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개봉한 <혹성탈출: 종의 전쟁>(War for the Planet of Apes, 2017)은 프랜차이즈의 아홉 번째 영화다. <십계>(1956), <벤허>(1959) 등 대작에서 선이 굵은 영웅역으로 스타가 된 찰톤 헤스톤(Charlton Heston)이 주연을 맡은 <혹성탈출>(1968)은 당시로선 놀라운 유인원 특수 분장과 충격적인 스토리로 극장가를 강타했고, 이후 50년을 이어온 거대 프랜차이즈로 발전했다. 그동안 총 9편의 영화로 전 세계 극장가에서 23억 달러, 한화로는 약 2조 7천억원의 수입을 벌어들였으며,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테마공원 같은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했다.

<혹성탈출: 종의 전쟁> 예고편

하지만 프랜차이즈의 역사는 험난했다. 영화의 기본 스토리라인이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종의 문제, 동물의 처우와 권리에 관한 이슈, 우주 SF 모험영화의 요소, 인류 멸종을 다룬 포스트 아포칼립스 등 다원적인 스토리로 구성되어 차기 작품 개발에 애를 먹었다. 할리우드 용어인 "개발 지옥(Development Hell)"에 빠진 대표적인 영화로 지목되곤 했다.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프랜차이즈의 50년 역사를 살펴보자.

 

프랑스 작가 피에르 불의 원작 소설

말레이시아에서 고무농장을 운영하던 프랑스인 피에르 불(Pierre Boulle, 1912~1994)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싱가포르로 달아나 첩보 활동을 벌이다가 일본군에 체포된다. 수용소에서 2년간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 탈출하여,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소설 <콰이강의 다리>(1952)를 출간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러다가 동물원에서 인간과 흡사한 고릴라의 행동을 보고 인류와 원숭이의 관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걸리버 여행기>와 같은 고전 모험소설에 깊은 영향을 받은 그는 <Planet of the Apes>라는 제목의 소설을 써 내려 가기 시작했다. 소설은 인간성의 상실과 과도한 과학 의존을 경고하는 깊은 주제 의식을 담아냈고, <가디언> 지는 “서스펜스와 풍자가 가득한 고전적 SF소설”이라고 호평했다.

 

영화 제작자 아더 제이콥스의 등장

자신의 프로덕션을 설립한 영화 제작자 아더 제이콥스(Arthur P. Jacobs)는 <킹콩> 류의 원작을 찾아 헤매다가 이 소설을 읽고 단숨에 흥미를 느껴 영화화 판권을 구입했다. 시나리오 작가를 고용하여 당시 할리우드의 화두였던 ‘냉전’ 요소를 덧붙였고, 원숭이가 지배한 혹성은 다름 아닌 핵전쟁 이후의 지구였다는 마지막 장면을 추가하였다. 제작 예산은 1천만 달러(한화 120억 원)에 이르렀지만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영화사는 없었다. 인기 배우 찰톤 헤스톤을 캐스팅하고 그가 추천한 감독 프랭클린 샤프너(Franklin J. Schaffner)와 계약하면서 영화는 동력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토리 콘셉트를 담은 테스트 필름을 만들어 20세기 폭스사(이하 ‘폭스’)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판권을 구입한 지 3년이 지난 후였다.

찰톤 헤스톤을 등장시켜 폭스를 설득한 테스트 필름(1966)

 

특수분장의 주역 존 챔버스의 가세

폭스는 계약 후에도 영화 투자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망설였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다시 수정하여 원숭이 문명을 원시적인 환경으로 바꾸고 대사 장면을 늘리면서 제작 예산을 40% 절감하였다. 이후 <스타 트랙>에서 스포크의 뽀족한 귀를 창안한 인물로 유명한 할리우드 분장 전문가 존 챔버스(John Chambers)를 확보하면서, 폭스는 최종적으로 영화 투자를 승인하였다. 1968년 2월, 마침내 개봉한 영화는 당시 박스오피스 기록을 경신하면서 SF영화의 클래식이 되었다. 이 영화로 존 챔버스는 오스카 명예상을 받았고, 다음 해부터 오스카 특수분장상을 신설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영화 제작 당시 분장 스태프가 촬영한 영상

