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 최고의 음악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칸예 웨스트(Kanye West). 그런 그가 최근 다섯 장의 앨범을 연달아 발표했다. 자신의 앨범 <ye>를 비롯해 푸샤 티(Pusha-T), 키드 커디(Kid Cudi), 나스(Nas), 테야나 테일러(Teyana Taylor)의 앨범을 작업한 것. 라인업만 보면 마치 호화스러운 스튜디오에서 작업했을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앨범들은 모두 와이오밍에서 작업한 결과물이다. 와이오밍은 미국에서도 시골로 손꼽히는 주다. 당연히 힙합, 알앤비의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지역이기도 하다. 한편, ‘와이오밍 프로젝트’의 결과물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칸예 웨스트의 앨범 <ye>였다. 앨범의 분위기와 서사가 전작들과 비교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강렬한 실험정신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따뜻함과 가정적인 모습이 대신한다. 여러모로 살펴볼 거리가 많다. 칸예 웨스트가 굳이 와이오밍에서 앨범을 작업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것이 실제로 <ye>가 따뜻한 분위기를 띠는 데 영향을 준 것일까?

 

트러블메이커, 혹은 시대를 앞서간 천재

테일러 스위프트의 수상에 난입한 칸예 웨스트. 출처 – cosmopolitan 

사실 칸예 웨스트에게 ‘따뜻함’이나 ‘가정적’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여태껏 트러블메이커에 가까웠다. 2005년, 인터뷰 중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지 부시(George W. Bush)에게 “Bush Doesn't Care About Black People”이라는 돌발 발언을 날린 게 트러블의 시작이었다. 이후 ‘2009 VMA’에서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의 수상 중 난입해 모두를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동료 아티스트 키드 커디에게도 “Kid Cudi, I birthed you”라는 막말, 혹은 일침을 날린 적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모든 흑인 아티스트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를 외면할 때 그와 친분을 과시했고, 최근에는 400년의 노예 제도에 대해 “That sounds like a choice”, 즉 ‘그건 선택적이었다’는 망언을 날리기도 했다.

Kanye West ‘Runaway’

하지만 칸예 웨스트의 음악적 성과만큼은 무시할 수 없다. 그는 언제나 트렌드를 앞서갔다. 실험적인 작업물로 매번 평단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2010년대 이후 발매한 앨범의 면면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 2010년 발매한 5집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는 ‘맥시멀리즘’이라는 개념을 음악을 통해 승화한 작품이다. 전작들에서 선보였던 샘플링 기법과 전자음악의 요소를 총망라해 앨범에 녹여냈다. 당시 칸예 웨스트는 ‘송 캠프’라는 작업 방식을 도입하기도 했다. 실력 있는 수많은 프로듀서를 불러모아 자신의 강점을 조금씩 앨범에 보태는 작업 방식이었다(이 송 캠프 방식은 현재 우리나라 대형 기획사를 비롯한 전 세계 작업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자연스럽게 앨범의 사운드는 그 어떤 앨범보다 다채로웠다. 칸예 웨스트의 지휘 아래, 모든 재능이 결합한 걸작이 탄생한 셈이다.

Kanye West 'Ultralight Beam'

이후 발매한 6집 <Yeezus>, 7집 <The Life of Pablo>에서도 최고의 음악적 역량을 선보인다. <Yeezus>에서는 전설적인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을 총괄 프로듀서로 두고, 악기의 거친 질감을 그대로 살려냈다. 다음 앨범 <The Life of Pablo>에서는 돌연 가스펠 사운드 가득한 힙합 앨범을 선보였다. 가스펠 합창단과 크리스천 래퍼로 분류되기도 하는 챈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를 적극적으로 기용해, 힙합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던 틀을 부수는 데 일조했다. 또 독특한 점이 있었다면, 그는 <The Life of Pablo>를 ‘살아있는 앨범’이라고 칭한 것이다. 기존의 앨범들이 발매와 동시에 담겨있는 콘텐츠가 업데이트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됐다면, 칸예 웨스트는 앨범 발매 이후에도 앨범을 유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사운드를 수정하고 새로운 곡을 꾸준히 추가했다. 이처럼 칸예 웨스트는 단 한 번도 누구와 비슷한 음악을 한 적 없다. 매번 격을 깼고, 다른 아티스트의 귀감이 됐다.

