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인지는 터질 것같이 풍만한 몸매의 여성을 그린다. 자기확신으로 가득 찬 그의 그림 속 여성들은 흔히 날씬하거나 깡 말라서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획일적인 미의 기준을 비껴간다. 이들은 타인이 요구하는 아름다움보다,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꾸미고 드러낸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부풀려 올린 머리와 풍성한 속눈썹, 짙은 메이크업으로 치장한 여성들은 때론 자기 욕망을 실현하는 데 주저함 없는 여왕처럼, 때론 좋아하는 걸 숨길 줄 모르는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듯하게 표현한 선과 쨍한 색감을 이용한 발랄하고도 선명한 그림체를 훔쳐보는 쾌감도 쏠쏠하다. 한편 인물들 못지않게 생동감을 뽐내는 그림 속 오브제들은 작가 자신의 취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그는 시럽이 줄줄 흐르는 케이크, 얼음이 동동 떠다니는 칵테일, 체리와 파인애플 등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인물 한켠에 가득 채워 한 폭의 그림을 완성한다.

애정하는 바를 파악하고 드러내는 데에 주저함이 없는 서인지의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은 유명 브랜드와의 협업부터 전시나 공연 포스터, 뮤지션들의 앨범 커버 아트워크 등 다양한 매체를 한계 없이 오간다. 이렇듯 다양한 영역을 아우르며 꾸준히 자신의 스펙트럼을 넓혀온 작가에게는 어떤 장면들이 인상을 남기는지 궁금하다. 그가 평소에 즐겨보고, 듣는 시청각들을 보내왔다.

Seo Inji Says,

“작업을 할 때,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오랜 시간 동안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시간을 보내다 보면 종종 지칠 때가 있다.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이런 번뇌의 순간이 찾아올 때마다 아래의 영상들을 틀어 놓고 기분을 환기하곤 한다. 주로 작업창을 봐야 하기 때문에 작업 중에 아무 때나 고개를 들어도 흐름을 이해할 필요 없이 흥미로운 이미지가 이어지는 것으로 고른 리스트이다. 대체로 작업 중간에 잠깐씩 보기 때문에 며칠 동안 반복해 틀어도 고개를 들 때마다 새로운 장면이라 지루하지 않다.”

 

1. Computer Dreams (1988)

한 시간 분량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쇼케이스다. 지금 시청하기에는 다소 오래되고 촌스러운 그래픽이지만 그 어설픈 귀여움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오히려 익숙한 소재도 낯설게 바라보게 돼서 영감에 도움이 될 때가 있다. 고개를 들 때마다 매번 흥미로운 장면이 나오는 바람에 종종 넋 놓고 보고 있기도 한다.

 

2. Kelly Slater | North Shore, Hawaii

나의 버킷리스트 1위는 서핑이다. 아직 시도해 보지도 못했지만 ‘언젠가는-‘하는 마음으로 종종 서핑영상을 재생한다. 파란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과 에메랄드 빛 바다, 그 위로 거대하게 다가오는 파도를 골라잡고 요리조리 보드를 타는 서퍼들을 보고 있자면, 당장이라도 방문을 열고 나가면 쨍한 햇살 아래 모래사장이 펼쳐질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3. The Rolling Stones ‘She's A Rainbow’ (Official Lyric Video)

여행 중, 브루클린 덤보에서 열리는 마켓에서 한눈에 반해 구매한 렌티큘러 커버의 LP판이 있다. 그 LP의 수록곡 중 하나의 리릭 비디오인데, 제멋대로 나열한 요란한 색과 이미지들의 향연이 마음에 든다. 답답할 때 마음을 뻥 뚫리게 해주는 비디오이다.

 

4. Jem ‘I Got My Eye on You’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방영된 만화 시리즈물 <젬 앤 더 홀로그램(Jem and the Holograms)>. 80년대 아니메를 검색하다 찾은 애니메이션이다.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에 방영했던 애니메이션이지만, 캐릭터들의 코스튬이나 애니메이팅 하나하나가 볼 때마다 엄청나서 작업(특히 애니메이션 작업)이 힘들다고 느낄 때 마음잡기 용으로 틀어놓곤 한다.

 

일러스트레이터 서인지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애니메이터.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는 대로’ 그린다. 작품을 통해 초 단위로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디지털 세대의 감성을 대변하는 한편, 자신의 독특한 취향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평면과 입체, 페인팅과 애니메이션, 케이팝 스타의 뮤직비디오와 앨범 커버, 해외 브랜드와의 협업 등 다양한 매체를 한계 없이 오가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서인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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