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힐링’도 케케묵은 ‘떡밥’이 아닌가 싶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각각의 이유로 불쾌를 경험하고, 상처받고, 자괴감으로 고통받는다. 건강한 마음의 경쾌한 드로잉으로 사랑받는 일러스트레이터 두 사람을 소개하는 이유다.

일러스트레이터 최진영, 건강에 좋은 낙서

최진영(@jychoioioi)이 일상의 작은 생각들을 낙서처럼 그린 가벼운 그림들은 페이스북 ‘건강에 좋은 낙서’라는 페이지에 게시하면서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낙서’라고 이름 붙여진 만큼 때마다 즉흥적으로 그린 한 컷의 농담 같은 이야기들은 이제 작가의 인스타그램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스타그램에서 그의 그림을 구독하는 사람들은 4만 8천 명에 이른다. 작품집을 펴낸 적 없는 작가임에도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단상이나 교훈, 거창한 메시지를 담은 것도 아니고, 반대로 아주 개인적인 생각들을 그때그때 그린 드로잉임에도 그렇다. 작가는 작품집을 펴내지는 않았지만, 페이스북 외에도 잡지나 소규모 출판물에 드문드문 작업을 선보여왔다. 월간 <페이퍼>의 ‘낙서 같은 생각 혹은 그림’ 코너 연재, 디자이너 오혜진과의 협업 프로젝트인 <먼쓸리 맛쪼은 걸(Monthly Yammy Girl)> 달력(2014), 코우너스의 컬러링북 <칩멍크북(CHIPMUNK BOOK)>(2015), <과자전> 엽서 프로젝트(2015) 등에 참여했고, 2016년 12월 발간을 목적으로 쪽프레스의 <쪽컬렉션>에도 삽화로 참여한다.

인스타그램에서 작가의 그림을 볼 때면, 이 사람은 그림 그리기를 무척 좋아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물들의 모호한 표정이나 비틀린 몸짓, 다수 등장하는 고양이와 오징어, 새 같은 동물들도 매력적이지만, 얼핏 서툴러 보이는 드로잉들이 유쾌하고 기발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사실 말이야 ‘낙서’라곤 해도 정말로 서툰 낙서들은 아니다. 리듬감 있게 툭툭 끊어지거나 유려하게 곡선을 이루는 선의 표현, 작가가 “촉촉하다”고 말하는 마커나 잉크로 색을 입힌 그림들은 힘 조절에 실패해 뻣뻣하게 면을 채우기만 하는 아마추어적인 색칠이 아니라 말 그대로 촉촉하고 투명한 질감이다. 색을 다수 사용하지 않고 필요한 몇 가지 색만을 사용하지만, 색의 조합과 적절한 사용이 세련된 느낌을 준다. 날아가듯 가벼운 선들로 의도하는 형태를 그려내는 것은 많은 연습을 짐작게 하며, ‘낙서’라는 표현처럼 드로잉의 즉흥적이고 유희적인 특징 속에서 납득된다. 거칠게 그려진 듯한 선의 움직임은 삐걱거림보다 흔들림에 가깝다. 자유로운 연상을 통한 형태의 변형이 거기에 어우러져 하나의 경쾌한 순간으로 화면에 정착된다. 그러니 그의 그림을 보는 동안, 이것을 그리는 작가가 즐거웠으리라는 짐작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으리라 믿게 된다. 즐겁게 그린 그림, 그린다는 행위의 즐거움과 만족감이 전달되는 그림에서 건강함을 찾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일러스트레이터 백두리, 치유의 여정

2015년 펴낸 책 <혼자 사는 여자>로 수많은 비혼 여성들의 공감을 얻은 일러스트레이터 백두리(@baekduri). 작가 블로그의 그림일기에서 출발한 책인 만큼, 스스로의 생활과 생각을 솔직하게 투영하여 만들어진 단발머리 캐릭터는 책 출간 이후에도 작가의 인스타그램에서 살아가고 있다.

힘을 빼고 손으로 쓱쓱 그려낸 드로잉들이 얼른 떠오르지만, 사실 백두리는 20여 권의 책과 잡지 삽화 및 표지 작업으로 쉴 새 없이 러브콜을 받아 온 인기 일러스트레이터다. 2013년 나온 책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배르벨 바르데츠키, 걷는나무), 2014년의 <당신이 이기지 못할 상처는 없다>(박민근, 청림출판사) 같은 심리학 및 상담 분야 도서, 정이현 작가의 <말하자면 좋은 사람>(마음산책, 2014) 처럼 마음 따뜻해지는 에세이에 삽화를 그렸다. 부드러운 양감과 온화한 색,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가 감도는 삽화들은 현실보다는 마음과 감정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퍽퍽한 2010년대의 키워드가 되어 버린 ‘힐링’과 ‘치유’는, 과도한 단어의 남용 탓에 병원 가서 맞는 주사 한 방이나 패스트푸드처럼 가볍게 치부되기 일쑤다. 그러나 무언가 손상당하거나 상처 입었음을 전제로 하는 이런 단어들이 사회적 키워드가 되었음은, 그만큼 이 시대가 상실과 절망으로 가득함을 보여주는 하나의 현상이다. 치유와 회복의 여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심리적 치유는 자신의 불완전함과 상처를 직시하는 과정이다. 그런 만큼 백두리의 삽화들은 밝고 경쾌한 마음의 풍경에만 머무를 수 없었다. 밑바닥이 없을 것처럼 느껴지는 우울과 끝없는 외로움의 풍경, 삭막하고 황폐한 내면들을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자신의 감정을 투사할 수 있도록 밀도 높게 표현했다. 계속된 삽화 작업의 내공을 담아 작가는 2016년 <나는 안녕한가요?>(생각정원)라는 책을 만들었다. 제목처럼 스스로의 안부와 마음의 건강을 챙기는 내용의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졌다. 복잡하고 다양한 것은 작가가 완급을 조절하며 풀어내는 내면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드로잉과 색채화, 그래픽작업들은 도구도, 스타일도 다채롭다.

작가가 다양한 활동을 하는 동안에도 인스타그램에는 여전히 혼자 사는 여자가 있다. 스스로에게 안녕을 묻고, 타인의 상처와 우울에 공명하는 속 깊은 삽화가인 작가의 경쾌하고 솔직한 일면이다. 말썽을 부리는 조카에 대한 사랑, 식물을 키우는 일상과 더 단순하고 거친 형태의 미움, 답답함 같은 부정적인 마음까지 담은 일기다. 속 깊은 작가의 한 컷 만평을 보며 나에 대한 질문을 시작해보자.

최진영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jychoioioi
백두리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baekduri
백두리 홈페이지 www.baekdu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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