 

10년 이상 지속된 개발 지옥

폭스는 여세를 몰아 매년 1편씩 네 편의 속편 영화와 TV 드라마를 연속 제작하였다. 속편 영화에 대한 평가는 갈수록 인색해졌으나 오리지널 영화의 인기에 편승해 상업적인 성공을 이어갈 수 있었다. 1980년대로 들어와 폭스는 다시 영화화를 꿈꿨다. 하지만 지나친 기대 탓인지 영화는 개발 단계에서 계속 좌초되고 말았다. 지독한 개발 지옥에 빠진 것이다. 21세의 신흥 인디영화 감독 아담 리프킨(Adam Rifkin)을 비롯해 명감독 올리버 스톤(Oliver Stone), 크리스 콜럼버스(Chris Columbus), 제임스 카메론(James Cameron) 감독이 연이어 시나리오 개발 단계에 나섰으나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데 실패했다. 1999년, 폭스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고 발표했다.

오리지널 <혹성탈출>의 강렬한 인상을 남긴 마지막 장면

 

구원투수 팀 버튼 감독의 등장

폭스는 작가 윌리엄 브로일스를 고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콘셉트로 시나리오를 다시 썼고 2001년 7월로 개봉시점을 못박았다. 제작비도 1억 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폭스로서는 더 이상 미루지 않겠다는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그러자 팀 버튼 감독이 관심을 갖고 나섰다. 그는 제작비 한도를 맞추기 위해 거대한 스케일의 시나리오를 다시 수정해야 했다. 크랭크인을 서둘러 촬영을 진행하면서 동시에 시나리오를 수정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완전히 새로워진 스토리의 <혹성탈출>은 폭스가 원하던 날짜에 개봉했고, 오리지널 영화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특수효과에 대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극장에서 3억 6천만 달러를 거둬들이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하였다. 하지만 팀 버튼 감독이 너무 힘들었다는 이유로 속편 제작을 거절하면서 다시 길고 긴 휴면 상태로 들어갔다.

10여 년의 개발지옥을 깬 팀 버튼 감독의 <혹성탈출> 예고편

 

리부트 필름 시리즈의 탄생

유인원 ‘시저’ 역을 맡은 모션 캡처 전문배우 앤디 서키스

2005년 두 명의 시나리오 작가가 폭스에 완전히 새로운 스토리 콘셉트를 제안한다. 오리지널에서 동상으로 잠깐 선보였던 유인원 문명의 시조 ‘시저’를 메인 캐릭터로 등장시킨 것이다. 폭스는 이에 매료되어 리부트 필름 시리즈(Reboot Film Series)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다시 한번 스크립트, 감독, 제작자가 몇 번 바뀌는 진통 끝에 2011년 시리즈의 첫 작품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을 개봉하며 제작비의 5배를 벌어들였다. 사람의 움직임으로 유인원 연기를 세밀하게 표현하는 모션 캡처 기술의 발전으로 주인공 시저가 탄생하였다. 그를 연기한 앤디 서키스(Andy Serkis)는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을 연기한 배우이다.

모션 캡처 연기의 비하인드 영상

최근작 <혹성탈출: 종의 전쟁>(2017)은 프랜차이즈 전체로는 아홉 번째, 리부트 시리즈의 세 번째 영화다. 이 영화 역시 호평과 함께 극장에서 4억 9천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프랜차이즈의 역사는 반세기를 훌쩍 넘어서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순탄한 구성으로 리부트 네번째 영화로 이어질 지 새로운 콘셉트를 구상하느라 개발 지옥에 빠질 지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