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디지털 싱글이 만연하는 시대, 차트에서 제시하는 대로 음악을 소비하는 시대, 한 시간 단위로 음원 순위가 달라지는 시대에 산다. 정규보단 EP를, EP보단 싱글을 더 자주 접한다. 이미 익숙한 일이다. 이런 때, 열 곡에 가까운 트랙을 모아 정규 앨범을 낸 국내 뮤지션들이 있다. 이디오테잎의 <Dystopian>, 데드버튼즈의 <Rabbit>, 이승열의 <요새드림요새>는 ‘음반’이란 형식이 지닌 가치를 다시 되새기게끔 한다. 이 석 장의 음반엔 트랙과 트랙 사이를 잇는 흐름, 전 트랙을 관통하는 주제가 담겨 있다.

 

이디오테잎(Idiotape)

<Dystopian> 2017.06.16

왼쪽부터 디구루, 제제, 디알. 이미지 출처- ‘하이그라운드 페이스북

‘일렉트로닉 슈게이징 록 밴드’. 수년 전, 이디오테잎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디구루, 제제, 디알로 구성된 이디오테잎은 2010년 EP 앨범 <0805>을 그 시작으로, 일렉트로닉과 록이 만나는 접점에서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쌓아나갔다. 이디오테잎의 정체성은 록 사운드에 가까운 멜로디를 전자음악으로 구현하는 방식, 극한의 쾌감을 끌어내는 일렉트로니카, 비트를 ‘찍는’게 아닌 실제 악기를 ‘치며’ 만들어내는 밴드 사운드에서 드러난다.

이디오테잎 ‘Dystopian’ Making Film

<Dystopian>은 이디오테잎의 세 번째 정규 앨범이다. 앨범 타이틀은 타이틀곡 제목과 똑같다. 이디오테잎은 이번 앨범에서 희망에 기댄 유토피아 대신, 어둡고 암울한 세계인 디스토피아를 택했다. 먼 미래가 아닌, 동시대를 사는 우리가 맞닥뜨리는 현실과 고민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디스토피아라는 어둡고 무거운 주제를 한층 더 부각시키는 건 첫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쉴 틈 없이 밀어붙이는 사운드다. 간결하고 반복적인 멜로디 라인을 주축으로, 거칠고 육중한 사운드가 따라붙으며 구간마다 다채롭게 변주된다.

이디오테잎 2017년 유럽 투어 일정. 이미지 출처- ‘이디오테잎 페이스북

얼마 전 하이그라운드와 계약한 이디오테잎은 현재 유럽 투어 중이다. 영국 글래스톤베리와 미국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에 초청된 적 있으며, 국내 페스티벌은 물론 미국, 아시아, 유럽 투어도 매년 진행하고 있다. 현재 프랑스와 아일랜드 투어를 끝낸 이디오테잎의 다음 목적지는 한국이다. 스튜디오 음악과 라이브 셋의 경계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무대를 놓치지 말길. 날짜는 8월 13일, 장소는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이 열리는 펜타포트 파크. 

이디오테잎 페이스북

 

데드버튼즈(Dead Buttons)

<Rabbit> 2017.06.20.

왼쪽부터 이강희, 홍지현. 이미지 출처- ‘러브락컴퍼니

데드버튼즈는 3년 전, EP <Whoever You Are>로 데뷔했다. 그땐 멤버가 셋이었지만, 베이시스트가 빠진 후 기타 치는 홍지현과 드럼 치는 이강희의 2인조 구성을 쭉 유지했다. 정규 1집 <Some Kind of Youth>를 전후로 유럽 투어를 돌았고, “투어 다녀올 때마다 뭔가 달라졌단 걸 확실히 느낀다”는 멤버들의 말처럼 어느새 ‘다음’이 더 기대되는 밴드로 남았다. 첫 정규 앨범 발매 후 일 년이 훌쩍 지났을 무렵, 데드버튼즈는 두 번째 앨범 소식과 함께 “베이시스트 MJ Moleman이 다시 합류한다”는 예고를 전했다.

