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표적인 감독은 <제7의 봉인>(1957), <처녀의 샘>(1960), <페르소나>(1966), <화니와 알렉산더>(1982) 등을 연출한 잉마르 베리만이다. 잉마르 베리만이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지난 2017년, 제70회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감독은 스웨덴 출신의 루벤 외스틀룬드다. 스웨덴 출신 감독 하면 여전히 많은 이들이 잉마르 베르만을 떠올리는 지금, 스웨덴 영화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감독이 등장한 것이다. 

루벤 외스틀룬드의 영화는 관객들이 가지고 있는 위선과 환상을 박살 낸다. 대표적인 복지국가인 스웨덴에 대한 환상을 부수고, 중산층, 엘리트, 지식인 등으로 지칭되는 이들의 위선을 까발린다. 블랙코미디에 가까운 극의 분위기 때문에 웃게 되지만, 관객을 웃게 만든 그 상황이 현실에서 내 상황이 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하게 느껴진다. 당연한 듯 지니고 있는 위선과 환상에 균열을 일으키는 루벤 외스틀룬드의 작품을 살펴보자.

 

<플레이>

Play |2011|출연 아나스 아브디라만, 케빈 바즈, 존 오티즈

스웨덴의 어느 신발 가게에서 신발을 구경하는 세 명의 소년. 이들은 가게에 나타난 흑인 소년 무리를 보고 겁을 먹는다. 우려대로 흑인 소년들은 이들에게 다가오고, 셋 중 한 소년의 핸드폰이 자기 일행의 잃어버린 핸드폰 같다고 주장한다. 세 소년은 결백을 호소하고 도망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이들 무리를 당해낼 수가 없다. 중간중간 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도 적극적으로 돕기보단 방관하고, 결국 세 소년은 자신들이 가진 핸드폰부터 옷과 악기까지 거의 모든 걸 빼앗길 위기다.

<플레이>는 스웨덴 예테보리의 10대 소년들이 또래를 2년 동안 40차례 강탈한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로, 거의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연출을 보여준다. <플레이>는 세 소년이 공포에 떠는 과정 사이사이에, 평화로운 기차 안에서 방치된 요람을 찾아가라고 방송하는 승무원을 보여준다. 요람을 찾아가라는 방송이 계속되자 번거롭게 여기는 어른들의 태도와 버려진 요람은, 같은 시간 폭력에 방치된 아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플레이> 트레일러

<플레이>는 아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다룬다. 아이들이 행하는 폭력의 방식은 어떤 면에서 어른보다 더 잔혹하다. 그러나 폭력을 행한 아이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이전에, 왜 아이들이 가해자 혹은 피해자로서 폭력에 노출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 말로는 평등을 말하지만 불평등한 사회를 만들고 있는 어른들이 만든 나비효과가 <플레이> 속 폭력일지도 모른다.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Force Majeure , Turist|2014|출연 요하네스 쿤게, 리사 로벤 콩슬리, 크리스토퍼 허뷰

‘토마스’(요하네스 쿤게)는 아내 ‘에바’(리사 로벤 콩슬리)와 딸 ‘베라’(클라라 베테르그렌), 아들 ‘해리’(빈센트 베테르그렌)와 함께 알프스산맥에 위치한 고급 스키 리조트에서 휴가를 즐기는 중이다. 고급 호텔에서 휴식과 스키로 시간을 보내다가 맞이한 휴가 둘째 날, 토마스의 가족은 야외식당에서 눈 덮인 산을 바라보며 밥을 먹는다. 이때 산에 쌓인 눈이 쏟아져 내리고 사람들은 이게 눈사태인지 아닌지 혼란스러워한다. 쏟아지던 눈은 결국 사람들을 향해 돌진하고, 토마스는 자신의 본능을 따라 가족을 두고 도망친다.

‘포스 마쥬어’는 프랑스어로 ‘불가항력’을 뜻한다.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은 불가항력으로 인해 가족을 보호하는 가장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실패한 토마스를 둘러싼 이야기다. 아내 에바는 토마스에 대한 큰 실망감을 느끼고, 베라와 헤리는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걸 보고 불안해한다.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 트레일러

살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은 생각보다 많다. 토마스의 경우 아빠와 남편, 직장인 등의 역할이 주어졌고 나름대로 잘 수행해왔지만,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본능이 그 역할의 장애물이 된다. 우리는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과 본능 사이에서 얼만큼의 줄타기를 해야 하는 걸까. ‘멋진 어른’이라는 허상이 사라지지 않는 한, 사회화는 세상 누구에게나 힘든 과정일 거다.

 

<더 스퀘어>

The Square |2017|출연 클라에스 방, 엘리자베스 모스, 도미닉 웨스트

스웨덴 스톡홀롬 현대미술관의 수석큐레이터 ‘크리스티안’(클라에스 방)은 길에서 핸드폰을 소매치기당한다. 그는 GPS 추적을 통해 핸드폰을 가져간 이가 사는 건물을 알게 되고, 그 건물의 모든 집에 핸드폰을 돌려달라는 경고장을 날린다. 한편 크리스티안이 맡은 프로젝트인 ‘더 스퀘어’는 사각의 공간 안에서 모두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는 뜻의 설치예술이다. 그런데 홍보대행사에서 ‘더 스퀘어’ 홍보영상을 자극적으로 연출한 뒤에 업로드를 하면서 크리스티안은 위기를 맞는다. 게다가 자신이 날린 핸드폰을 돌려달라는 경고장 때문에 불청객을 만나게 된다.

루벤 외스틀룬드 감독은 2015년에 스웨덴 베르나모 지역에 위치한 반달로룸 디자인 미술관 광장에서 ‘더 스퀘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영화 속과 마찬가지로 정사각형 공간 안에서 모두 동등한 권리와 의미를 갖는 ‘더 스퀘어’ 프로젝트는 실제로 유럽 내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루벤 외스틀룬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더 스퀘어’를 배경으로 사람들의 위선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고, 그 작품이 바로 <더 스퀘어>다.

<더 스퀘어>는 러닝타임 내내 이중성에 대해 말한다. 예술작품인 ‘더 스퀘어’는 모든 이의 평등을 말하지만, 작품을 바라보는 이들은 미술관 주변 걸인을 없는 사람 취급한다. 미술관에 방문한 사람들은 큐레이터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만, 제공되는 요리에 대해 설명하는 요리사의 말은 무시한다. 크리스티안은 큐레이터로서 예술의 가치를 알아보는 게 직업이지만, 전시 중인 예술가의 작품이 부서지자 그 사실을 은폐하고 자기 손으로 보수하려고 한다.

<더스퀘어> 트레일러

<더 스퀘어> 후반부에는 행위예술가가 유인원처럼 행동하며 점점 폭력적으로 변하는 장면이 나온다. 처음엔 행위예술을 즐기던 관객들은 어느새 자신에게 폭력이 가해질까 두려워한다. 이들이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공통점이라면, 자신에게 위협 혹은 손해가 되는 순간 호의가 사라진다는 거다. 이들의 태도를 보면서 위선을 비판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회의 균형을 팽팽하게 맞춰주는 것 또한 위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위선은 필요악일까. 행위예술 하듯 사회에 필요한 선을 연기하는 게 습관이 된 현대인에겐 사치스러운 질문일지도 모른다.

 

 

Writer

에세이 <나만 이러고 사는 건 아니겠지>, <달리다 보면> 저자. 좋아하는 건 영화, 여행, 음악, 문학, 음식. 특기는 편식. 꾸준한 편식의 결과물을 취향이라고 부르는 중. 취향을 바탕으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김승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