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인간의 꿈과 희망, 기쁨과 슬픔, 낭만과 사랑, 그리움과 기다림, 고통과 악몽, 불안감 등 감정을 반영하며 다양한 형태로 인간의 삶과 조우한다. 영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 그것과 함께 영화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어떠한 감정이나 형태로든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다.

2017년 IDAHOT에 참석한 캐나다 총리 저스틴 트뤼도 Via Embassy of Canada to Italy

지난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인 IDAHOT(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and Biphobia)에서 캐나다 총리 저스틴 트뤼도는 “우리는 모두 사랑받을 자격과 존중받을 자격이 있습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LGBTQ란 다양한 성적 지향성을 가리키는 단어로, 레즈비언 (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퀴어(Queer) 혹은 퀘스쳐닝(Questioning)의 약자이다.

GLAAD의 CEO 사라 케이트 앨리스

최근 미국의 미디어 내 LGBTQ 이미지를 관리 및 감시하는 비정부 기구인 GLAAD(Gay & Lesbian Alliance Against Defamation)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배급한 109편의 영화 중 LGBTQ 캐릭터가 등장한 영화는 단 14편에 불과했다. 이는 전체 영화의 12.8%에 해당하는 수치로, 2016년의 18.4%에 비해 현저히 줄어든 비율이다. 2012년부터 매해 보고서를 발표한 이래 가장 낮은 비율로, 14편의 영화 중 절반의 영화에서 게이 캐릭터의 분량은 채 5분도 되지 않았다. 유일하게 긍정적인 부분은 다양한 인종의 LGBTQ 캐릭터가 늘었다는 점. 유색인종의 LGBTQ 캐릭터가 전체 캐릭터의 57%를 차지했다. GLAAD의 CEO 사라 케이트 앨리스는 할리우드의 메이저 스튜디오에 LGBTQ 캐릭터를 2021년 까지 20%, 2024년까지 50% 포함시킬 것을 요청하였다.

ⓒThe Daily Beast

성소수자에 관한 이슈를 다루는 플랫폼을 통해 우리가 성소자들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지 되짚어 보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 몇 년 사이 선보인 영화 중에서 배우들의 혼신의 열연으로 흥미 이상의 진한 여운을 남긴 LGBTQ 캐릭터들을 만나보자.

 

喜 [기쁠 희]

MCU의 수장 케빈 파이기

마블 시네마틱 스튜디오(MCU)의 수장 케빈 파이기가 향후 개봉될 영화에 2명의 LGBTQ 캐릭터가 등장한다고 예고했다. 지금껏 남성 중심이었던 히어로물에서 LGBTQ 히어로 캐릭터의 등장은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계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앤트맨과 와스프> 스틸컷

지난 25일 케빈 파이기는 미국 매체 <플레이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이미 본 적 있는 두 캐릭터가 나온다. 한 명은 이미 영화에 등장한 캐릭터고, 나머지 한 명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어떤 영화의 어떤 캐릭터인지는 함구했다. 마블은 최근 <앤트맨과 와스프>(2018)를 개봉하면서 와스프의 강인한 면이 돋보여 이제껏 히어로물에 출현하는 전형적인 여성 캐릭터 이미지를 타파했다는 호평을 얻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동성애자의 권리를 중요시하는 도시,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LGBTQ 캐릭터를 등장시키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엑스맨> 시리즈의 ‘미스틱’

지금까지 MCU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성소수자 캐릭터를 다룬 적은 없지만 사실 마블 코믹스 속에는 100명이 넘는 성소수자 캐릭터가 존재한다. <엑스맨> 시리즈의 미스틱은 예지능력을 가진 ‘뮤턴트’, ‘데스티니’와 연인 관계로 발전했고(실제 영화에서 이러한 설정은 반영되지 않았다), <토르> 시리즈의 ‘발키리’ 또한 양성애자로 알려져 있다.

<토르: 라그나로크> 발키리

발키리를 연기한 테사 톰슨은 <토르: 라그나로크> 개봉 전인 2017년 10월 21일, 자신의 트위터에 “그녀는 양성애자다. 그녀는 남자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연기하기 즐거운 캐릭터!”라는 트윗을 남겼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정작 발리키의 성정체성에 관련한 부분은 등장하지 않았다.

디즈니에서 얼마 전 퇴출당한 감독 제임스 건 Via yahoo

소아성애 및 강간 등을 언급한 SNS 발언으로 지난 7월 20일 디즈니에서 퇴출당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시리즈의 제임스 건 감독 또한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의 개봉 전인 4월 20일, <디지털 스파이> 와의 인터뷰에서 게이 히어로를 시리즈에 넣을 의향이 있다고 밝히며 이제는 LGBTQ 히어로를 만나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남겼다.

