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밴드명부터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과거의 재즈 피아노 트리오는 피아니스트 또는 리더의 실명을 전면에 내세웠지만, 이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윤리학책에서 등장한 ‘실천적인 지혜’라는 의미의 생소한 용어, 프로네시스(Phronesis)를 밴드명으로 내세웠다. 덴마크 출신의 베이시스트 야스퍼 호이비(Jasper HØiby)가 원년 멤버이자 중심인물이며, 영국 출신의 피아니스트 이보 님(Ivo Neame) 그리고 스웨덴 출신의 드러머 안톤 에거(Anton Eger)가 합세하여 유럽의 다국적 피아노 트리오를 구성했다. 이들의 대표곡 ‘Abraham’s New Gift’를 들어보자. 리더와 팔로워, 리드 섹션과 리듬 섹션이란 설정 없이, 멤버 각자의 독특한 개성과 속도감, 그리고 강력한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프로네시스의 대표곡 ‘Abraham’s New Gift’(2010)

국적이 서로 다른 이 세 사람이 언제 어떻게 만났을까? 2005년 런던, 언더그라운드 재즈신에서 활동하던 젊은 연주자들이 중심이 되어 ‘Loop Collective’란 느슨한 형태의 동아리 모임을 만들었다. 이를 통해 공연이나 업계정보를 교환하고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여 협연을 하거나 레이블을 설립하기도 했는데, 여기에 소속된 20여 개의 연주 그룹 중 하나가 프로네시스의 시초였다. 코펜하겐 출신의 야스퍼는, 런던의 왕립음악학교(Royal Academy of Music)에 다니다가 여기 멤버가 되었고 전화를 받으면 언제라도 달려나가는 열성파가 되었다. 프로젝트 그룹은 ‘프로네시스’라는 이름을 붙여 첫 앨범 <Organic Warfare>(2007)을 발표하면서 그 출발을 알렸다. 두 번째 앨범 <Green Delay>(2009) 부터 이보와 안톤이 조인하면서 현재의 멤버 라인업이 완성되었다.

2009년 제작된 밴드 소개 영상

두 번째 앨범도 성공적인 반응을 보이자, 런던의 인디 레이블 에디션 레코즈(Edition Records)와 계약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2010년에 발매된 세 번째 앨범 <Alive>는 평단과 재즈팬의 열광적인 호평을 받으면서 전도유망한 유럽 재즈밴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런던의 재즈 전문지 <Jazzwise>의 최고 앨범상을 받았고 “E.S.T.(Esbjorn Svensson Trio) 이후로 가장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트리오” 라는 평가를 들었다. 하지만 성공적이고 안정적인 재즈 밴드로 가기 위한 고민이 하나 있었다. 피아노 트리오라 하면, 리드 악기인 피아노와 이를 보조하는 베이스와 드럼으로 구성되는데, 피아노 트리오에서 민주적 형평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다섯 번째 앨범 <Life to Everything>(2014)

<Alive>(2010)까지 세 장의 앨범에 수록된 곡은 모두 야스퍼가 작곡을 전담했으나, 네 번째 앨범 <Walking Dark>(2012)부터는 모든 멤버가 동등하게 곡을 쓰는 방식으로 전환하였다. 야스퍼는 이에 대해 “처음에 이를 시도했을 때 많은 토론을 했어요. 가령 어떤 곡에 대해 제가 편치 않으면, 다른 방식으로 해보자고 제안을 하죠. 그럼 이보와 안톤은 기꺼이 다른 방식을 찾아 새로 제안해요. 제가 만든 곡조에 대해서도 다른 방식을 제안하곤 해요. 그러나 기본적으로 제가 마지막 손질을 하긴 해요.”라고 대답한다. 재즈뿐만 아니라 많은 장르의 음악 밴드들이 해체되는 원인인 ‘밴드 내 평등과 민주주의’ 이슈를 수많은 워크샵 토론을 통하여 합의점을 찾는다. 이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리더가 리드하는 트리오’가 아니라 ‘세 사람 모두의 트리오’가 내재되어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여섯 번째 앨범 <Parallax>의 공식 홍보영상

사회가 변하듯 음악 세계 또한 끊임없이 변한다. 음악 밴드 내에서 그룹 다이나믹스를 조화롭게 이끌고 멤버 전원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데는, 과거의 권위적 리더십보다는 통합형 리더십이 필요할 때임을 유럽 트리오 프로네시스가 보여 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