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힙합 매거진 XXL은 매년 10명의 신인 아티스트를 선정한다. 매체의 성격에 맞게 힙합, 알앤비 분야의 재능 있는 신인들을 뽑고 그들을 ‘XXL Freshman Class’라고 부른다. 뽑힌 아티스트들은 그달의 XXL 매거진 커버를 장식하는 영광을 얻는다. 혜택은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사이퍼 영상도 촬영하는데, 이는 전미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간다. ‘XXL Freshman Class’는 블랙 뮤직 팬들에게 매년 재능 있는 신인을 만날 기회이자, 동시에 신인 아티스트에게는 단번에 스타가 될 소중한 기회인 셈이다.

이미지 출처 ‘Freshman XXL’ 

2007년 처음으로 선정이 시작된 이래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제이콜(J. Cole) 등 당시 내로라하는 신인들이 선정됐다. 그들이 지금 블랙 뮤직 신에서, 음악계 전체에서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 생각해보면 ‘XXL Freshman Class’는 단순히 신인을 조명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올해는 어떤 아티스트가 이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할까? 후보에 이름을 올린 126명의 아티스트 중 주목할 만한 세 명을 꼽았다. 비록 매번 예상을 빗나가는 ‘XXL Freshman Class’지만, 이 세 아티스트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현재 블랙 뮤직 신의 분위기를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릴 펌(Lil Pump)

이미지 출처 ‘Substream Magazine’ 

랩 네임으로 ‘Lil’을 사용하는, 일명 ‘릴 래퍼’ 열풍은 2018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들은 더 가볍고 자극적인 모습으로 힙합에 접근한다. 그 중심에는 릴 펌이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생소한 이름이 아닌 릴 펌은 마이애미 출신 래퍼로, 콜롬비아 이민자 출신 부모님 밑에서 자랐다. 일반화하는 건 아니지만, 이민자 출신의 자녀들이 비교적 힘들게 자라는 것처럼 릴 펌도 순탄치 않은 유소년기를 보냈다. 가난했고, 가난은 곧 탈선으로 이어졌다. 잦은 싸움에 휘말렸으며 고등학생 때는 난동을 부렸다는 이유로 퇴학당했다.

Lil Pump ‘Gucci Gang’ MV

어둡기만 했던 그의 삶에 유일한 빛이 되었던 게 바로 힙합. 래퍼 스모크퍼프(Smokepurpp)의 눈에 띄어 음악을 제대로 시작하게 됐고, 사운드클라우드를 기반으로 ‘D Rose’ ‘Boss’ 등의 싱글을 히트시키며 결국 대형기획사와 계약을 따냈다. 그의 음악은 정제되지 않은 로파이한 느낌을 준다. 일부러 날카로운 사운드를 사용하고, 각종 의미 없는 가사와 추임새를 넣어 곡을 구성한다. 마치 MSG를 가득 친 음식을 먹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음식이 몸에는 안 좋지만 맛은 좋은 법. 자극적인 사운드와 중독성 있는 훅, 추임새는 힙합 팬들을 사로잡았고, 어느덧 힙합 신의 트랜드가 됐다. 힙합의 문법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 일조한 것이다. 1년 만에 엄청난 성장을 이룬 릴 펌이 어디까지 성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티 그리즐리(Tee Grizzley)

이미지 출처 ‘Viper Magazine’ 

평범한 사람들이야 자랑스럽게 말할 얘기는 아니지만, 래퍼들에게 ‘얼마나 거친 삶을 살아왔는가’ 하는 요소는 상상 이상으로 중요하다. 흔히 이를 스트릿 크레디빌리티(Street Credibility)라고 한다. 과거보다 마초성을 드러내는 음악이 줄어든 게 사실일지라도, 여전히 갱스터 힙합과 머니 스웩 등이 힙합 신에는 만연하다. 티 그리즐리는 자신만의 스토리, 스트릿 크레디빌리티를 음악 속에 탁월하게 녹여낼 줄 아는 래퍼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모두 수감되어 할머니 밑에서 자란 이야기부터, 이후 어머니의 마약 밀매와 아버지의 사망에 관한 이야기가 음악 속에 묻어 있다. 특히 가난에서 비롯된 절도, 교도소 수감과 출소 이후의 삶은 비극적으로 보일 정도다.

Tee Grizzley ‘First Day Out’ MV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련의 사건들이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한다. 출소 후 첫날을 그린 곡 ‘First Day Out’이 엄청난 성공을 거둔 것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절도를 하고, 생존하기 위해 법정에서 싸운 적 있는지’ 묻는 그의 생생한 가사는, 의미 없는 추임새로 가득한 힙합 신에 신선한 파장을 일으켰다. 그 독특한 매력은 랩 스타일에서도 드러난다. 고향 디트로이트의 선배 래퍼 에미넴(Eminem), 대니 브라운(Danny Brown)에서 영향받은 듯한 타이트한 래핑은 그가 정말 신인 래퍼인지 되물어보게 만든다. 또 음악 곳곳에서 나타나는 엇박자 플로우는 청각적 쾌감을 극대화한다. 트랜드에는 다소 엇나갈지라도, 자신의 색깔을 지켜나가는 티 그리즐리는 주목받을 만하다.

 

 

릴 스카이즈(Lil Skies)

이미지 출처 ‘Atlantic Records’ 

바야흐로 랩 싱잉의 시대다. 장르의 경계가 모호해짐에 따라 음악적 혼합이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힙합도 마찬가지다. 과거 힙합이 음악적으로 오로지 ‘랩’만을 의미했다면, 최근에는 여기에 알앤비적 요소가 더해지고 있다. 릴 스카이즈는 이를 잘 대변하는 아티스트다. 네 살 때부터 작곡을 시작했다는 그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힙합을 비롯한 다양한 음악을 접했다. 특히 아버지의 영향력이 크게 작용한 거로 보이는데, 일례로 그가 처음 만들었던 앨범의 이름도 <Father-Son Talk>였다.

Lil Skies ‘Nowadays (feat. Landon Cube)’ MV

어린 시절부터 오로지 힙합만을 쫓아온 게 아니어서인지 릴 스카이즈의 음악에는 팝, 알앤비적인 요소가 고루 드러난다. 전통적 힙합 클리셰에 반하는 경쾌한 프로덕션 위에, 랩과 노래 어느 것으로도 규정하기 힘든 보컬을 선보인다. 사실 이러한 요소는 그의 매력 포인트이기도 하다. 릴 스카이즈가 주목받는 계기가 된 두 싱글 ‘Red Roses’와 ‘Off The Goop’ 모두 이와 비슷한 문법을 따른 곡이며, 가장 최근에 발표한 곡 ‘Lust’도 마찬가지다. 요즘 많은 아티스트가 그렇듯, 릴 스카이즈는 자신의 음악을 시각화하는 데도 재능 있다. 비디오 디렉터 콜 베넷(Cole Bennett)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함께 작업하고, 매번 자신의 음악에 꼭 알맞은 비주얼을 선보인다. 음악 장르도, 아티스트로서의 협업도 경계 없이 이뤄낸다는 측면에서 릴 스카이즈는 눈에 띄는 신인임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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