데드버튼즈 ‘Hide and Seek’ MV

두 번째 앨범 <Rabbit>은 ‘데드버튼즈 With MJ Moleman’이란 이름표를 달고 등장했다. 데드버튼즈 2집은 달라진 밴드 구성만큼이나 큰 변화가 있었다. 전작에 비해 거칠고 지저분하고 투박한 질감, 마치 필터를 씌운 듯한 느낌으로 레코딩한 보컬은 가장 두드러진 변화다. 앨범을 구성하는 트랙들도 달라졌다. 로큰롤, 개러지, 펑크 등 장르적 특징이 선명하게 두드러지던, 그래서 각 트랙이 독립적으로 느껴지던 전작과는 달리, <Rabbit>은 모든 트랙이 마치 한 곡처럼 느껴지는 일관성을 내세운 앨범이다. 앨범을 순서대로 들어보면 사운드 면에서, 가사 면에서, 구성 면에서 트랙과 트랙이 이어지는 흐름을 느낄 수 있다.

데드버튼즈 단독공연 ‘Cockroacheeesss.’ 이미지 출처 –‘데드버튼즈 페이스북

데드버튼즈는 2013년 결성 후 헬로루키, K-루키즈 등 신인 발굴 프로그램에 선정됐고, 이후 영국의 발틱 레코즈와 계약을 체결하며 이름을 알렸다. 유럽 5개국 투어를 비롯해 현재까지 10개국에서 15회 이상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고, 해외에서만 50번이 넘는 공연을 펼쳤다. 국내 공연 횟수는 그보다 더 많다. 곧 정규 2집 단독공연 ‘Cockroacheeesss’도 앞두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데드버튼즈는 <Rabbit>의 모든 수록곡, 그리고 베이시스트가 합류하며 새롭게 편곡한 기존 곡들을 연주할 예정이다. 오는 7월 23일 일요일 늦은 7시, 장소는 KT&G상상마당.

데드버튼즈 페이스북 

데드버튼즈 단독공연 예매링크 

 

이승열

<요새드림요새> 2017.06.30

이승열. 이미지 출처- ‘이승열 페이스북

이승열은 어느 순간부터 모호한 기호였다. 비유가 넘실대는 문학적인 노랫말, 실제 문학 작품에서 착안해 만든 노래, 선뜻 레퍼런스를 찾기 힘든 전위적인 사운드는 어느새 ‘이승열’하면 떠오르는 인상으로 남았다. 네 번째 앨범 <V>가 그 시작이었고, 그 흐름은 최근 발표한 <요새드림요새>로 이어졌다. 여섯 번째 앨범 <요새드림요새>는 그 타이틀부터 당장 모호하다. ‘요새’는 ‘방어 시설’ 또는 ‘요사이’, ‘드림’은 ‘꿈’을 의미한다는 이승열의 설명을 곱씹어보아도, 그 의미가 분명하게 와 닿지 않는다. 남은 미스터리를 푸는 건 듣는 이의 몫이다. 그게 바로 이승열이 의도한 지점이기도 하다.

이승열 <문화콘서트 난장> ‘지나간다(Jinaganda)’

<요새드림요새>의 모든 곡엔 해석의 여지가 담겨있다. 김수영의 시 ‘현대식교량’의 일부를 빌려 쓴 ‘지나간다(Jinaganda)’, 기형도의 시에서 착안한 ‘검은 잎(Black Leaf)’, 발라드에 가까운 질감을 담은 ‘I Saw You’와 ‘My Own’은 저마다 다른 주제와 비유적인 표현들로 가득 차 있다. 전체적인 사운드는 ‘실험적이다’라는 평을 받은 4집, ‘한결 편안하고 친절해진 앨범이다’라는 평을 받은 5집 사이의 절충안처럼 느껴진다.

<요새드림요새> 앨범 에피소드

<요새드림요새>는 국내 주요 음원사이트에선 듣기 힘들다. CD, 바이닐, 애플뮤직, 한시적으로 네이버 뮤지션리그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다. 이승열이 이미 계획한 일이었고, 앨범 판권을 소속사가 아닌 본인이 직접 소유하는 과정을 통해 실행할 수 있었다. 뮤지션에게 합당한 음원 수익을 보장하는 사이트를 통해 음원을 유통하고 싶었던 바람 때문이다. 음원 유통 시장의 공정성을 찾고 창작자의 수익을 보장하기 위한 시도는 이승열 뿐만 아니라 이미 여러 뮤지션이 실천하고 있다. 이런 시도들이 실제 성과로 이어져 음원 시장이 공정성을 회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승열 페이스북 

이승열 디지털 음원 구입처- Apple Music, Bain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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