 

한 가족의 가장이자 남편, 아버지

지난 6월 발매한 앨범 <ye>에는 어떤 사운드가 담겨있을까? 놀랍게도 <ye>에는 강렬한 실험정신도, 특이한 이야기도 담겨있지 않다. 서문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 자리를 가족에 대한 사랑과 따뜻함이 대신할 뿐이다. 그간 칸예 웨스트가 보여준 행보와 완전히 반대되는 결과물이다. <ye>에 대해 평단과 팬들의 반응은 비교적 냉담한 편이다. 그가 선보일 줄 알았던 실험정신에 대한 기대가 컸던 탓이다. 하지만 칸예 웨스트 자신에게는 어떤 앨범보다 의미 있는 앨범임에 틀림없다. <ye>는 그간 수많은 구설에 오르내리면서도 자신의 곁을 지켜준 아내, 킴 카다시안(Kim Kardashian)에 대한 선물이자 못난 아버지 밑에서도 잘 자라주는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책이기 때문이다.

Kanye West 'Wouldn't Leave'

수록곡 ‘Wouldn’t Leave’에서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내가 어떤 망언을 하든 날 지지해주고,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가만히 다독여 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또 ‘이런 내 옆에 왜 있어 주는지 모르겠다’는 뉘앙스의 말을 조심스레 전하기도 한다. 실제로 그는 앨범 작업 당시, 아내와 매일 같이 지내면서도 ‘Wouldn’t Leave’만큼은 끝까지 들려주지 않았다고 한다. 이 곡을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곡 ‘Violent Crimes’에는 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너는 내게 하나뿐인 영광이며,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많을 테지만 항상 내가 곁에 있다는 걸 기억해’라는 진심 어린 이야기가 담겨있다.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가 아닌, 평범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앨범을 만든 것이다.

 

호텔 방, 파리, 루브르 그리고 와이오밍

칸예 웨스트가 이토록 따뜻한 음악을 들려줄지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작업을 위해 와이오밍에 간 순간부터, 앨범 분위기에 대해 어느 정도 힌트를 준 게 아닐지 생각하게 된다. 그는 앨범을 작업할 때, 스튜디오가 위치한 지역의 특성을 잘 담아냈다. 맨하튼의 최고급 호텔 방에서 작업한 <Watch The Throne>은 그만큼 화려한 프로덕션이 돋보였다. 파리에 위치한 개인 로프트에서 작업한 <Yeezus>에는 자신을 신으로 여기는 등 자의식이 크게 묻어나왔다. 실제로 이러한 발상은 근처 루브르 박물관을 틈틈이 방문하고, 내부 곳곳을 살펴보며 영감받았다고 한다. 이번 앨범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비교적 차분하고, 따뜻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한적한 와이오밍에 작업실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세상과 단절된 채, 가족들과 오랜 시간을 보내며 그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 위해 이곳으로 향했던 것 같기도 하다.

출처 - Kim Kardashian 인스타그램

앨범 <ye>가 상업적으로 성공했는지 묻는다면, ‘칸예 웨스트의 이름값’에 비해서는 아쉽다고 할 수 있다.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로 데뷔하기는 했지만, 발매 2달이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앨범은 20위권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또 확실한 히트 싱글이 부재했다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지만 그가 사회적으로 트러블메이커나 음악적으로 위대한 아티스트가 아닌, 평범한 인간이자 가장의 모습을 드러낸 것에 있어서는 박수 칠 만하다. <ye>는 그의 어떤 앨범보다 인간적이었고 소박했다. 전작의 명성에 취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갔다. 마치 실제로 와이오밍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앨범을 만든 것처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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