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그림이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었던 때에, 사람들은 해나 계절이 바뀔 때면 그림이나 글귀를 준비했다. 그것을 방 안에 걸기도 하고, 대문 앞에 붙이기도 했다. 그들은 기원을 담아 호랑이가 액운을 막아주고 까치는 복을 가져오는 그림을 색이 바랠 때까지 붙여 두었다. 매화가 피고 지면 작약이 피어나고, 가느다란 대나무의 잎사귀가 뻣뻣하게 우거진 다음에는 쌀쌀한 바람결에 붉은 단풍이 떨어지는 광경을 즐길 줄 아는 이들이 옛사람들만은 아닐 것이다. 현대의 우리는 가을을 맞아 뉴트럴톤으로 베갯잇을 바꾸고 봄이면 노점 트럭에서 프리지어를 사다 꽂는다. 이것은 현대의 풍물이다. 예로부터 전해진 농경사회의 세시풍속을 모두 지키는 현대인은 드물겠지만, 동지 밤에 팥죽을 먹고 정월 대보름이면 더위를 팔고 귀밝이술을 마시는 일에는 분명 설렘이 있다. 이런 일들에는 무언가 좋은 일을 기원하는 마음이 있고, 나아가 이야기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과거 사회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어떤 마음들에 대한, 이야기들에 대한 향수다. 내가 읽었던 전래동화를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것처럼, 할머니의 노랫가락을 듣는 것처럼.

일러스트레이터 윤슬기의 1인 공예 프로젝트 까치당(@kkachidang)은 전해져 내려온 오래된 것들을 새롭게 해석한다. 직접 천을 골라 단정하게 수를 놓고 바느질해 만드는 수공예품들은 전통을 보는 하나의 시각을 보여준다. 까치당이 펴낸 소책자 [까치당 카탈로그1]은 까치당의 공예제품들 즉, 벽에 걸어 사용하는 월 포켓, 작은 족자, 주머니와 보자기, 매트 같은 실용품을 소개한다. 실제 작품을 살 수 있는 카탈로그이면서 작품집이기도 한 이 책의 성격은 까치당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다. “사용하는 사람들이 벽에 걸어 두고 바라보거나, 어딘가에 놓아두거나, 잘 쓰고 나서 정리할 때 마음이 흡족해지는 사물이 되었으면” 한다는 작가의 말은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를 요청한다. 일상의 사물들을 걸어 두거나 어떤 자리에 두고 바라본다는 감각. 예쁜 물건에 감탄하고 그것을 구해와, 그것이 가장 잘 쓰일 자리를 찾고 제일 어울릴 만한 곳을 가려 물건을 둘 때의 마음. 실용품으로부터 굳이 실용성을 삭제하지 않고, 그 쓰임과 형태가 기막히게 어울릴 때, 제자리에서 얻을 수 있는 흡족함이다. 여기에 더해 까치당의 작품들은 가상의 ‘까치당의 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할수록 까치당의 방은 조금씩 채워지고, 사물들은 연속성과 관계성을 갖게 된다.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은 각자의 방을 실제로 채우면서 자기만의 방을 만들어가게 된다.

까치당이 전통적인 주제와 기법을 다룰 때, 우리가 ‘전통과의 접목’, ‘한국(적인 것)의 세계화’ 같은 말에서 곧잘 받는 짓눌리거나 억지스러운 어색함을 떠올리기란 대단히 어렵다. 전통을 차용하면서 자유롭게 작가가 호흡하고 있는 동시대성을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까치당 카탈로그에 첨부한 원단 샘플은 오방색(청, 적, 녹, 흑, 황)을 중심으로 한 자연적인 색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원단은 세탁과 활용이 비교적 자유로운 리넨과 면을 선택한다. 인스타그램이나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다른 작품들의 색조 또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자수와 패턴은 한국의 전통적인 도상을 응용하여 만들어지지만, 반드시 한국의 전통자수 기법을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도트(dot) 일러스트레이터로도 활동하는 윤슬기는 자수와 보자기 등에서 아이디어의 유사성을 활용하기도 한다. 십자수 도안을 만들고 네모진 천들을 꿰매고 수놓아 구성하는 일은 쌓고 조립하고 겹쳐 구성하는 도트 일러스트레이션의 기법과 공통점을 갖는다.

까치당의 작품들은 한국 회화사의 전통적 도상(圖像)들이 갖는 의미, 이야기들을 드러내기도 한다. 2015년 여름에 한정품으로 내놓은 ‘복숭아 무늬 주머니’에서, 복숭아는 여름이란 계절을 상징하는 과일이기도 하지만 전통적으로는 장수, 부귀, 벽사(辟邪, 사악한 일이나 귀신을 쫓음)의 의미가 있는 도상이다. 단순하고 평면화된 접시와 복숭아, 복숭아나무 잎 2장을 얇은 미싱 선으로 외곽선만 표현하여 현대적으로 구성했다. ‘손자수 주머니’에는 소나무에 앉은 까치와 호랑이를 서양 자수 기법인 사슬 모양 스티치로 수놓았다. 까치와 호랑이(호작도, 虎鵲圖)는 대표적인 조선 후기 민화의 주제다. 여기서 까치는 복과 안녕을, 호랑이는 벽사의 의미가 있다.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당김 끈 매듭을 전통매듭으로 지은 것도 흥미로운 요소다. 까치당이 최근 진행 중인 텀블벅은 이런 전통 도상과 패턴들에 관한 이야기를 조금 더 과감하게 꺼낸다. 초보도 이용하기 쉬운 십자수 DIY키트를 제안하고, 도트 패턴을 기초로 디자인한 십자수 도안집을 제안하였다. 여덟 가지 도안은 ‘물결’, ‘매화’, ‘구름’, ‘잎사귀’ 같은 자연물과, ‘흰 사슴’, ‘옥토끼’, ‘세눈박이 개’, ‘까치와 소나무’ 같은 전통 설화와 민담 속 도상들이다. 만들어진 것을 구매하여 사용함을 넘어 구매자가 직접 제작에 참여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만드는 마음과 만들어지는 이야기 속으로 발을 담그고, 손수 만든 십자수 액자를 자신의 공간에 직접 배치하게 된다.

까치당의 영문명은 단순하게 ‘Kkachidang’이다. 까치(Magpie)는 서양에서 흉조로 여기지만, 한국과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에서는 길조로 여긴다. 기쁨과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것이다. 조선의 민간신앙에서는 까치가 신과 인간 사이의 메신저라고도 여겼다. 까치는 설날의 새, 은혜를 갚는 새다. 이렇듯 한국인들에게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만큼 ‘한국적’인 새라고도 할 수 있겠다. 또 까치는 영리한 새로 여겨왔다. 관람자 혹은 이용자가 산뜻한 느낌을 받게 한다는 것이 고민을 덜 한 결과가 아님은 당연하다. 무리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극단적인 미감 사이의 접점을 찾아내는 까치당의 영민함을 주목한다.

까치당 인스타그램
까치당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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