 

怒 [성낼 로]

<로렌스 애니웨이> 의 ‘로렌스’

<로렌스 애니웨이>(2012)의 주인공 ‘로렌스’(멜빌 푸포)는 이성애자와 동성애자로 구분하는 전통적인 이분법으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인물이다. 그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이지만 남은 인생을 여자로 살고 싶어 한다.

어린 시절 사촌들과 수영장에서 잠수 놀이를 할 때 가슴이 터지기 바로 전, 죽기 일보 직전에 수면위에 올라와 이겼다고 외치던 로렌스는 오랜 연인 ‘프레드’(수잔 클레망)에게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며 더는 못 참겠다고 말한다. 수면 위로 마침내 올라와 첫 숨을 내뱉듯 커밍아웃을 한 로렌스는 프레드와 사랑의 힘으로 관계를 이어나가지만 로렌스가 직면하는 현실 사회의 불편한 눈길들은 그를 벼랑 끝으로 내몬다.

그가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하는 장면은 영화의 명장면으로 꼽힌다. 흘러나오는 음악과 로렌스의 걸음걸이, 눈빛, 옷 색깔 등 전체가 조화를 이루며 드디어 물 밖으로 나와 승리감을 만끽하는 모습과 더불어 절망과 혼란, 그리고 세상에 대한 분노에 가득 찬 그의 눈빛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哀 [슬플 애]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레이언’

1992년에 사망한 에이즈 환자 론 우드루프의 삶에서 모티프를 얻은 영화다. 트렌스젠더인 ‘레이언’(자레드 레토)은 깡마른 몸의 에이즈 환자다. 살날이 앞으로 30일밖에 남지 않았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된 괴팍한 성질의 ‘론’(매튜 맥커너히)을 만나게 되며 에이즈 환자를 위한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을 만들어 밀수한 약을 판매한다. 동성애를 혐오하고 방탕한 생활을 즐기던 마초남 론과 다르게 레이언은 부유한 집안 출신이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가족에게서 버림받았다. 불같은 성질의 론에게서 버림받고 싶지 않아 애잔한 눈빛으로 항상 그의 주변을 지키며 동업자로서, 친구로서, 동료로서(혹은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끝까지 함께하는 레이언의 모습은 깊고 오랜 여운을 남긴다.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의 레이언

특유의 신랄함과 남부 여성의 거친 입담, 그리고 한없이 따뜻하며 애잔한 마음씨는 레이언의 가장 큰 매력 포인트이다. 때때로 약에 취한 그의 위태위태한 모습은 어쩐지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한다.

제86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은 자레드 레토

실제 레이언을 연기하기 위해 혹독한 체중감량과 전신 제모까지 강행한 자레드 레토는 제86회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레이언의 앙상하게 마른 몸은 어쩐지 슬프지만 아름답다. 그의 눈빛에서 동성애자의 아픔과 에이즈 환자의 고통을 드러낸 절박함과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樂 [즐길 락]

<톰보이>의 ‘로레’

주인공 ‘로레’(조 허란)는 10살짜리 아이다. 겉모습은 남자아이와 같지만 그는 여자아이로 태어났다. 영락없는 ‘톰보이’ 모습의 로레는 새로 이사를 가게 된 동네에서 ‘미카엘’이란 가명으로 남자아이들과 어울려 축구를 하고 수영도 한다. 하지만 동갑내기 여자아이, ‘리사’(진 디슨)와 사랑에 빠지면서 상황은 더욱 꼬이기 시작한다.

<톰 보이>의 로레

한 컷 한 컷 넘어갈 때마다 로레의 거짓말이 들통날까 괜히 가슴 졸이게 된다. 끝에 로레의 파란 원피스를 입은 모습은 슬프지만, 엔딩신에서 리사와 다시 마주한 로레의 모습을 보며 10살짜리 꼬마 로레의 성장 과정을 흐뭇하게 지켜보며 응원하게 된다. 성별로 구분 짓는 사회의 고정관념을 깨려는 어린 로레를 만나보자.

 

봉태규 인스타그램

배우 봉태규는 지난 15일 방송된 KBS 2TV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핑크색을 좋아하고 공주가 되고 싶어하는 아들 시하를 향한 우려의 목소리에 입장을 밝히고자 인스타그램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시하는 핑크색을 좋아하고 공주가 되고 싶어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저는 응원하고 지지해 주려고요.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어떤 기준이 아니라 시하의 행복이니까요.”

 

성별을 뛰어넘어 인격으로, 있는 모습 그대로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평등한 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에서부터 시작한다. 스크린에 등장하는 LGBTQ 캐릭터들이 물론 실제 성소수자들을 모두 대변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성소수자’를 카테고리화하여 구분 짓기 보다는, 그들을 한 인격체로서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우리에게 우선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