허바드, 웨인 쇼터, 리 모건, 윈튼 마살리스 등 아트 블레키 사단을 대표하는 여러 이름을 꼽을 수 있다. 노년이 되어 청력을 거의 상실했지만 보청기를 거부하고 감각으로 연주를 계속하였다.

아트 블레키의 드럼 솔로(1959)

 

Philly Joe Jones (1923~1985)

필리 조 존스. Via phillyjazz.us

필라델피아 출신으로 ‘Philly’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마일스 데이비스와 빌 에반스의 사이드맨으로 유명하다. 두 사람 모두 가장 선호하는 드러머로 그를 꼽았을 정도였다. 그는 1940년대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던 재즈클럽 카페 소사이어티(Café Society)의 붙박이 드러머로 활동하며, 마일스 데이비스의 눈에 띄어 그의 유명한 퀸텟(The Quintet(1955~1958))의 멤버로 활동했다.

빌 에반스의 트리오에서 드럼 솔로를 선보이는 필리 조 존스(1978)

 

Max Roach (1924~2007)

맥스 로치의 음반 <Drums Unlimited> 재킷

맥스 로치(Max Roach)는 케니 클락과 함께 비밥 드럼의 양대 기둥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며, 찰리 파커의 음반에 가장 많이 참여한 드러머다. 1950년대 중반 트럼페터 클리포드 브라운과 함께 한 퀸텟 시절에 많은 명반을 내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그가 자신의 이름으로 출반한 음반은 70여 장에 이르며, <Drums Unlimited>(1966)에 드럼 솔로 곡을 수록하여 독자적인 악기로서의 드럼의 위상을 높였다. 이 중 ‘The Drum Also Waltzes’는 레드 제플린의 드러머 존 보냄이 ‘Moby Dick’의 드럼 솔로에 참조하였다는 유명한 곡이다.

맥스 로치의 ‘The Drum Also Waltzes’ 드럼 솔로(1994)

 

Elvin Jones (1927~2004)

엘빈 존스(좌)와 존 콜트레인(우)

존 콜트레인의 콤보에서 전성기를 함께 하며(1960~1966) <A Love Supreme> 등 수많은 명반에 함께 참여한 드러머다. 그의 형제인 행크 존스(피아노), 테드 존스(트럼펫) 역시 재즈 뮤지션으로 유명하다. 드럼 솔로 연주에 특히 정통하여 역사상 가장 뛰어난 드럼 솔로이스트로 불리기도 한다. 콜트레인 사후에는 자신의 밴드 ‘Elvin Jones Jazz Machine’을 이끌었다.

Elvin Jones Jazz Machine에서의 드럼 솔로(1991)

 

Joe Morello (1928~2011)

Joe Morello의 명저 <Master Studies>(1986)

태생적으로 시력이 좋지 않은 그는, 집 안에 틀어박힌 채 바이올린에 몰두해 10살에 보스턴 심포니와 함께 협연한 클래식 신동이었다. 하지만 15세에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야사 하이페츠(Jascha Heifetz)를 만나 그에 필적한 연주를 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고 드럼으로 바꾸었다는 놀라운 일화의 주인공이다. 1955년에 데이브 브루벡을 만나 그의 쿼텟에서 함께 활동하며 60여 장의 앨범을 냈다. 드럼 레슨에도 주력해 후학을 양성했고, 드럼 관련 저서와 비디오를 출판했다. <Playboy>지는 7년 연속, <Down Beat>지는 5년 연속으로 그를 최우수 드러머로 선정하며, 역대 최우수 드러머로 자주 거론된다.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최고 인기곡 ‘Take Five’에서의 4분의 5박자 드럼 솔로. 격찬을 받는 인기 영상 중 하나다

 

Roy Haynes (1925~)

로이 헤인즈(Roy Haynes)는 스무 살이던 1945년에 직업적인 드러머로 나서 레스터 영(1947~1949), 찰리 파커(1949~1952), 사라 본(1953~1958) 등 재즈 스타들과 함께 연주하며 유명해졌다. 1960년에는 <에스콰이어>지의 ‘베스트 드레서’에 마일스 데이비스와 함께 선정되면서 유명세를 과시했다. 자신만의 독특한 드럼 스타일로 ‘Snap Crackle’이란 별명을 얻었고, 록 밴드의 드럼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제 94세의 나이로 70여 년간 현역 재즈 드러머로 활동하며 가장 많은 레코딩에 참여한 드러머다.

로이 헤인즈의 드럼 솔로(1973)
<Jazz Stories>에 ‘The 7-Decade Career of Drummer’로 소개된 로이 헤인즈(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