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나면 벙찌는 영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상상력으로 전혀 다른 경험을 만들어주는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 이 그리스 출신의 젊은 감독은 라스 폰 트리에와 미카엘 하네케의 계보를 이어 유럽의 새로운 거장으로 거론되고 있다.
제62회 칸 영화제의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 수상작 <송곳니>와 제68회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더 랍스터>에 이어, 제70회 칸 영화제 각본상을 거머쥐며 2018년 개봉한 <킬링 디어>까지. 기이하며 충격적인, 서늘한 이끌림으로 우리의 시선을 붙드는 그의 독창적인 세계를 엿보자. 

 

<송곳니>

Kynodontas, Dogtoothㅣ2009ㅣ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ㅣ출연 크리스토스 스테르기오글루, 미셸 발리, 아게리키 파루리아

높다란 담과 초록빛 정원, 수영장 딸린 교외의 아름다운 저택. 이곳에선 부부와 딸 둘, 아들 하나로 구성된 가족이 살고 있다. 부모는 ‘송곳니가 빠져야만 집을 떠날 수 있다’는 법칙으로 아이들을 세상과 격리한 채 양육하고 있다. 또한 완벽한 통제를 위해 언어를 자신들만의 의미로 보강해 아이들에게 주입한다.
게다가 부부는 도망나간 장남이 담 넘어 들어온 들고양이에게 죽임당했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전하며 다소 믿기지 않을 법한 트라우마를 심어준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아이들이라면 황당했겠지만 이곳의 세 아이에게 이 거짓말은 통용된다. 가족 중 오직 아버지만이 밖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다.

아이들에겐 이름이 없다. 오직 태어난 순서대로 불릴 뿐이다. 아이들은 말을 잘 들을 때마다 주는 스티커를 모으며 경쟁하고, 이들이 하는 게임은 폭력적일 뿐 유희는 눈곱만치도 없는 이상한 짓들이다. 어쩐지 소설 <1984>가 떠오르지 않는가? 한편 아버지는 아들의 성욕 해소를 위해 회사 경비원 ‘크리스티나’를 집으로 불러들여 성관계를 맺도록 한다. 그러나 이 존재는 아이들의 호기심을 부추기고, 촘촘해 보이던 아버지의 세계에도 곧 균열이 시작된다.

<송곳니> 트레일러

독특한 상상력으로 시스템화된 세계를 흔들어 보이는 이 영화에서 ‘송곳니’는 의미심장한 상징을 담고 있다. 인간의 송곳니는 자란다고 빠지는 것이 아니며, 인간의 치아 중 가장 날카로워 폭력을 떠오르게도 한다. 즉, 송곳니가 빠졌을 때에야 통제된 세상을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은 어쩌면 독재 아래 세계에서 완벽한 탈주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을지 모른다. 막이 내릴 때까지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연속되는 이 영화에서 공포에 질린 눈을 뗄 수 없다. 재미있는 점은 이 영화의 장르가 코미디라는 것이다. 영화는 이 아이러니함을 끝까지 놓치지 않는다.

 

<더 랍스터>

The Lobsterㅣ2015ㅣ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ㅣ출연 콜린 파렐, 레이첼 와이즈, 레아 세이두, 벤 위쇼

<더 랍스터>는 가깝고도 먼 미래의 사랑 이야기다. 그런데 요르고스 란티모스답게 이 러브스토리도 참 당혹스럽다. ‘데이비드’(콜린 파렐)는 부인에게 버림받고 ‘커플 메이킹 호텔’이란 곳에 끌려간다. 이 호텔엔 다소 황당한 규칙이 존재한다. 호텔에 머무는 자들이 45일간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해 숲에 버려지는 운명에 처한다는 것. 호텔엔 지켜야 할 규칙들로 가득하다. 솔로는 테니스, 배구 등 그룹 운동을 할 수 없으며 혼자서만 식사를 해야 한다. 짝짓기를 고무시키기 위해 자위행위가 금지되며 이를 어길 경우 토스터에 손을 넣고 지져지는 고문을 받는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데이비드는 결국 숲으로 도망친다. 그리고 그곳에서 ‘솔로부대’를 발견한다. 솔로부대는 보다 자유롭지만 숲에서도 호텔만큼 지켜야 할 룰이 있다. 연애 금지, 섹스 금지, 플러팅 금지가 그것. 또 죽어도 뒤처리해줄 사람이 없으니 무덤은 각자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 요컨대 철저히 외톨이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러나 곧 데이비드는 ‘근시 여자’(레이첼 와이즈)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이 세계에선 비슷한 결점을 가져야만 커플이 될 수 있다. 데이비드 역시 근시) 함께 도시로 탈출하자는 작전을 세우지만 이들의 사랑은 점점 곤경에 처한다. 데이비드는 짝짓기에 실패했을 때 ‘랍스터’가 되고 싶다 말한다. 랍스터는 광활한 바다에 살며, 장수하는 동물이고, 죽을 때까지 번식한다. 어쩌면 한심해 보이지만 이것은 동물과 인간이 결코 크게 다르지 않은 욕망의 생물이라는 점을 일깨워준다. 더불어 이는 자유를 상징한다.

