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에 있는 것은 꼭 ‘그림’이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은 식상해진지 오래다. 레디메이드 물건을 가져다 놓기만 해도 미술이 되는 시대에 이르렀으니까. 하지만 미술관에서 ‘코’를 킁킁거리며 감상한다거나 살아 있는 벌레가 기어 다니는 걸 목격하기란 여전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미술관은 어디까지나 ‘눈’으로 감상하는 공간으로 한정되어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호르몬 냄새와 우글거리는 벌레들, 우리가 보고 듣거나 느끼기 어려운 컴퓨터 데이터를 가지고 작업하는 미술가가 등장했다. 바로 아니카 이(Anicka Yi)다. 그의 작업은 기존의 규칙이나 관행을 의식하지 않는다. 불쾌한 것 혹은 상상 바깥의 것을 있는 그대로 가져와 마음껏 조작한다. 그리고 그 조작의 예술적인 가능성이 곧 정치적인 메시지의 힘을 갖는다.

 

Lifestyle Wars, 2017

Anicka Yi, <Lifestyle Wars, 2017>Via guggenheim
Anicka Yi, <Lifestyle Wars, 2017>Via guggenheim

복잡한 설계와 LED 조명 탓에 어마어마한 데이터 회로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지극히 생물학적인 요소들로 이뤄져 있다. 중간중간 거대한 인공 버섯이 솟아 있을 뿐만 아니라, 목수개미 군단이 유리로 된 회로 속을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모계사회의 특성을 간직한 목수개미 군단이 내뿜는 냄새와 아시안-아메리칸 여성들로부터 채취한 땀 냄새가 유리관 안에서 진동하며 개미들의 움직임을 이끈다.

집단이 본능적인 냄새를 따라, 언뜻 보기엔 대단히 과학적인 방식으로 움직이는 사회. 아니카 이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온몸으로 사태를 감각하려는 욕망, 총체적인 감각들의 내러티브를 파악하려는 욕망, 그리하여 복잡한 현대 사회에 뿌리내린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을 문제화하려는 욕망 속으로 자신을 내던지게 만든다.

 

The Flavor Genome, 2016

Anicka Yi, <The Flavor Genome, 2016> Via iffr
Anicka Yi, <The Flavor Genome, 2016> Via iffr
Anicka Yi, <The Flavor Genome, 2016> Via iffr

맛과 향을 다루는 화학자(flavor chemist)의 아마존 탐험을 그린 이 3D 필름은, 그가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채취하고, 혼합하고, 재탄생시켜 새로운 맛과 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유전자에 새겨진 자연의 존재들은 그의 손 안에서 새로운 조건에 적응하거나 돌연변이를 낳고, 하이브리드화된다. 결과물들은 의외로,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실은 우리가 아는 ‘자연’도 관습적인 것이 아니었던가?

이제 반대의 관점을 생각해보자. 아니카 이는 색감에서부터 넘치는 매력을 뽐내는 이 영상물을 통해 전 지구에서 일어나는 폭압, 이를테면 제국주의적인 문화 오염과 사라진 원주민 문명을 넌지시 불러들이고 싶었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사태들을 바라보는 관점은 정말이지 너무나 다양하고, 나름대로 현실적이다. 심지어 우리의 감각을 온통 사로잡아서, 그것들의 정치적인 상황을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Anicka Yi, <The Flavor Genome, 2016> Via contemporaryartdaily
Anicka Yi, <The Flavor Genome, 2016> Via contemporaryartdaily
Anicka Yi, <The Flavor Genome, 2016> Via contemporaryartdaily
Anicka Yi, <The Flavor Genome, 2016> Via contemporaryartdaily
Anicka Yi, <Force Majeure, 2017> Via guggenheim

이외에도 아니카 이는 미국 코리아타운과 차이나타운에서 채취되어 배양된 박테리아 타일을 미술관 벽면 한가득 채워놓기도 하고, Lifestyle Wars의 데이터 회로에 들어 있던 냄새를 살충제 용기에 담아 분사하기도 한다. 코리안-아메리칸으로 태어나 자란 이력, 미술을 전공하지 않고 광고와 패션 분야에서 자유롭게 일해온 그의 경력이 그러한 상상력의 밑바탕이 되었을까?

그는 삶에서 당당한 아웃사이더였기에 미술에서도 문제적 아웃사이더가 되기를 자처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냄새 역시 볼륨이 있고 힘 있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3차원의 존재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Writer

미학을 공부하고 글을 씁니다. 현대 미술과 문학에 관심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