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영국을 풍미한 톱모델이자 2017년 현재 전 세계에서 전시를 여는 프리랜서 사진가인 ‘패티 보이드’(Pattie Boyd). 그러나 그의 이름 앞에는 무엇보다 ‘록스타의 뮤즈’가 따라다닌다. 영광처럼, 때론 지긋지긋한 꼬리표처럼. 당연히 음악가의 이름도 따라다닌다. 패티 보이드의 첫 번째, 두 번째 남편,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과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다. 너무나 유명하지만 또 그만큼 정확히 모르는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다시 들여다본다. 물론, 음악도 빠질 수 없다.

 

1964년, 조지와 패티의 만남

비틀스의 첫 영화 <A Hard Day's Night>

영화 속 조지 해리슨과 패티 보이드. (출처- www.beatlesbyday.com)

영국과 미국을 통틀어 당대 최고의 아이돌로 떠오른 비틀스는 동명의 앨범을 발표하면서 첫 영화 <A Hard Day's Night>(1964)를 찍었다. 1962년부터 모델로 활동하던 패티 보이드는 마침 감독의 눈에 띄어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되었다. 영화 촬영 당시 다른 남자친구가 있었던 패티 보이드에게 첫눈에 반한 조지 해리슨은 아랑곳 하지 않고 그에게 구애를 펼쳤다고 한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은 연인이 됐다. 한편, 세기의 커플 탄생 배경이라고 하기엔 무색할 만큼 영화 속 패티 보이드의 등장은 미미하다. 아래 영상에서 아무 사이도 아닌 열아홉 살 소녀 패티 보이드와 앳된 얼굴의 조지 해리슨을 볼 수 있다.

<A Hard Day's Night>의 한 장면. 4:00 경에 “Prisoners?"라고 말하는 금발머리 소녀가 패티 보이드다. 그의 유일한 대사이기도 하다

 

1968년, 절친한 두 친구의 노래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 (출처- flickr.com)

비틀스의 멤버 조지 해리슨과 기타의 신이라 불리는 에릭 클랩튼은 패티 보이드를 사이에 두기 전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였다. 2001년 조지 해리슨이 사망한 후, 에릭 클랩튼은 친구의 추모 공연인 ‘Concert for George’를 직접 기획하기도 했다. 새하얀 앨범 자켓 때문에 ‘화이트 앨범’이라고도 부르는 비틀스 열 번째 앨범 <The Beatles>(1968)에 수록한 조지 해리슨의 자작곡 'While My Guitar Gently Weeps'는 조지와 에릭의 사이를 증명하는 곡으로도 유명하다. 조지 해리슨의 천재적인 음악성에 에릭 클랩튼의 멋들어진 기타 연주가 더해진 명곡. 당시 앨범 내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이 곡을 가장 기념비적인 영상으로 감상해보자. 나란히 서서 기타 연주를 주고받는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 뒤편으로 비틀스 멤버 링고 스타와 필 콜린스, 레이 쿠퍼, 엘튼 존 같은 세계적인 뮤지션이 한꺼번에 등장한다.

The Prince's Trust Concert(1987)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1969년, 패티를 향한 사랑의 노래

‘Something’

1966년, 패티 보이드와 조지 해리슨은 수많은 팬과 대중의 관심 속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렇게 음악과 사랑에 충만했던 뮤지션의 곡은 단숨에 세기의 러브송이 되었다. 비틀스의 열두 번째 앨범 <Abbey Road>(1969)에 수록한 조지 해리슨의 자작곡 ‘Something’이다. 이 곡은 사랑스러운 멜로디와 노랫말로 두 사람만큼이나 높은 관심을 모았으며, 지금까지도 가히 조지 해리슨을 대표하는 명곡으로 꼽힌다. 달콤한 사랑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노랫말을 읊어보며 감상해보자.

