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에 이은 봉준호 감독의 두 번째 할리우드 진출작 <옥자>는,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의 어느 산골짜기에서 자라 서울과 뉴욕에서 모험을 벌이는 슈퍼 돼지 옥자와, 옥자를 찾아 서울부터 뉴욕까지 온 힘을 다해 달리는 소녀 미자의 이야기다. <옥자>는 한국 감독들의 다른 할리우드 진출작들과는 달리 영화의 배경이 서울과 뉴욕을 오간다는 차이점이 있다. 할리우드 스태프들과 봉준호 감독이 함께 만들어낸 서울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디테일하기로 유명한 봉준호 감독의 전작에서 서울이 어떻게 재현되었는지를 비교해 보았다.  

 

1. <플란다스의 개>, 복도식 아파트

A Higher Animalㅣ2000ㅣ감독 봉준호ㅣ출연 이성재, 배두나, 변희봉

서울의 상징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울 중산층의 상징이 아파트임은 틀림없다. 재개발 붐과 함께 중산층과 중산층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오래된 동네와 공터를 밀고 우후죽순 들어서는 아파트 단지로 몰려들었다.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는 복도식 아파트라는 ‘서울식 생태계’를 배경으로 1990년대 서울의 얼굴과 다양한 인간 군상을 소개한다. ‘개소리’가 동굴처럼 울려 퍼지는 어두운 복도식 아파트,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도 어떻게든 무말랭이를 널려는 할머니와 자신의 신경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몰래 남의 집 개를 유기하려는 시간강사가 마주치는 옥상, 누구나 그 존재를 알고 있지만 아무도 내려가 보려 들지 않는 깊고 컴컴한 지하실... 그 자신 역시 유년기를 잠실 아파트 단지에서 보냈다는 봉준호 감독은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복도식 아파트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악하고 신경질적인 얼굴을 드러내는 순간을 포착해낸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 M/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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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살인의 추억>, 서울에서 온 신원미상의 청년

Memories of Murderㅣ2003ㅣ감독 봉준호ㅣ출연 송강호, 김상경, 박해일

논과 밭이 더 많은, 갈대밭이 무성하고 공장에 채석장까지 있는 경기도 변두리. 서울과 한 시간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생경한 풍경이다. 봉준호 감독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희대의 수작’ <살인의 추억>은 실제 일어났던 미제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주요 사건은 연쇄 살인이지만, 전개는 시골 형사와 서울 형사의 대립으로 진행된다. 서울 형사는 시골 형사들의 전근대적인 방식을 무시하고 시골 형사는 이곳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면서 혼자 잘난 척하는 서울 형사가 영 못마땅하다. 여기에 유력 용의자인 서울 청년이 가세한다. 철저히 개인주의적인 이 인물은 희고 매끈한 손과 얼굴을 가진 유약한 모습이다. 그는 옆집 숟가락 개수까지 꿰고 있는 동네 사람들과 달리 이곳에 어떤 연고도, 인연도 갖고 있지 않다. 뭔가 속에 꿍꿍이를 숨기고 있는 듯한 섬뜩함이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하는 데에는 여기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도 있다. 이 영화에서 봉준호 감독은 캐릭터를 통해 서울과 서울 아닌 지역은 서로에게 어떻게 비치고 읽히는지 면밀히 관찰한다.

<살인의 추억>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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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괴물>, 한강 변

The Hostㅣ2006ㅣ감독 봉준호ㅣ출연 송강호, 변희봉, 고아성, 배두나, 박해일

봉준호 감독은 실제로 괴물을 ‘목격’했고, 그래서 <괴물>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고3 시절, 한강이 보이던 자기 방 창문에서 어떤 괴생명체가 한강 다리를 오르다가 다시 강으로 뛰어들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것. 한강은 서울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서울 사람들의 정서를 구성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다. 시민들은 이곳에 돗자리며 텐트를 차려놓고 오징어 다리를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신다.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기 위해 몰려들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하기도 한다. 한강에 시민들만 모이는 건 아니다. 서울의 각종 오염물이 강으로 모인다. 어떤 때는 다리가 무너지는 참사의 배경이 되고, 어떤 이유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들의 종착지가 되기도 한다. 도시 한가운데를 가르며 흐르는, 속을 알 수 없는 깊고 넓은 강. 그러나 사람들은 그저 익숙하다는 이유로 한강을 안전하게만 느끼나 보다. 영화 속 시민들은 강변 가까이 헤엄쳐오는 괴물을 보고도 도망은커녕 돌고래 쇼장에라도 온 양 구경하기 바쁘다. 한강을 경계하지 않은 결과는? 참담하다.

영화 <괴물> 예고편

 

4. <옥자>, 회현 지하상가

Okjaㅣ2017ㅣ감독 봉준호ㅣ출연 안서현, 틸다 스윈튼, 폴 다노, 제이크 질렌할, 스티븐 연

산골 소녀 미자는 무작정 서울로 향한다. 거대 기업에 의해 이별하게 된 ‘옥자’를 찾기 위해서다. 상경한 그가 처음 맞닥뜨린 것은 고층빌딩의 유리 벽이다. 대기업 직원은 뻔히 서로의 얼굴이 보이는 공간임에도 전화로 말을 전하라며 손짓으로 신호한다. 미자의 선택은 모든 게 투명하지만, 실은 답답하기 그지없는 공간을 온몸을 아낌없이 던져 깨고 부수고 탈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옥자와 미자는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뉴욕에서 온 동물보호단체의 도움을 받아 추격전을 벌이고, 자동차들이 점령한 지상에서 쫓기다 명동으로 이어지는 회현 지하상가로 내려간다. 유리와 시멘트, 자동차로 차갑고 사나운 지상에 비해 이 오래된 지하상가는 남루하고 좁다. 추격자와 무고한 행인들을 피해 전력 질주하던 옥자와 미자가 멈춘 곳은 하필 ‘다이소’. 서울살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단돈 천 원으로 살 수 있는 곳이다. 옥자와 미자가 다이소의 가판대를 온몸으로 들이받자, 형형색색의 싸구려 플라스틱 물건들이 팝콘처럼 온 사방으로 튀어 흩어진다. 이 장면을 보며 진절머리 나는 남루한 원룸살이의 세간을 날려버리는 것만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면, 이미 서울에 지쳐 버렸단 뜻일까?

영화 <옥자>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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