<더 랍스터> 트레일러

이 영화 속 디스토피아에는 제멋대로 사랑하지 않거나, 사랑할 자유 모두 없다. 극단적인 이분법의 세계다. 우리가 사는 세계와 크게 다를까? 그리고 사랑이란 과연 완전할까? < 더 랍스터>에서 우리는 세상의 완벽하다 믿어왔던 것이 사실 얼마나 허술하게 이루어져 있는지 목격하게 된다.

 

<킬링 디어>

The Killing of a Sacred Deerㅣ2017ㅣ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ㅣ출연 콜린 파렐, 니콜 키드먼, 배리 케오간ㅣ국내개봉 2018.7.12

‘스티븐’(콜린 파렐)은 성공한 심장전문가다. 결혼 16년 차인 그에게는 안과 의사이자 부인인 ‘애나’(니콜 키드먼)와 딸 ‘킴’(래피 캐시디), 아들 ‘밥’(서니 설직)이 있다. 그들은 스티븐에게 특별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당연한 존재다. 그 앞에 미스터리한 소년 ‘마틴’(배리 코건)이 나타나며 그의 평범했던 일상이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한다.
스티븐은 예전 자신의 환자의 아들이었던 마틴에게 꽤 호의를 보이며 살갑게 대한다. 어쩌면 동정이나 연민 같은 감정일지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마틴의 행동은 조금씩 불편해진다. 이 알 수 없는 불편함과 불안함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때쯤, 이제 마틴은 말도 없이 그의 병원을 맴돌거나, 그의 가족을 몰래 만나고 다니고, 제멋대로 약속을 잡은 뒤 만나길 종용하며 점점 그를 옥죄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에우리피데스가 쓴 고대 그리스 희극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아가멤논이 성스러운 사슴을 사냥하며 아르테미스를 희롱하자 진노한 아르테미스가 아가멤논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결국 아가멤논은 용서받기 위해 자신의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는데, 그 순간 이피게네이아와 사슴이 바뀌어 버렸다는 것이 희극의 주된 내용이다. <킬링 디어>의 원제 <The Killing of a Sacred Deer>는 ‘신성한 사슴 살해’란 뜻이다. 영화가 그리스 신화에서 본 고대의 잔인무도한 희/비극을 닮은 것은 이 모티브와 흡사한 스토리의 맥락 때문이다.
영화는 날카로운 사운드와 차가운 미장센을 잘 운용하며 스릴과 미스터리함을 안겨준다. 그러나 마틴이 속사포처럼 저주를 퍼붓는 장면에선 이 영화가 악몽 같은 판타지물로 변이함을 볼 수 있다. 마틴의 저주는 마치 신탁을 떠올리게 한다. 그저 아이의 해괴한 장난이라 여길 수 없는 것은, 그 저주가 곧 현실이 되고 비밀이었던 것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킬링 디어> 트레일러

덧붙여 신탁(?)을 받는 자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심장전문의라는 것은 묘한 아이러니를 빚는다. 박찬욱 감독은 <킬링 디어>를 감상한 뒤 “현재 세계의 감독 중에서 차기작을 기다리게 만드는 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바로 요르고스 란티모스”라는 극찬을 남겼다. 우리는 그를 통해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그의 미래를 기다려본다.

 

Writer

나아가기 위해 씁니다. 그러나 가끔 뒤를 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