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있어 가사는 작품의 의도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며, 사람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귀를 기울이게 하고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요즘처럼 공기마저 무겁고 텁텁해 마음 산만한 계절에는 가타부타 의미가 담긴 가사와 수다를 양껏 덜어낸 인스트루멘탈이야말로 우리에게 신체적, 심리적 휴식을 안겨주기에 제격이다. 사람의 목소리가 아예 없거나 비중을 줄인 인스투루멘탈 신곡들을 통해 도시 밖으로 탈출하는 기분을 느껴보자.

 

마음먹기

Telefonist ‘City Casual’(2018.06.27)

출발은 당연히 도시로부터다. 실제로 이 곡은 합정과 상수, 홍대를 걸으며 받은 영감과 당시의 호흡을 곡으로 고스란히 녹여냈다고 한다. 분명 도시 한복판이로되, 그에 대한 인지 만큼은 인디와 변방을 상징하는 감각 때문일까. 그렇게 완성한 ‘City Casual’은 익숙하되 마냥 뻔하지 않은 심상으로 도시의 캐주얼을 그려낸다.

Telefonist ‘City Casual’ MV

텔레포니스트의 음악은 사실 몽환적인 보컬 음악으로 더 익숙하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도시를 앞세운 일렉트로닉 팝을 지향하면서 색다른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뻔하지 않은 지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제목에서 예상되는 70~80년대 시티팝의 센치하고 도회적인 이미지와 전연 다른 쿨하고 반인간적인 90년대 디트로이트 하우스풍의 사운드와 반복하는 패턴 속 층을 쌓아가는 서사가 도시의 매력을 내뱉는 동시에 도시 탈출의 심정을 재촉한다.

 

출발하기

모하나 ‘Brave Lee’(2018.06.19)

기념비적인 좀비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 초반부 장면을 차용한 모하나의 ‘Brave Lee’ 뮤직비디오는 그 고전적인 영상만큼이나 음악 또한 복고미가 그득하다. 경쾌한 서프록 사운드가 굳이 음악의 서사에 집중하지 않아도 될 진취적인 기운을 잔뜩 불어넣어 주며 탈출에 박차를 가한다.

모하나 ‘Brave Lee’ MV

밴드 모하나의 데뷔 EP에 실린 이 곡은 신명 나게 파도를 오르내리는 베이스 리프와 리듬 기타의 청량하고도 촐싹 맞은 재간이 기실 위험하고 급박한 상황으로 치닫는 영상의 분위기와 상충한다. 하지만 동시에 ‘바바라’의 달음질과 같은 리듬으로 상승해가며 뜻밖의 골계미를 전달하기도 한다. 가사 없이 즐기는 본격적인 행진곡, 대사 없이 즐기는 여행의 서막으로 안성맞춤이다.

 

경계 도달하기

운진앤선지 ‘Summer Dream’(2018.07.27)

그렇게 우리는 도시 안팎의 경계에 도달한다. 어느새 차츰 멀어지는 도시에 대한 미련 탓인지 기계적 노이즈의 앰비언트가 산뜻한 비트의 여명 사이를 간간이 어지럽히며 전반부를 끌어간다.

운진앤선지 ‘Summer Dream’ MV

그러다 슬슬 박차를 가하는 리듬과 또렷이 잡히지 않는 목소리로 아스라이 청자를 소환하는 중후반의 하이라이트가 이제 완연히 도시 밖 자연에 접어들었음을 선언한다. 가벼이 반복되는 미니멀 사운드로 촘촘한 서정과 입체적인 추상을 동시에 완성해내는 운진앤선지의 신곡은 여행의 전반부를 함축한 ‘작은 거인’과도 같다.

 

빠져들기

915 Galaxy Train ‘성산일출봉’(2018 07.25)

중심에 이르면 이제 그 속에 빠져들어 즐기는 일만 남았다. 물론 그 방식은 제각기 다를 수 있다. 처음 계획한 온전히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도시 밖 심상을 만끽하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프로젝트팀 915 Galaxy Train의 ‘성산일출봉’은 실제 여행 스케치 위로 해금 멜로디가 가벼웁게 뛰놀며 범상한 도시민의 도시 탈출을 시청각으로 대변한다.

915 Galaxy Train ‘성산일출봉’ MV

 

Orange Fang Fang Boys ‘3 Minute’(2018.08 06)

기대와 다르게 조금 진지해질 수도 있다. 오렌지 팡팡 보이즈의 사운드는 분명 프로그레시브 록이나 포스트록, 재즈 록 퓨전처럼 주로 진보적이거나 난해한 것으로 여겨졌던 인스트루멘탈 록을 꽤나 멜로디 서사 지향적이고 대중 친화적인 톤으로 접근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동시에 다채로운 기타 변주와 종종 비장함을 더하는 합주의 기운을 통해 지친 도시 일상에서 캐내지 못했던 사유의 끝을 향해 달릴 수도 있다.

Orange Fang Fang Boys ‘3 Minute’ MV

 

돌아오기

한솔잎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2018 08.06)

누군가는 아쉬워서, 어떤 이는 여행이 또 다른 질문을 던져줘서 떠나올 때 마냥 가벼움과는 조금 다른 무게감을 간직한다.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어른의 마음을 담았다는 이 곡의 메시지는 곧 그것이 가벼운 여행이든 인생의 여정이든 어느 순간에는 결국 뒤를 돌아보게 된다는 공감대를 담고 있다.

한솔잎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MV

시종일관 대중음악에는 생소한 국악 타악기 운라와 글로켄슈필 등을 활용하는 이 곡은 영롱한 멜로디와 리프로 아련하고 아름다운 감상을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다. 대신 차분한 휴지기를 거친 중반 이후 산에 오르는 영상과 점차 웅장하게 발전하는 후반부 사운드텔링을 통해서는 가사 없이 각자의 여행을 갈무리하도록 충분한 절정과 대단원을 제공한다.

 

Writer

차분한 즐거움을 좇는다. 그래서 보고 들은 것과 일상에 대한 좋은 생각, 좋아하는 마음을 글로 옮긴다. 학부 시절 네이버 파워블로그에 선정된 후 쓰기를 이어와 현재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웹진 <음악취향Y>, 잡지 <재즈피플>, 신문 <아주경제> 등에 글을 기고한다. 누구나 늘 즐겁기를 바란다. 너무 들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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