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한 영화 <버드맨>(2014)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전례가 없던 영화음악을 구상하였다. 코미디 공연에서 배경음으로 드럼을 활용한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버드맨>에 강한 리듬감을 주기 위해 오리지널 스코어로 드럼 솔로를 시도한 것이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같은 멕시코 출신으로 친하게 지내던, 팻 매스니의 드러머 안토니오 산체스(Antonio Sanchez)를 만났다. 한 번도 영화음악을 해 본 적이 없는 산체스는 시나리오를 읽고 감독의 머릿속에 그려진 장면을 전해 들으면서, 최초의 드럼 솔로로 이루어진 영화음악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영화를 스크린에 띄우고 드럼 솔로를 연주한 콘서트 <Birdman Live> 홍보영상(2017)

예사롭지 않은 시나리오에 예사롭지 않은 감독, 그리고 최초의 오리지널 드럼 스코어라는 사실 덕분에 <버드맨>은 화제를 뿌리며 아카데미 다관왕이 유력시되었다. 영화음악 부문 또한 수상이 기대되었다. 하지만 산체스는 후보작 발표 하루 전 수상위원회로부터 후보에서 제외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크게 실망했다. 이유는 총 30분 이상의 비독창적인 음악이 포함되면 안 된다는 수상규칙 때문이었다. 산체스의 오리지널 드럼 스코어 부분과 함께 19세기 클래식 음악이 포함되어 있던 것이 문제였다. 산체스는 제작사와 함께 클래식 분량이 30분을 넘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위원회에 공식 항의했으나, 위원회는 “상당 분량의 클래식이 포함되었다”며 원래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이어서 골든글로브와 영국아카데미상(BAFTA)의 후보에도 올랐지만,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와 새틀라이트 어워드에서 수상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Birdman> 중 ‘The Anxious Battle for Sanity’. 주인공의 혼란한 정신상태를 묘사한다

역대 재즈 드러머 중 안토니오 산체스처럼 엘리트 코스를 밟은 사람은 드물다. 그는 멕시코에서 태어나 다섯 살부터 드럼 스틱을 잡았으며, 멕시코 국립음악원에서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했다. 보스턴의 음악 명문 버클리의 장학생으로 재즈를 전공하여 차석으로 졸업했고 뉴잉글랜드 음악원의 장학생으로 석사 공부를 하던 중 교수의 추천으로 UN 악단의 일원으로 순회연주를 다녔다. 그의 연주 실력과 명성은 팻 매스니에게도 전해졌다. 수개월에 걸친 몇 차례의 오디션 끝에 마침내 어린 시절부터 그의 염원이었던 팻 매스니 그룹(PMG)의 일원이 되었고, 트리오, 유니티 밴드를 거치면서 그의 우상과 함께하는 음악적 파트너십은 계속되고 있다.

팻 매스니 그룹 시절 산체스의 솔로 연주. 그는 두 손과 두 발이 따로 놀고 특히 왼발로 계속 클라베(Clave)를 치는 연주로 유명하다

재즈 콤보의 부수적인 역할에 그치는 여느 재즈 드러머와는 달리, 그는 명문 음대를 장학생으로 졸업하며 탄탄한 이론과 연주력으로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팻 매스니 그룹의 활동이 뜸해진 후 솔로 경력을 쌓기 시작한 그는 지난해 여섯 번째 앨범 <Bad Hombre>(2017)을 발표하며 그래미상 후보에 올렸다. ‘Bad Hombre(나쁜 남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유세 당시 강경한 이민정책을 시사하며 멕시코의 범죄자를 지칭한 용어다. 안토니오 산체스는 앨범 제목으로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자신이 리더로 있는 재즈 밴드 Migration Band와 함께(2013)

이제 그는 자신의 밴드 Migration Band를 이끌고 있고 뉴욕대(NYU)에서의 강의와 세계 전역에서 무료 드럼 클리닉 행사를 진행하는 등 가장 바쁜 재즈 드러머 중 한 명이다. 많은 평론가들은 세계 최고의 드러머 리스트에 그의 이름을 올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안토니오 산체스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