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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팬이라면 푸른 타원형 로고가 새겨진 블루노트 음반을 보며 가슴 설렜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버브, 리버사이드, 프레스티지와 함께 재즈를 대표하던 여러 레이블 중에서도 블루노트가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강력한 디자인 이미지 때문인지도 모른다. 많은 재즈 레이블이 장르의 쇠퇴와 함께 활동을 멈추거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블루노트 레코드는 여전히 살아남아 재즈 역사를 쓰고 있다. 스위스 출신의 다큐멘터리 감독 Sophie Huber는 내년에 창립 80주년을 맞는 블루노트 레코드의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올해 3월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공개했다.

<Blue Note Records: Beyond the Notes> 예고편

예고편에서 볼 수 있듯이 루 도날드슨(Lou Donaldson), 허비 행콕(Herbie Hancock)과 같은 재즈 레전드와 앰브로스 아킨무시리(Ambrose Akinmusire)와 로버트 글래스퍼(Robert Glasper)와 같은 신예들이 인터뷰에 등장한다. 블루노트의 80년 역사를 관통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알아보았다.

 

 

사자와 늑대의 왕국

다큐멘터리 예고편에 등장하는 오랜 흑백사진에서 한 백인 신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의 이름은 알프레드 라이언(Alfred Lion), 독일 출생이며 16세 때 베를린에서 재즈 공연을 처음 접하고 재즈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웠다. 미국으로 이민 온 후 무역회사에 다니다가 31세가 되던 1939년에 블루노트를 창업했다. 이듬해에는 어린 시절 절친한 친구였던 프란시스 울프(Francis Wolff)가 합류하며 블루노트의 역사가 시작된다. 전문 포토그래퍼였던 그는, 지금까지 남은 수많은 재즈신의 현장 사진을 남겼다. 독일 출신의 두 창업자는 함께 현장을 누비며 재즈 음악과 뮤지션들의 사진을 담으면서 성장하였고, 재즈 아티스트들은 그들의 성을 따서 블루노트를 ‘사자와 늑대의 왕국’이란 애칭으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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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라이언(좌)과 프란시스 울프(우)

 

 

뮤지션 친화적인 재즈 레이블로 성장

이들은 후발 사업자로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남다른 전략을 세웠다. 재즈 뮤지션들이 클럽에서 연주를 마치는 이른 새벽에 스튜디오를 빌려 녹음을 진행하였다. 그들에게 술과 다과로 대접하며 정성을 들였고, 녹음 후 음반 작업에도 그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였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블루노트는 기존의 다른 음반사들과는 달리, 뮤지션들을 잘 대접하고 그들에게 친화적이라는 평판을 얻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블루노트의 첫 히트 음반이 나오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잇따른 폭행 사건으로 연루되며 대형 음반사들이 기피하던 시드니 베셋(Sidney Bechet)의 ‘Summertime’의 판매가 호조를 보이면서 재즈 레이블로 자리를 잡게 된다.

시드니 베셋 ‘Summertime’(1939)

 

 

디자인 전문가 레이드 마일스와 음향 전문가 루디 반 겔더

블루노트의 성공 스토리를 이야기할 때, 두 사람의 창업자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전문가 두 명이 있다. 그래픽 디자이너 레이드 마일스(Reid Miles)와 음향 엔지니어 루디 반 겔더(Rudy Van Gelder)다. 1950년대 초부터 <에스콰이어> 매거진의 프리랜서였던 레이드 마일스는, 12인치 LP 발매를 시작하던 1955년 블루노트에 고용되어 5백여 장의 앨범 재킷을 디자인했다. 아티스트의 전면 사진에 의존했던 기존 관행에 탈피하여, 블루노트의 음반은 타이포그래피(Typography)와 포토그래피를 현대적으로 조합 배열하여 그래픽 디자인계에서도 큰 호평을 받았다. 무명이었던 앤디 워홀이 블루노트 음반의 디자인 작업에 참여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블루노트의 예술적인 앨범 표지는 다양한 아트북으로 출간된다

루디 반 겔더는 원래 음향 엔지니어링을 전공하지는 않았으나, 열광적인 재즈 애호가로서 뮤지션인 친구의 소개로 1953년 블루노트에 조인했다. 그는 블루노트를 포함하여 수천 회의 재즈 레코딩의 음향 전문가로, 재즈 신에서 가장 인정받는 레코딩 엔지니어가 되었다. 존 콜트레인의 <A Love Supreme>과 마일스 데이비스의 <Walkin’>은 그의 음향 작업을 대표하는 음반이다. 하지만 찰스 밍거스로 대표되는 일부 뮤지션은 그가 자연적인 소리를 의도적으로 조작한다며 그와의 작업을 거부하기도 하였다.

레이드 마일스의 블루노트 음반 재킷

 

 

비밥과 하드밥의 신예들을 끌어안다

블루노트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음악 트렌드를 신속하게 받아들이며 선구적인 재즈 레이블로 자리매김했다. 1947년 세션 연주자이자 작곡가에 머물던 델로니어스 몽크의 첫 음반을 발매하면서 부진한 음반 판매에도 불구하고 발매를 멈추지 않았고, 결국 몽크의 블루노트 음반들은 후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다. 이어서 드러머 아트 블레키 또한 리더로서 첫 음반을 냈다. 1950년대 하드밥 시대에 접어들자 블루노트는 더욱 공격적인 행보를 이어나갔다. 이 시기에 블루노트에서 데뷔 음반을 낸 신예는 행크 모블리(Hank Mobley), 리 모건(Lee Morgan), 소니 클락(Sonny Clark), 케니 도햄(Kenny Dorham), 케니 버렐(Kenny Burrell), 루 도날드슨(Lou Donaldson)으로 이어졌다.

유로채널의 <Blue Note: A Story of Modern Jazz> 홍보영상
인터뷰에 나선 Gil Melle는 루디 반 겔더의 친구로 블루노트에 그를 소개한 인물이다

 

 

창업자의 퇴진과 블루노트의 재건

알프레드 라이언이 심장마비로 인한 건강 악화로 은퇴(1968)하였고 그 후 회사를 경영하던 프란시스 울프 또한 사망(1971)하며 블루노트는 음반 활동을 멈춘다. 그러던 중 블루노트의 모회사를 인수하게 된 EMI가 휴면 상태에 있던 재즈 왕국의 재건을 위해 성공적인 프로듀서이자 자칭 ‘실패한 색소포니스트’인 브루스 룬드벌(Bruce Lundvall)을 CEO로 초빙한다. 그는 허비 행콕, 지미 스미스, 덱스터 고든 등 옛 블루노트 아티스트를 불러 모으는 한편 신예 재즈 스타도 발굴했다. 결정적으로는 무명 노라 존스(Norah Jones)를 발굴하여 5천만 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리며 재임 30여 년간 블루노트의 재건에 성공하였다. 오늘날 블루노트는 유니버설 뮤직 그룹 산하의 재즈 레이블로 운영되고 있다.

블루노트 75주년 기념 콘서트에서 웨인 쇼터와 공연하는 노라 존즈

 

 

Blue Note Records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