Something in the way she moves
Attracts me like no other lover
Something in the way she woos me
 
그녀의 움직임에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는 나를 끌어당기는 뭔가가 있어요
그녀가 나를 끌어당기는 방법엔 뭔가가 있어요
George Harrison ‘Something’ Live

 

1970년, 패티를 향한 연모의 노래

‘Layla’

조지 해리슨은 자연스레 친구인 에릭 클랩튼에게도 패티 보이드를 소개했다. 문제는 에릭 클랩튼이 친구의 부인에게 첫눈에 반했다는 것이다. 당시 패티 보이드는 바람기 많던 조지의 환심을 사기 위해 에릭 클랩튼과 가까이 어울렸는데, 에릭이 오히려 패티의 매력에 빠지고 만 것. 홀로 연모의 슬픔에 빠진 에릭 클랩튼은 패티를 떠올리며 곡을 지었다. 그렇게 가장 훌륭한 연가, ‘Layla’가 탄생했다. 페르시아의 고전 설화인 '레일라와 마즈눈'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사랑하지만 금기로 인해 결혼할 수 없었던 이야기 속 주인공에 에릭 클랩튼 자신을 빗대 만든 곡이다. 결과적으로 노래는 많은 인기를 얻었지만, 패티의 마음을 얻지 못한 에릭 클랩튼은 비슷한 시기에 동료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의 죽음, 같은 밴드로 활동하던 멤버 듀언 올맨의 죽음 등 여러 시련을 한 번에 겪으며 한동안 술과 마약에 빠지게 되었다.

Layla, you've got me on my knees
Layla, I'm begging, darling please
Layla, darling won't you ease my worried mind
 
레일라, 당신은 날 무릎 꿇게 만들었어요
레일라, 이렇게 애원해요 제발
레일라, 나의 불안한 마음을 달래줘요
Eric Clapton 'Layla' Live

 

1977년, 패티를 향한 열정의 노래

‘Wonderful Tonight’

한편, 조지 해리슨과 패티 보이드의 사랑은 갈수록 기울어갔다. 그 배경엔 조지의 ‘인도’ 사랑이 한몫했다. 먼저 관심을 두었던 패티의 소개로 인도 사상을 접한 조지는 그대로 인도에 심취해버렸다. 인도로 여행을 가고, 인도 음악에 빠진 조지에게 패티는 안중에도 없었다. 결국 조지의 마음을 확인한 패티 보이드는 그의 곁을 떠났고, 이후 자신을 여전히 연모하고 있는 에릭 클랩튼을 만났다. 1977년 조지 해리슨과 완전히 이혼한 패티 보이드는 에릭 클랩튼과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다. 사랑을 쟁취한 기쁨에 사로잡힌 에릭 클랩튼은 곧바로 연인을 향한 열정을 가득 담아 멋진 곡을 완성했다. 부드러운 기타 선율과 담백한 목소리가 조화롭게 흐르는 발라드 ‘Wonderful Tonight’이다.

It's late in the evening
She's wondering what clothes to wear
She puts on her make-up and brushed her long blonde hair
And then she asks me "Do I look all right?"
And I say "Yes, you look Wonderful tonight."
 
늦은 저녁입니다
그녀는 무슨 옷을 골라 입을까 망설이고 있지요
화장을 하고 금발의 긴 머리를 빗어 내립니다
그리고 나서 내게 묻네요 "나 괜찮아 보여요?"
그래서 나는 말해주었죠 "당신 오늘 밤 정말 아름다워."
Eric Clapton 'Wonderful Tonight' live

 1979년 마침내 에릭 클랩튼은 패티 보이드와 결혼까지 했지만, 그들의 사랑 역시 끝이 있었다. 조지와 마찬가지로 바람기를 숨기지 못한 에릭은 패티에게 길게 머무르지 않았고, 1985년경에는 다른 여자와의 아이가 생겼음을 고백했다. 1987년, 두 사람도 결국 각자의 길로 떠났다. 이후 조지 해리슨과 에릭 클랩튼은 나란히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들이 부른 사랑의 노래는 계속 퍼져 나갔고, 패티 보이드는 ‘뮤즈’로 남았다.

<ROCKIN' LOVE_패티보이드 사진전> 포스터. 2017년, 국내에서 패티 보이드의 개인 사진전이 열린 바 있다

한편, 이혼 후 사진가이자 자선가업가로 활동하고 있는 패티 보이드는 2011년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천재는 어른이 되길 멈춘 철부지 어린애 같다. 나를 위해 작곡한 노래들도 결국은 그들을 투영한 노래다." 그렇게 뮤즈의 모습과 멀어지고 있는 패티 보이드는 두 남자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을 자신의 이름으로 내건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제 뮤즈가 아닌 ‘패티 보이드’를 통해 전설의 음악가를 다시 들여다본다.

(메인이미지 - <ROCKIN' LOVE_패티보이드 사진전> 포스터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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